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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Feb 02. 2017

#1, 떠나요 탄자니아로

잔지바르로 가는 험난한 길 

'아프리카 여행'이란 단어가 주는 모험가적인 냄새가 있지만, 여기서 일단 고백하고 시작해야겠다.


나의 여행은 패키지였다! 


아프리카는 대륙간 대륙의 거리가 멀고, 치안이 위험한 아프리카에서 발달된 여행 형태가 있다. 바로 '트럭킹(Trucking)'이라 부르는 오버랜드 트럭 투어. 

트럭 안에서 휴대폰을 동시에 6개 이상 충전할 수 있으며, 트럭 하단은 어마어마한 수납공간이자 주방으로 변한다. 

위의 사진처럼 여행용으로 개조한 트럭을 타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알찬 일정으로 넓은 대륙을 다니는 형태다. 아프리카에는 오버랜드 트럭 투어를 운영하는 아주 많은 회사들이 있고, 지역도, 기간도, 가격도 아주 상이하다. 또, 텐트와 숙소(호텔, 리조트 등)로 숙박 형태를 정할 수 있어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를 제시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항공편, 비자, 예방접종, 앞 뒤의 여행 계획 등을 본인이 챙긴 후에 원하는 곳의 아프리카 오버랜드 투어를 활용하면 안전하고, 편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스물한 살의 나는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나미비아를 여행하며 남아공에 본사를 둔 노매드 투어(https://nomadtours.co.za/)를 통해 3박 4일 '크루거 국립공원 투어'와 또 별도의 현지 회사인 와일드독사파리(http://www.wilddog-safaris.com/)를 통해 3박 4일 나미비아 '소수스블라이 사막 투어'를 예약했다. 중간중간은 자유 일정으로 채웠다. 


스물아홉의 나(회사를 잃고 충격에 빠져 이것저것 따져볼 의지를 상실한)는 이것저것 따져보지 않고 노매드 투어를 다시 선택했다. 내가 나이 먹는 동안, 노매드도 나이를 먹어 프로그램도 더욱 매력적으로 구성해놓고 있었고, 무려 '실시간 채팅 상담 서비스(!!)'를 제공했다.


늘 동아프리카에 가보고 싶었기에 장소를 고르는 것은 쉬웠다. 

프리카 하면 세렝게티 아니겠냐며! 내가 술 마시면 세렝게티 치타처럼 달린다며!


속전속결로 탄자니아 잔지바르와 케냐 세렝게티가 포함된 투어를 예약했다. 내 담당 에이전트도 붙여주었다. 홈페이지에 있는 실시간 채팅 창에 궁금한 것을 물어봐놓으면 남아공 케이프타운 본사로 직원이 출근한 후 띵똥! 하고 친절하게 답변해주었다.


"크리스, 나 캐리어 가져가도 돼?"

"....."

"..... 응?"

"안돼, 보스턴백 같은 트럭에 넣을 수 있는 형태로 가져와"


"크리스, 나 숙박 형태로 신청했는데, 혹시 세렝게티 가면 텐트에서 자야 하는 거야?

나 침낭 없는데!"

"ㅇㅇ.. 너 거기 가면 텐트에서 자야 해. 침낭 하루에 1달러에 빌릴 수 있어."


여행 안내문을 꼼꼼하게 읽어보지 않은 불량한 여행자는 이렇게 담당자를 피곤하게 하는 법. 

그러던 어느 날. 탄자니아 대선 기간과 내가 여행을 시작하는 시점이 겹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크리스, 대선 있다고 들었어. 그거 하면 난리 난다는데? 나 괜찮아? 괜찮은 거 맞니?

나 걱정돼. 우리 그냥 예정대로 진행하는 거니? 나 안전한 거야?"


크리스를 달달 볶았다. 하지만 크리스는 언제나 그랬듯 침착했다.


"걱정 마, 다 괜찮아. 혹시나 무슨 일 생기면 미리 알려줄게. 우린 예정대로 갈 거고, 문제없을 거야"

"흠, 일단 알았어. 위험한 일 생기면 꼭 미리 알려줘"


나는 쫄보 중의 쫄보다. 꿈에 그리던 여행이긴 해도 위험을 자초하며 떠나고 싶진 않았다. 

투어를 함께 떠나기로 한 이들이 모두 함께 한다고 해 우려를 접어두고 열심히 짐을 꾸렸다.


캐리어가 아닌 배낭에 짐을 꾸리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고, 습관은 잘 변하는 것이 아니어서 비행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공항버스를 타야 하는 시간을 앞두고 부랴부랴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무작정 집어넣어 꾹꾹 눌러 담고, 호기롭게 가방을 메니 몸이 뒤로 휘청. 그러고 나선 "에이 다 사람 사는 곳인데, 필요하면 사지 뭐"란 마음으로 잔뜩 물건을 덜어냈다.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은 참 먼 곳이다. 

하루를 꼬박 날아가야 했다.

인천에서 아부다비로 10시간.

아부다비 공항에서 3시간 대기.

아부다비에서 나이로비까지 또 5시간.

나이로비 공항에서 1시간 30분 대기.

나이로비에서 다르에스살람까지 1시간 30분. 


여정이 복잡해서인지 공항 체크인 카운터에서 항공 예약 확인서를 요구했다. 출력해놓은 것이 없어 메일로 보여주고자 메일에 접속했더니 크리스에게 URGENT 란 제목으로 조금 전 도착한 메일이 한 통 있었다.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부랴부랴 노매드 사이트에 들어가 실시간 채팅창에 접속하니, 크리스는 그제야 큰 일은 아니고 약간의 변동이 생겼다며, 걱정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옆에 있으면 등짝이라도 때려주는 건데!


정말 별 일은 아니었다. 그가 말한 약간의 변동은 다르에스살람에서 잔지바르 섬으로 들어가는 교통편이었다. 원래 계획은 고속페리를 타고 이동하는 것인데,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페리 운행이 중단돼 함께 투어를 시작하는 친구들은 전날 페리를 타고 잔지바르로 떠나고, 비행시간이 어중간한 나만 다음날 아침 일찍, 페리 대신 비행기를 타고 떠나게되었다는 것이다. 비행기와 공항까지 교통편 비용은 모두 노매드에서 부담하니 걱정하지 말란 말을 덧붙였다. 크리스, 너의 걱정하지 말란 말 또 믿어도 되는 거겠지? 


아부다비 공항은 신기했다.

궁전 모양의 표시가 신기해서 면세점을 돌고 돌아 찾아가 보니 화장실 옆에 자그맣게 딸린 기도실이었다. 종교와 문화는 삶을 다양한 모습으로 바꾸어놓는다. 화장실 옆 기도실이라니. 누군가에게 기도는 생리적 욕구만큼 이나 중요한 의식이라는 뜻일테지. 


무지에서 비롯된 공포와 배척을 피하기 위해서 타 생활권의 문화와 종교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 여행을 하며 얻는 또 다른 장점이기도 하다. 

비행은 지루하게도 길었다. 


게다가, 나이로비에서 다르에스살람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는 정말 '꼬졌다'. 이런 어이없는 단어 상태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상태였다. 터뷸런스라도 오면 의자가 슝 뽑히는 건 아닌지, 덜컥거릴 때마다 쫄보는 또 가슴 졸였다. 그래도 영원히 안전하게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한 비행 루프가 끝났다.


핸드폰 비행기 모드를 껐다. 통신사보다 먼저 외교부의 문자가 쏟아졌다. 내가 이렇게까지 정부의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나. 주사도 잘 맞았고, 안전하게 위험한 짓 하지 않고 돌아가겠다고 답장이라도 보내주고 싶었다. 


미리 노매드를 통해 공항부터 숙소까지 교통편을 예약해두었다. 순박하게 생긴 아저씨가 내 이름을 들고 마중을 나와 주었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펼쳐진 풍경은 충격 그자체. 코너를 돌아 나가기가무섭게 낙후된 삶의 모습과 마주했다.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아겠다고 다짐했지만, 놀란 마음을 감추기는 어려웠다. 숙소로 가는 동안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는 내게 아저씨는 무섭게 경고했다. 차가 잠깐 멈춘 동안 창문을 깨고, 핸드폰을 가져갈 수 있으니 얼른 집어넣으라고. 쫄보는 핸드폰을 얼른 가방에 넣어, 가방도 발 밑으로 숨겼다. 


나를 긴장하게 했다는 사실이 머쓱했는지, 차가 정체되어 있는 동안 길거리 잡상인 꼬마를 불러 사탕수수를 사 내 손에 들려주었다. 조그만 무처럼 깍둑썰기 되어 있는 사탕수수는 100원이 채 하지 않았다. 씹어서 단물만 먹고, 다시 퉤 뱉으면 된다고 시범을 보이며 잇몸 웃음을 보였다. 으쓱해하는 아저씨의 성의를 무시하고 싶지 않아 맛있는 척 먹었다. 

빠르게 달릴 때 사진 찍고 카메라라 후다닥 감추기 ㅎㅎ

충격적인 풍경들을 지나 다르에스살람의 숙소인 키에페포 비치(Kipepeo Beach Village)에 도착했다. 해변을 마주하고 있는 매력적인 위치의 숙소였다. 

이 방갈로 하나가 나의 숙소. 

짐을 풀고 오솔길을 지나 해변 옆 식당에 가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하늘이 핑크색으로 물들었다.


먼 곳으로 떠나왔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멍 하기만 했다.

예전에 여행을 떠나면, 연락 한 번 닿는 것이 참 어려웠는데, 지금은 어디나 핸드폰 로밍이 되고, 와이파이를 쉽게 사용할 수 있으니(심지어 기내에서도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하니ㅎ) 어디에 있든, 어느 시간에 있든 연락이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편한 것도 있다. 하지만 먼 곳으로 훌쩍 떠나온 기분이 덜한 것도 사실이다.

비행기 정도만 오롯하게 지구에서 떨어진 느낌을 준달까. 


회사를 그만두고 씩씩한 척,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은 한국이 아니라 지구를 떠나고 싶은 기분이었다.

2015년의 반 쪽이 그렇게나 힘들었다.  

쓸쓸한 마음이 더 쓸쓸해질까 두려워 술은 입에 대지 않았다. 


햄버거 하나와 환타를 주문해 저녁을 먹었다.

인도양의 흑진주, 잔지바르로 떠나는 내일은 기사 아저씨와 새벽 4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일찍 자야 했다.


호기롭게 떠나와 '쓸쓸해'같은 감정을 전하는 것은 어쩐지 초라하게 느껴져 달이 너무 예쁘고,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 아름답다고 나는 이곳에 와서 너무 행복하다고 안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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