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인성교수 Nov 24. 2024

은퇴이야기 5 –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

은퇴를 하고 나니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 (age is just a number)"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이 말은 나이가 반드시 사고방식, 능력, 삶의 가치, 건강, 외모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누군가 나를 보며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야”라고 말하면, 내가 젊게 보이고 건강해 보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긍정적이고 고무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 말이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방금 태어난 아기부터 세상의 모든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어간다. 이 피할 수 없는 노화(aging)라는 현상이 은퇴자들에게는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오늘은 이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제목에 pixaby 무료 이미지 사용)

 

맞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방송이나 주변을 보면 60대, 70대 할머니·할아버지임에도 외모가 훨씬 젊어 보이고, 건강하며 사고방식도 신선하고 마음까지 젊은 분들이 많다. 이분들을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실감 난다.


의료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향상된 식습관, 생활 습관 덕분에 사람들은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고 있다. 평균 기대 수명을 보면 2023년 전 세계 평균은 73.3세로, 1960년의 52.6세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한국은 더욱 놀랍다. 2024년 기준 한국인의 평균 기대 수명은 84.3세, 여성은 87.1세에 이른다. 그러니 60세 전후로 은퇴한 사람들은 당연히 젊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외모와 건강만이 아니다. 60대, 70대는 물론 그 이상의 나이에도 사회에 활발히 기여하는 노년층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 워런 버핏 (사진 1 - flickr에서 무료 이미지)은 90대에도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로 성공을 이어가고 있으며, 김형석 교수 (사진 2 - flickr에서 무료 이미지)는 100세가 넘어서도 강연과 사회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내가 가끔 보는 시니어 피트니스 전문가 에리카 리츠코 (사진 3 - flickr에서 무료 이미지)나 패션 인플루언서인 박막례 할머니 (무료 이미지를 찾지 못함)처럼 70대 80대 이상의 분들이 많다.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그렇게 성취를 이루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인류의 발전이다.

사진 1: 워런 버핏, 현재 94세. 여전히 기업가이자 투자가로 미국은 물론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
사진 2: 김형석 교수, 현재 104세. 우리나라의 (아마 세계에서도) 최고령 수필가 및 교육자.
사진 3: 에리카 리츠코, 현재 84세. 틱톡 피트니스 인플루언서

이에 따라 노년에 대한 정의가 점차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과거에는 노년의 시작을 알리는 일생의 큰 행사로 환갑잔치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환갑잔치는 사라진 지 오래다. 칠순이나 팔순잔치조차 과거처럼 요란한 행사가 아닌 경우가 많아졌다. 이는 노년에 대한 사회적 개념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우리 세대에서는 60세도 채 되지 않은 부모님께 정기적으로 전화를 드리며 안부를 묻고, 건강 상태를 먼저 확인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아이들은 가끔 전화를 하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하고, 전화가 끝날 즈음에서야 “엄마, 아빠, 다 괜찮으시죠?”라고 한마디 던지는 정도다. 이런 변화를 보면, 젊게 봐주는 것 같아 고맙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생활 나이(chronological age)로는 분명 노년인데 왠지 그 나이의 중요함을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60세에서 65세 사이를 일반적으로 노년으로 간주했었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 노년에 대한 정의는 확실히 변하고 있다. 이제는 노년을 70대 이후로 정의하려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런 변화는 의료 기술의 발달, 평균 기대수명의 증가, 그리고 노년층의 활발한 사회적 참여가 함께 이루어낸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나이는 숫자 그 이상이야

이 말도 틀리지 않다. 내가 일본의 병원에서 매년 건강검진을 받을 때, 검진 항목별로 A, B, C, D, E 등급을 매겨 결과를 알려주곤 했다. 50대 초반까지는 대부분 A였고, 간혹 B를 받았다. 하지만 은퇴를 앞두고는 A와 B가 드물어지고, C와 D가 늘었으며, 재검사가 필요한 E 등급도 나오기 시작했다. 은퇴 후 거제에서 받은 건강검진 결과도 비슷했다. “괜찮다”는 항목은 많았지만, "지속적인 관리와 정기 검진이 필요하다"는 항목이 대다수였다. 건강뿐 아니라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다. 별 노력 없이 기억하던 이름조차 요즘은 여기저기 적어 두고 연습해야 겨우 생각나는 경우가 많다. 주름이나 흰머리가 많지 않아도, 열심히 건강 관리와 식단 관리를 해왔음에도,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인지적 능력이 매년 저하되는 것을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에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나이가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는 점은 법적으로 노인의 나이에 해당하게 되면서 게 되는 다양한 혜택을 통해 체감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65세가 되면 여러 혜택이 주어진다. 우선, 동네 보건소에서 폐렴구균 백신을 무료로 접종받을 수 있고, 치매 조기 검진도 무료로 제공된다. 치아 건강이 좋지 않아 임플란트를 하게 되는 경우, 두 개까지는 큰 폭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거제에서는 교통 관련 혜택이 없지만, 수도권에서는 도시철도, 전철, 지하철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고궁 관람도 무료이거나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소득 하위 70% 이하의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다양한 경제적 혜택도 지원된다. 내가 직접 받고 있는 혜택으로는 음악회나 영화 표 구매 시 경로 우대 할인이 있다. 또, 자주 방문하는 거제 식물원이 무료라는 점과, 가끔 서울을 갈 때 진주에서 KTX를 이용하면 주중에 경로 요금 할인이 적용된다는 점도 노년층인 나에게 주어지는 혜택 중 하나다.


다른 나라에서도 노인을 위한 혜택은 각양각색이다.

필리핀의 경우, 대부분의 개발도상국과 마찬가지로 노인을 60세 이상으로 규정하며, 법적으로 상당히 큰 혜택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식당이나 호텔에서 식사하거나 숙박할 때 항상 20% 할인을 받을 수 있으며, 물건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부가가치세(VAT)를 내지 않아도 된다. 또한, 생필품 구매 시 5% 할인이 제공된다. 하지만 노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이러한 혜택들이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미국의 경우, 건강보험이 비싸고 상대적으로 질이 낮다고 알려져 있지만,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정부가 제공하는 메디케어(Medicare)라는 건강보험 제도가 있다. 메디케어는 이전에 납부한 세금 액수와 현재 소득에 따라 보험료와 보장 범위가 달라지긴 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큰 혜택으로 평가받는다. 내가 아는 미국 친구는 메디케어를 통해 의료 혜택을 받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친구들이 65세 생일을 맞은 친구를 위해 큰 축하 파티를 열어준 적도 있다.

영국에서는 노인의 기준이 60세 이상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이들에게는 무료 눈 검사와 무료 처방전을 제공한다. 또한, 연금 크레디트, 임시 숙소 지원, 기타 다양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영국에서도 노인의 정의와 혜택에 대해 가까운 미래에 조정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나이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숫자가 아니라, 그동안의 세금 납부와 직업 생활에서 쌓아 온 공로와 연륜에 따른 혜택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긍정적인 혜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 전반에서 체계적인 연령 차별이나 선입견이 여전히 널리 존재한다. 2020년 미국 은퇴자 협회(AARP)의 조사에 따르면, 50세 이상 응답자의 약 78%가 이미 은퇴 전부터 직장에서 나이에 따른 차별을 경험했다고 한다. 특히, 체력과 민첩성이 요구되는 직업 (예: 소방관, 운동선수)에서는 나이가 현실적인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많은 직업군에서 은퇴 연령을 정해 놓는 것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이는 일종의 연령 차별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렇게 직업 관련 연령 차별은 어느 사회에서나 흔하게 나타나지만, 나이에 대한 문화적·사회적 관념은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은 오랜 기간 노인 인구 비율이 세계 1위였던 나라로, 서로 만나게 되어도 나이를 묻지 않는 문화가 특징이다. 제도적으로는 대학 은퇴 나이인 65세나 70세가 지나도 특임 교수나 강사로 5년 이상 강의를 계속할 수 있다. 학생들도 교수의 나이에 개의치 않고 강의를 선택한다. 학회 회장이나 정부 심의회 위원들 중에서도 60대, 70대가 많지만, 나이에 대해 불평하는 소리는 거의 들을 수 없다. 오히려 내가 나이가 많은 분들이 학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놀랄 정도였다.


반면, 한국에서는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더 강하다는 평가가 많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학번이나 나이를 먼저 묻는 문화가 있고, 젊음이 과도하게 이상화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미디어와 광고에서는 노년층의 사회적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젊어서 좋겠다”, “젊은 사람은 역시 달라”, “나이 값도 못한다”, “저렇게 늙어서 왜 정치하려고 하지?”, “나이에 맞지 않게 옷이 너무 화려하다” 등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표현들은 나이에 따른 차별과 선입견을 강화한다. 이런 점에서 나이는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시선과 선입견을 더 강하게 체감하게 만드는 지표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사진 4)

사진 4: 2024 미스유니버스코리아에 참가한 80세 최순화씨.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인생의 멋쟁이시다. (최순화씨 인스타그램의 사진 사용)

그럼, 나는?

전 세계적으로 65세 이상 인구는 2020년 약 7억 3천만 명에서 2050년까지 두 배가 넘는 15억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에서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개발도상국도 유사한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은 예상대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를 겪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2022년 기준으로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의 17.5%를 차지했으며, 2025년, 즉 내년에는 고령 인구가 20%를 초과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올해 초에는 70대 인구가 20대 인구를 초월했다는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나이와 관련된 개념적, 법적,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이미 가져오고 있다. 예를 들면, 은퇴 나이를 늦추거나 은퇴자 혜택의 범위를 조정하는 등의 변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변화들 중 나에게 보다 긍정적인 힘을 주는 것은 노년에 대한 개념의 변화이다. 현재 60세 이상 혹은 65세 이상을 일괄적으로 노인 혹은 노년층으로 정의하는 것에서 벗어나, 같은 노년층이라도 세 가지 다른 단계로 상세화 하는 추세이다. 젊은 노년층 (youngest-old, 65-74세), 중간 노년층 (middle-old, 75-84세), 고령 노년층 (oldest-old, 85세 이상)으로 나누는 것이 보편화되기 시작하고 있다. 젊은 노년층은 여전히 건강하고 활동적이며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특징이 있으며, 은퇴자로서 역할 변화에 적응하는 발달적 과제를 가진다. 중간 노년층이 되면 아무래도 건강 문제와 이동성 제한이 되고, 배우자나 같은 세대의 주변인들의 상실에 따른 슬픔이나 고립감을 느낄 것이다. 고령 노년층이 되면, 신체적 쇠약, 인지 저하 또는 두 가지 모두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져 적응 가능한 환경과 지원 체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 막 은퇴하여 젊은 노년층에 속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노년층’보다는 ‘젊은’에 초점을 맞추어 앞으로 10여 년간 신체적 관리와 인지 활동, 사회적 참여를 지속한다면, 이후에도 좀 더 독립적으로 힘차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노쇠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일찍부터 천천히 노쇠 관리(Frailty management)를 시작하려고, 거제도서관에서 노인학, 느리게 나이 들기, 건강 노화, 저속 노화 등 관련 분야의 책을 빌려 읽고 있다. 생각보다 재미있으니 여러분도 한 번 찾아보시기를 권한다. 거제 시청에서 수시로 접수받고 있는 국민신청 정책실명제 프로젝트에도 노년층 관련 정책을 제안을 해보려고 생각 중이다. 나는 고령 노년층이 되어서도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활동적이고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슈퍼 에이저 (super-agers)’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아주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AI 기반의 다양한 테크놀로지의 도움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내게 있어서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라는 말은 나이가 가져오는 신체적, 인지적, 사회·문화적, 구조적 제한을 인정하면서도, 나이를 어느 정도 뛰어넘어 새로운 영역에서 나의 가능성과 능력을 키우면서 젊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사진 5)

사진 5: 봄을 먼저 알리는 개나리. 앉아있는 어린새와 함께 희망을 뜻한다. (pixaby 무료 이미지)

-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