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서관을 2-3주에 한 번씩 방문하면서 사진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거제시의 역사, 자연, 산업, 사람들을 연구한 자료들 코너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사 오기 전에는 무심히 보았던 거제의 인물을 살펴보니 놀랍게도 역사적인 분들이 많았다.
내가 좋아했던 시인 청마 유치환의 출생지가 바로 거제이다. 거제 둔덕면에는 청마의 생가 (사진 2와 3)와 기념관이 있어서 둔덕의 유명한 거봉 포도나 한우를 사러 갈 때면 몇 번 방문하였다. 유치환 선생이 학교를 다녔던, 거제 옆 동네인 통영에는 청마문학관과 편지 5,000통을 보낸 유명한 통영 우체국이 있다.
소와 목동의 화가 양달석 씨는 거제 사등면 출신이다. 이 사이트 (https://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425427)를 방문해 보면 그의 대표작들이 소개되어 있다.
우리나라 14대 김영삼 대통령이 출생한 곳도 바로 거제이다. 멸치와 대구 등으로 유명한 장목면 외포리에는 관광지가 된 김영삼 대통령 기록전시관과 생가가 멋지게 자리 잡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출생한 생가는 거제면에 있는데, 거의 폐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분들 외에도 항일운동가였던 지한명, 윤택근, 신용기; 서예가 하동주; 농촌 개발의 선구자 신용우; 교육자이자 시인 김기호 등이 거제가 낳은 역사적 인물이라고 소개된다.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인 거제도. 이 섬은 수천 년에 걸친 풍부한 역사 속에서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으나, 동시에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걸친 긴 유배 역사를 가진 슬픈 곳이기도 하다.
이웃에게 거제도가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전설을 들었다. 거제도는 신들이 바위로 캐치볼을 하다가 실수로 큰 바위를 바다에 떨어뜨렸을 때 생성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바위가 섬으로 자라났고, 그렇게 거제도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믿기 어렵지만, 미소를 번지게 하는 이야기이다.
실제 거제도의 역사는 선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제의 작은 섬인 산달도에서 패총이 발견되고, 여러 마을에서 빗살무늬 토기 등의 신석기 유물, 간돌칼, 남방식 고인돌 등 유물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거제도는 육지와 유사한 정도로 선사시대 문화가 발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거제도의 기록된 역사는 삼국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이에 따르면 거제도 역사의 초창기는 신라가 생겨난 기원전 57년부터 고구려가 멸망한 서기 668년까지 약 700년가 지속되었고, 통일 신라 때 (757년) 거제군으로 명명되었다. 거제(巨濟)는 '크게 건너다' 라는 뜻의 한자인데, 이는 거제가 지형적으로 넓은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뱃길이었기 때문에 이와 어울리는 이름인 듯 생각되고 있다.
그 후 고려 왕조 (918 - 1392) 동안 거제도는 다소 버려진 장소 또는 유배지로 변모하게 된다. 거제도로 유배된 인물들은 고려와 조선 시대를 합쳐 500여 명 정도로 추정되며, 대표적으로 고려 의종이 거제도의 둔덕기성이라는 곳으로 유배되어 살해되었다. 또한 고려 시대 정과정곡의 정서와 조선 시대 우암 송시열이 유배되어 거제로 왔고, 그 외에도 많은 왕족과 귀족들이 유배된 곳이 바로 거제였다고 한다. 지금은 육지와 잇는 3개의 다리가 있으나 그때는 조그만 배로 다닐 수밖에 없는 외로운 곳이었고, 또한 고려에서 조선 초기까지 수십 차례에 걸친 왜구 침범으로 폐허가 된 곳이었으므로 유배의 장소로 선택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조선 시대 (1392 - 1910)에 오면서 거제도의 이름과 행정적 지위에 몇 차례 변화가 있었다. 현재 거제면에 자리하고 있는 거제현 관아는 처음 15세기 초에 건립되어 거제현의 현령이 행정·군사의 업무를 보았던 지방 행정기구였다고 한다. (사진 4). 거제는 1896년 경상남도 거제부로 승격되었고, 현재까지 행정적으로 경상남도의 거제시로 존재하고 있다. 1592년에 시작된 임진왜란 동안, 거제도는 해전 준비를 위한 전략적 위치로 변모하게 된다. 우리의 유명한 이순신 제독은 거제도 옥포 근처에서 일본군에 대해 큰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거제도의 가장 유명한 역사적 순간은 한국 전쟁(1950 - 1953) 동안, 남한과 북한 간의 주요 전투가 벌어진 현장이었을 때였다. 이 전투는 몇 달 동안 지속되었고 많은 인명 손실을 초래했지만, 궁극적으로 남한 군대는 그들의 입지를 지키고 승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승리 뒤에는 거제도에서의 불안과 갈등의 슬픈 역사가 있었다. 한국 전쟁 동안, 17만 명에 달하는 북한군과 중국군 포로들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이 시기 반공·친공 포로들 사이의 이념 대립으로 인한 소요·반란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으며, 1953년 6월 거제도를 포함한 전국 각지의 2만 7천여 명의 북한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 포로를 이승만 정부 독단으로 탈출시킨 사건이 일어난다. 이후 휴전이 이루어지면서 친공 포로들은 북한으로 송환되었고 남아있던 반공 포로들은 한국으로 귀순했다. 현재는 포로수용소의 대부분 시설이 철거됐으나 남아있는 유적들은 거제시에서 포로수용소 유적 공원을 만들어 관광지로 운영 중이다. (사진 5) 거제도의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자 슬프면서 암울하여 나는 아직 방문을 못 하고 있는 장소이다.
그 이후 거제도는 조선업의 중심지(어업 및 농업 외에도)가 되었고, 한국 경제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오늘날, 이 섬은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한국의 주요 조선 회사와 그 하청업체들이 위치한 곳으로, 세계적으로 중요한 해양 기술의 중심지로 여겨진다. (사진 6) 거제 조선해양문화관을 방문하여 거제도의 조선업과 해양 기술 발전에 대해 더 알아볼 수 있다.
오늘날의 거제는 아름다운 해변, 놀라운 자연경관, 다양한 문화, 맛집과 멋진 카페 등으로 잘 알려진 관광지이면서, 은퇴후 살고 싶은 곳 10위 안에 들어있다. 이러한 오늘의 거제 모습들은 추후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유배지였던 거제의 역사의 현장인 둔덕 기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맑지만 싸늘한 지난 해 겨울날, 우리는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왕의 피난성'으로 알려진 둔덕 기성(遁德 基成) 성곽을 방문하였다. 좁고 가파른 성곽 진입로를 운전하고, 울퉁불퉁한 언덕길을 걸으며 (사진 7), 가슴속에 기대와 흥분이 커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둔덕 기성이 있는 해발 326m 우봉산 정상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가까운 바다와 둔덕면 중심부를 훌륭하게 전망할 수 있었다. 사진 8은 참고로 넣은 거제도 행정구역 지도이고, 사진 9는 둔덕 기성 전경을 찍은 것이다.
이 성곽은 중요한 국가 사적으로, 원래 높이 4.8미터에 둘레 500미터 구조의 많은 부분이 소실되어 이제는 몇 개의 남아 있는 돌벽만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둔덕 기성의 역사적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고, 군사 쿠데타로 인해 3년간 권력을 잡은 후 퇴위한 고려 인종의 장남이자 18대 왕인 의종이 이곳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 성의 주변을 걷는 동안, 우리는 의종이 단지 몇 명의 하인과 함께 이 외진 곳에 고립되어 있었을 때의 상황을 상상하며 깊은 슬픔과 외로움을 느꼈다. 이는 정치적 혼란과 불안의 인간적 대가를 상기시키는 감정적 기억이었다. 의종의 통치는 제국 권력을 강화하고 개혁하려는 시도로 특징지어졌으나, 그의 말년은 향락과 시민 불안으로 괴로웠고, 결국 이 둔덕 기성에서 1173년 군인들에 의해 암살되어 슬픈 유산을 남겼다.
둔덕 기성에서 제대로 남아 있는 한 곳은 천지연(天地淵)으로 성곽 중앙에 위치해 있다. 이 연못은 성곽에 필수적인 물 공급원이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의종의 고립된 망명 생활을 상징하는 것처럼 이 연못이 외롭게 보였다 (사진 10). 오랜 역사를 지닌 천지연은 원래의 석조가 그대로 남아 있어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연못이 외진 성곽에서 생활의 필수적인 부분이었음이 분명하였다. 이 연못 옆에 서서 의종 왕이 고요한 물을 바라보며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연못의 아름다움과 평온함은 이곳의 비극적인 역사와 상반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그 비극적 역사를 말해주는 것도 같았다.
거제도에는 다채로운 과거와 현재의 많은 이야기를 찾을 수 있는 흥미로운 장소들과 미래를 볼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거제도를 방문하면서 조용히 역사를 돌아보고 숙고하는 경험을 원한다면, 한국 역사에서 슬픈 순간과 연결될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제공하는 둔덕 기성을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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