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1학년, 4교시가 끝났다. 가방을 메고 집에 가는데 햇볕이 뜨겁다. 신작로 옆 밭에는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어떤 고추는 새가 쪼아 먹었는지 씨가 빠져있고,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다. 엄마가 챙겨준 주먹밥을 먹으며 천천히 걸었다. 다른 날보다 좀 늦게 집에 도착했다. 아버지가 다급하게 말했다.
“뭐 하느라고 이제 왔냐? 논에 가자. 참새 쫓으러.”
논에서는 나락이 한창 영글고 있었다. 참새들이 나락을 쪼아대자, 수확에 지장이 생겼다. 참새를 쫓아야 했다. 아버지를 따라 논에 갔다. 다랑논이라 크지 않았다. 다랑논은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에 층층으로 만든, 좁고 긴 논이다. 엄마 옷을 입은 허수아비는 논두렁에 서 있고, 아버지 옷을 입은 허수아비는 논 끄트머리에 서 있었다. 오전에는 아버지가 참새를 쫓아냈다. 아버지는 참새를 쫓으려고 다랑논 한가운데에 줄을 쳐놓았다. 그 줄에는 깡통이 군데군데 매달려 있다.
아버지가 나를 보며 말했다.
“참새가 오면 ‘훠~어~이, 훠~어~이!’ 크게 소리를 질러. 그래도 참새들이 안 날아가면 줄을 세게 흔들어.
깡통에서 요란한 소리가 날 것이여.”
아버지는 줄을 세게 한 번 흔들어 대고는 논에서 떠났다. 혼자 남은 나는 나무 그늘에 앉았다.
나무 아래로 늘어진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걸 꺾었다. 나뭇잎 한 장을 따며 “심심하다.”
또 한 장을 따며 “안 심심하다.”, “심심하다.”, “안 심심하다.”⋯
그러는 사이 참새가 모여들었다.
“훠~어~이, 훠~어~이!, 훠~어~이, 훠~어~이!”
크게 소리를 질러도 참새떼는 줄 위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줄을 세게 흔들었다. 힘이 달려서 앞부분만 흔들리고 중간 이후는 줄이 움직이지 않았다. 깡통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뭇가지를 들고 논두렁 가운데로 가서 참새들을 쫓아냈다. 논두렁을 여러 번 뛰어다니다가 허수아비를 건드렸다. 허수아비가 힘없이 기울어졌다.
엄마 흉내를 내며 허수아비에게 말했다.
“허수 아지매, 논두렁에서 뭣 헌당가? 참새를 쫓아야지? 내 몸빼 입고 사람 흉내만 내고 있으면 안 되지.
허허~, 품삯 주기 곤란허네.”
허수아비에게 한마디 하고 나니까 심심한 마음이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참새들이 또 날아왔다. 나무 그늘이 사라졌다. 아예 논두렁 가운데로 자리를 옮겨 허수아비 옆에서 참새들을 쫓았다. 그늘도 없고, 모자도 없고, 갈증이 났다. 심술이 나서 허수아비에게 투덜거렸다.
“허수아비야, 내 맘 몰라주는 아버지가 미워. 친구랑 놀고 싶은데 참새를 쫓으래. 특히 혼자 논에 있는 거
정말 싫은데.”
해 질 무렵 오빠가 날 데리러 논에 왔다.
“막둥이, 심심했지? 기특하다. 혼자 참새를 쫓아내고. 오빠가 업어줄까?”
얼른 오빠 등에 업혔다. 오후 내내 참새를 쫓으려고 논두렁을 뛰어다녔더니 다리가 아팠다. 오빠 등에 업힌 채 참새 쫓던 얘기를 했다. 오빠가 서너 번 맞장구치는 사이 대문에 들어섰다.
아버지가 나를 보고 말했다.
“아가, 욕봤다. 내일도 참새 쫓아야 한다.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