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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Feb 20. 2022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알아차린 것

가보지도 않은 군대에 입대하고, 또 어떤 날엔 전쟁에 나가는 꿈을 꿨다.

요가 지도자 과정 필기시험을 앞뒀을 때의 일이다.


내가 수료한 요가원의 TTC는 호락호락하게 수료증을 주는 곳이 아니었다.

수련 횟수를 채우고, 필기와 실기 시험을 통과해야 했는데, 필기는 어렵기로 악명 높았다.

그동안 배운 철학과 아사나, 해부학을 '주관식'으로 써내는 시험은 수많은 재시험자를 양산한다고 했다.


선생님들은 도시괴담을 전하듯 얘기했다.


"지난 기수엔 한 명 빼고 다 재시험 봤대!"


재시험은 싫었다.

수능 시험을 준비하듯 공부를 하고, 수능 시험을 볼 때도 없었던 압박을 받았더니,,

급기야는 이상한 꿈을 꾸는 지경에 달한 것이다. 


시험을 하루 앞둔 금요일, 공부가 모자란 것 같다는 생각에 오전 반차를 연차로 변경했다.

반차는 오전에 실기 시험을 보는 선생님들의 데모, 그러니까 학생 역할을 해주기 위해 낸 것이었는데 어림잡아 한 시간이면 끝날 일이었다.

"그 시간이 끝나면 모자란 시험공부를 해야지"하고, 야무진 다짐을 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실기 시험 시간이 길어졌다. 

선생님은 한 플로우(요가 동작들로 이뤄진 시퀀스)를 여러 번 반복해 시키셨다.

학생이 된 나는 계속해서 같은 자세를 반복해야 했다.

점점 체력과 기운이 떨어지고, 공부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생각에 초초했다.

12시가 조금 넘으면 끝날 줄 그 시간이 끝난 건 2시 반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짧은 저녁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마음은 계속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불안했다.


방대한 분량의 교재 앞에서 막막함이 올라왔다. 

시간에 쫓겨 명상할 시간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배운 걸 실천하고 싶었다.

지난 3개월의 수련은 비단 몸을 위한 과정만은 아니었기에.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마시고, 내쉬는 숨을 바라봤다.

나의 초초함과 불안함, 짜증과 옅은 분노를 가만히 지켜봤다.

그러다 불현듯, "무얼 위해서?"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필기시험을 떨어진다고 과정을 수료하지 못하는 건 아니야. 

그런데 왜 초조하고 불안하고 짜증이 나지?

시험에 떨어지면 재시험을 봐야 하니까. 

다시 이렇게 공부하고 싶지 않아서지?

그리고 어려운 시험을 한 번에 붙었다고 말하고 싶은 너의 에고도 있네.

잘했다고 인정받고 싶은 모습 말이야. 

그런데 지금 너의 공부는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야.

나중에 누군가를 가르쳤을 때 꼭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야. 

시험을 떨어진다면 네 공부가 부족했다는 뜻이겠지.

나중을 위해서도 더 공부할 필요가 있어.

이런 시험 하나로 에고를 채우려는 생각도 하지 말자. 

내가 과정 동안 열심히 해왔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선생님들도 이런 시험으로만 나를 평가하지 않으실 테니까."


채 20분도 되지 않는 명상이었지만 많은 알아차림이 있었다.

결국은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내가 있었다.


"너 잘하고 싶구나? 그래, 맞아. 그럴 수 있지"


명상이 끝난 후엔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시험이 걱정되는 마음이 완벽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발목에 묶여있던 족쇄가 하나 풀어진 기분이었다.

그날 밤엔 그렇게 적당히 공부를 마치고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래서 필기시험은 어찌 되었냐고? 

그 결과는 지금 이 글에서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니 생략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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