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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Mar 22. 2022

요가와 처음 사랑에 빠진 날

애쓰지 말라는 마법 같은 말

어떤 관계든 사랑에 빠진 순간을 기억할 수 있다면 참 행운일 것이다. 하지만 대개 사랑이란 작은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그보다 더 작은, 어떤 순간에 톡 하고 무너져 버리는 마음이니까. 연인과의 사랑은 늘 그랬지만 요가는 달랐다. 아직도 요가와 사랑에 풍덩 빠졌던 그날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2017, 회사  새로 생긴 요가원의 10 무료 체험권이 생겼다. 나이키 10k 마라톤에 참가하고 공짜로 받은 형광 주황색 반팔티, 검정 레깅스를 입고 어두운 요가원 스튜디오 안에서 혼자 자체 발광 중인 이유였다. 형광은 놀라운 색이었다. 반딧불이가  기분이었다. "다음부터는  튀지 않는  입고 와야지"라고 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조용히 다가오셨다.


"저,,"

"아이코(기척 없이 다가오셔서 화들짝 놀랐다), 네?"

"지금 앉아 계신 매트가 다른 분 매트여서요. 공용 매트는 스튜디오 밖에 놓여 있어요~"


그때 내 얼굴은 입고 있던 형광 주황 티셔츠만큼이나 붉어졌다. 선생님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비어있는 매트가 없었다. 옛날 엄마를 따라다녔던 동네 요가원에는 미리 매트가 깔려 있었기 때문에 '내 매트'라는 개념이 없었다. 빈 매트가 빈자리였다. 자연스럽게 비어 있던 예쁜 컬러의 매트에 앉았는데 그게 누군가 미리 깔아 둔 임자 있는 매트였던 것이다.


민망한 시간이 지나고 수업이 시작됐다. 선생님의 센터링, 웜업, 수리야 나마스카라, 빈야사 플로우가 정신없이 이어졌다. 한창 업무 스트레스로 찐 살을 빼고 싶어서 PT를 받고 있던 시즌이었다. "하나만 더, 하나만 더"를 외치던 PT 선생님은 카운팅이 끝나고 나서도 "자 이제 진짜 마지막!"을 외쳤다. 운동을 하면서도 화가 났다. 가끔은 야속한 선생님을 몰래 때리고 싶기도 했다. 매트 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PT 수업을 떠올리던 찰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애쓰지 마세요. 애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그 뒤로 이어진, 아주 달콤한 사바아사나 시간. 가만히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 그때 따뜻한 눈물이 뺨을 타고 매트 위로 뚝뚝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그것밖에 못 해?", "조금만 더"로 점철된 일상에서 처음으로 숨을 쉬는 기분이었다. 조용히 눈물을 뚝뚝뚝 흘렸다. 선생님이 조용히 우리를 깨워내고 "나마스떼"로 마무리 인사를 한 후에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렇게 요가와 사랑에 빠졌다.


그날 이전까지는 내게 몸을 움직이는 활동은 두 가지로 구분됐다. 살이 빠지는가, 빠지지 않는가. 어렸을 때 했던 요가는 내게 살이 빠지지 않을 것 같은 활동으로 분류된 운동이었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마음이 잔뜩 망가지고 난 다음에 만난 요가는 내게 치유이자 회복, 그리고 숨이었다. 살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졌다.


애쓰지 말란 말에 요가와 사랑에 빠지고 정말 연애하는 것처럼 애쓰다가, 속상해하기도 하다가, 다시 내려놓았다가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균형'을 배워가며 5년의 시간이 흘러 여기까지 왔다. 애쓸 때와 애쓰지 않을 때는 구분하는 것은 매트 위에서도 일상에서도 늘 어렵지만 요가 수련을 통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참, 그때 내가 처음 잘못 앉은 매트의 주인은 민효린 씨였다.

작게나마 죄송한 마음을 보낸다. 민효린 씨는 나처럼 형광색도 안 입었는데 그저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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