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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Feb 02. 2017

#2, 경비행기타고 잔지바르 가기

경비행기 무서운거였구나. 비웃어서 미안해요 무한도전 식구들.

새벽 5시. 나는 지금 잔지바르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 앞에 있다. 


국내선 공항이 탄자니아 국제선 공항보다 허름할 거란 예상은 했지만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한가지는...검은 어둠 속, 문도 안 연 공항 앞에 쪼그려 가방을 안고, 먹통인 전화기를 꼭 쥐고 홀로 기다리게 될 것이란 사실. 

까마귀 우는 깜깜한 밤, 엄습해오는 공포는 그간 느꼈던 것들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새벽 4시에 만나잔 픽업 아저씨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은 나의 잘못이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며 아무도 없는 공항 앞에 날 내려두고 바람처럼 사리진 아저씨. 어리벙벙한 내 표정에 그의 마지막 인사는 어깨 으쓱~

 

"야 나는 쫄보란 말이다! 이 무책임한 아저씨야! 나를 두고 어디 가느냐!! 내가 어제 팁도 많이 드렸잖아요!!"

-란 외침은 소리없이 맘 속으로만.


꼭 하루같던 20여분의 시간이 흐르고, 킬리만자로로 간다는 영국인 할아버지와 그의 가이드, 젊은 커플이 오기 시작. 무서웠다고 '우아아아아아아아앙 ㅠㅠ'하며 안기고 싶었지만 아무도 나에게는 관심조차 없었고 별별 생각을 다 하고있던(만약 여기서 생을 마감할바엔 얌전히, 해꼬지만 당하지 않고 깔끔하게 죽길 바라고 있던 십여분전의 나) 내가 무색해지는 순간, 문이 열렸다.

드디어 문이 열린, 무척이나 한적한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국내선


강원도 고속버스터미널을 연상케하는 실내 분위기와 일처리.


대합실(?)에서 기다리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승객 명단의 이름을 부르면 쪼르르 가서, 여권과 탑승권을 확인받은 뒤, 수화물을 맡긴 후 비행기를 타는 아주 단순한 시스템. 잔지바르, 아루샤 등 참으로 다양한 목적지와 운영 항공사가 있음에도 사진 속에 보이는 것처럼 하나의 카운터에서 모든 것을 담당한다. 체크인='모든 목적지'&'모든 항공사'의 위엄을 보라. 내가 탈 비행기 체크인이 언제 시작될지 조마조마해 자꾸 가서 기웃기웃거리다 앉아있으란 핀잔을 듣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쭈구리처럼 기다렸다.  

 



그리고 나를 기다리던 것은 바로, 경비행기!

내가 끊은 항공편도 아니었고, 자세한 인폼을 받은 상황도 아니어서 경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줄은 몰랐다.


쫄보는 또 가슴이 쫄깃쫄깃. 

 


아주 간소한 체크인에 걸맞게 정해진 좌석 따위는 없으므로 기장님 바로 뒷자리를 재빠르게 차지했다. 칵핏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그리고 기장님 옆자리에 앉은 남자는,, 늦게 비행기에 타 자리가 없어서 저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저 갸우뚱한 표정에서도 알 수 있듯 자꾸 뒤를 돌아보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건, 나를 껌껌한 공항에 두고 매정하게 돌아선 아저씨처럼,, 어깨 으쓱~ Xq 그리고 엄치척! Good luck!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빠른 속도로 달리는 상황에서도 문을 닫지 않아서 심장이 철렁, 철렁. 심지어는 하늘로 뜬 상태에서도 한동안 저 문을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하며 한참을 닫지 않더라. (대체왜..?)


그래도 비행기는 날았다. 어찌됐건 커다란 프로펠러를 열심히 돌려, 날았다. 높은 건물도 없고, 포장된 도로도 없는 도시는 멀리서 보니 더욱 납작납작했다. 곧 초록빛의 바다가 눈 앞에. 구름 위를 건너는 것이 아닌, 구름 속을 헤치며 나는 경비행기의 매력은 참으로 이색적이었다.



무사히 잔지바르 공항에 도착했다.

노매드 투어 가이드 무사(Musa)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어컨과 쿠션이 빵빵한 차만으로도 감동인데, 시원한 생수도 두 병이나 챙겨주었다.


아프리카 도착 이틀째. 적응되지 않은 풍경 속을 또 달려 나의 숙소로 갔다.



그리고 도착한 나의 숙소, 아만 방갈로(Amaan Bungalows)


능귀해변에 위치한 나의 숙소는 아름다운 바다를 앞에 두고, 바와 수영장을 모두 갖춘 그야말로 완벽한 곳이었다. 인도양의 바다는 무엇이 다를까. 이 바다를 마주하고 싶어 내가 감수한 것은 무엇인가. 금전적인 것을 차치하고라도 방금 겪은 어둠 속, 하늘 속의 두려움들.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나?


방갈로 도착과 함께 몰려든 먹구름. 앞으로 나와 같이 열흘간 여행을 떠날 친구들은 스노쿨링을 하러 먼 바다로 떠난 상황. 쨍쨍한 하늘과 쾌활한 친구들이 나를 반길거란 예상은 빗나갔지만 그래도 좋았다.

 


레스토랑에서 치킨 커리와 난을 시켰다. 오늘의 첫 끼니였다.

에메랄드 빛 바다를 앞에 두고 먹는 음식은 돌이라고 맛있을 줄 알았건만 소태같이 짜서 눈이 번쩍 떠질 것 같은 맛이었다.

 

문제의 치킨커리


밥을 먹고나니 해가 쨍!하고 떴다. 나처럼 참으로 변덕스런 날씨.

새벽 3시 반에 하루를 시작해, 공항 앞에서 잔뜩 긴장한 탓인지 고작 아침을 먹었는데 하루가 꼬박 지나간 기분이었다. 잔지바르에선 혼자 뭘 하고 놀아야 잘 놀았다고 소문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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