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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운 Apr 21. 2022

약 덕분에 시작한 나를 잘 먹이는 아침

컬러테라피스트의 아침식사



 “매일 아침에 드시면 되고 졸리지 않은 약이에요. 아주 빈 속만 아니면 그냥 드시면 되세요.”

친절한 의사선생님은 저녁에 먹던 약을 아침으로 바꾸어 진행하자고 하셨다. 저녁에 먹는 약이 너무 기운이 빠져 아침에 일어나서도 솜 뭉치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더니 내려진 처방이었다. 매일 아침을 거르는 나에게 ‘빈 속’ 이라는 단어는 친숙하고 익숙한 말이다. 부모님과 떨어져 독립한 이후로 가장 좋았던 부분 중 하나는 아침에 들어가지 않는 텁텁한 입에 밥을 욱여 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병원 밖을 나오면서 나는 결심했다.


 ‘이제는 내가 나를 보살펴 주고 챙겨주어야 해. 아침을 챙겨서 먹어보자.'


 컬러풀한 아침 식단 만들기 -평일

나를 보살피는 것은 부모님도 배우자도 아닌 나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고 하니 책임감이 생겼다. 맞다, 나는 남은 잘 챙겨도 나를 챙기는 일에는 왠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보호해야할 대상으로 삼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아침 잘 챙겨 먹이기 프로젝트는 이제 루틴이 생겼다. 눈을 뜨자마자 물 한잔을 떠놓은 후 화장실로 가 가글을 한다. 잇몸이 잘 붓는지라 아침에 바로 양치질을 하면서 첫 입맛을 피 맛으로 시작하고 싶지 않아서다. 요즘은 ‘유시몰’ 가글을 사용하는데 처음엔 다소 묽어서 느낌이 이상했지만 자극이 적어서 좋아한다.


 화장실에서 나와 떠놓은 물 한잔을 들이킨다. 밤새 입안에서 산다는 세균들을 보낸 직후라 그런지 물맛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그리고는 주방에서 늘 먹는 아침을 준비한다.


 늘 떨어지지 않게 준비해두는 ‘스테비아 토마토’, ‘초코 첵스’, ‘오틀리’, ‘요즘 그릭요거트 녹차맛’, ‘바나나’이다. 아침을 챙겨 먹기로 결심했을 때 내가 한 생각은 세 가지 였다. 첫째 챙기기 쉬워야 하고, 둘째 내 입에 맛있으면서 몸에 좋아야 한다 였다. 마지막은 컬러가 다채로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왼쪽부터 초코첵스와 스테비아토마토, 녹차그릭요거트와 오틀리


 컬러테라피스트 로서 음식에 있는 컬러에너지 역시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각 컬러마다 우리몸의 고유의 부분을 상징하고 있고, 심리상태를 읽어주고 우리 몸의 오라장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직관에 따라 이것저것 먹어보고 고정이 된 색들이 레드, 딥마젠타, 그린, 옐로우 였다. 아침에 레드를 먹는 것은 활력을 상징하고 우리 몸의 다리를 상징하기 때문에 기운을 북돋아줄 수 있다. 딥마젠타는 회복을, 그린은 마음의 안정감을, 옐로우는 삶의 기쁨과 의지를 다질 수 있도록 해준다.


 불을 쓰지 않고 칼을 댈 일이 없는 밥상이니 비교적 순조롭게 아침상이 준비된다. 담을때도 최대한 내가 좋아하는 예쁜 그릇에 담아 먹으려고 한다. 예전에는 귀찮아서 큰 보울에 하나 가득 다 넣고 먹어보려 시도한 적도 있었지만 기분이 나지 않았다. 날 잘 챙겨 먹이려면 볼 때도 아름다워야 하지 않겠는가?잠시 앉아서 흰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음식을 본다. 눈으로 보고 그 다음 입으로 들어간다.

 

 달달한 스테비아 토마토의 과육이 입 안에서 터진다. 토마토의 새큼한 맛이 싫었던 사람이 만든 건지, 어렸을 때 설탕 뿌려진 토마토의 추억이 살아나는 맛이다. 몇알 먹다보면 오틀리에 적셔진 초코첵스가 조금 보들보들 해진다. 오틀리는 귀리로 만든 우유인데 사실 우유보다는 싱거운 두유 맛이 나는 것 같다. 유당불내증이 있어 좋아하는 버터도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는데 우유대체품들이 많아져서 행복하다. 그 중 오틀리는 채식을 하는 사람에게도 유명한데 사실 맛보다도 패키지 디자인이 예뻐서 먹는다. 오틀리의 심심한 맛에 초코첵스의 초코가 녹아서 살짝 달달해질 때 그 맛을 즐긴다.


 첵스를 다 먹은 후에는 티스푼으로 뜬 그릭요거트로 눈이 간다. 요거트 역시 많은 양을 먹으면 그날은 하루종일 화장실 지옥행 열차를 탄다. 그래서 그나마 양조절이 쉽고 유청이 적어보이는 그릭요거트를 좋아하게 되었다. 여러가지 먹어보고 ‘요즘’ 이라는 요거트 브랜드의 것이 내 입맛에 잘 맞았는데 특히 녹차맛이 물리지 않고 특유의 요거트 냄새가 적어 선호한다. 무엇보다 색이 곱다.


 그리고는 바나나는 주머니에 넣는다. 지옥철에서 시달리며 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회사에 도착하면 단게 땡긴다. 그 전에는 짐을 풀자마자 바로 카페로 달려갔는데 매달 비용을 생각하니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들고 다니기 편한 바나나 하나를 챙겨서 가져가서 까 먹으면 애써서 온 출근길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


건강한 아침 식단 만들기 -주말

 주말 아침에도 같은 식단으로 아침을 먹는다. 약을 복용하는 것은 주 5일제가 아니라 주 7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조금 더 여유가 있을 때는 닭가슴살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다. 채소를 씻어서 물기를 빼놓고 전자레인지에 닭가슴살을 돌린 후 쭉쭉 결 따라 찢어둔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요즘 내가 찾은 레시피는 들기름과 간장, 김치시즈닝 이다. 집에 소스가 똑 떨어졌을 때였다. 예전에 요리연구가 지인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올리브오일 대신 들기름을 사용해보라고, 오메가3도 많고 맛도 좋다고 말이다. 그녀의 말 대로 해 먹어보니 눈이 번쩍 뜨였다. 고소하고 친숙한 향이 났다.


 들기름을 쪼로록 부어준 후 짜지않은 간장을 살짝 둘러준다. 계란비빔밥용 간장을 주로 사용하는데 짜지 않고 살짝 단맛이 나서 좋아한다. 그 다음은 ‘서울시스터즈 김치시즈닝’을 톡톡 뿌려준다. 아주 고운 고춧가루의 색이 나는데 짭조롬 하면서 김치향이 진하지 않게 난다. 감칠맛이 돌고 풍미가 더해진다.



김치시즈닝을 뿌린 들기름드레싱 치킨샐러드

 

 

때문에 에서 덕분에로 바뀌다

 약을 꾸준히 먹고자 하는 것은 다시 건강해지고 싶어서 였다. 그런데 약 때문에 귀찮은 아침을 챙겨먹어야 한다 라고 생각하니 도저히 기운이 나지 않았다. 기운이 좋아지고자 하는 건데 ‘~때문에’가 되니까 반대로 쳐지고 짜증이 났다. 마음가짐 부터가 시작이었다.


 이 참에 해보지 뭐. 이 참에 바꿔보지 뭐. 약 덕분에 새로운 루틴이 생겼네.

활기찬 아침 루틴으로 시작하니 그날의 아웃풋도 잘 나오고 화장실 가는 일도 훨씬 즐거워졌다. 한마디로 순환이 잘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정신과 연결이 되어 있다. 몸은 마차이고 정신은 마부이다. 마부가 정신을 차리고 즐겁게 출발하면 몸도 제 갈 길을 가는 법이다. ‘때문에’를 ‘덕분에’로 바꾸고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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