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마흔 셋

잊고 지낸 기억을 꺼내며 아빠와 화해하기

by 달잠

아빠는 마흔 셋


깡마른 남자가 작은 방 구석에 새우처럼 누워있다.

찢어지는 배를 움켜쥐어봐도 고통을 달래줄 몰핀은 없다.

밥 한 숟가락 못 넘겨도 양귀비 달인 물은 간절하다.


밝은 빛도 향기로운 꽃도 커튼처럼 드리워진 어둠을 밀어내지 못한다.

사춘기 아이처럼 세상과 다투며 살아남으려 몸부림쳤지만

식구들의 배와 마음을 따뜻하게 덥히지 못했다.


방황을 끝내고 밥벌이하러 간 공장에서 허락된 행복은 겨우 1년

몸이 부서진 후에야 싸구려 반지를 아내 손가락에 억지로 끼워준다.

때늦은 애틋함도 이젠 부질없는 일


더 일찍 철이 들지 못했음을 더 일찍 세상과 타협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그 남자는 마흔 셋.


목사님이 왔다. 차마 나오지 않는 소리를 목구멍으로 삼키며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항상 그를 외면해왔던 신에게 가죽만 남은 두 팔을 올려 간절히 외친다.

말기 암 환자는 기적이 아니라 고통의 끝을 바라고 바란다.


고향에 가고 싶다. 조건 없이 그를 안아줬던 들판, 풀밭, 냇가에 가고 싶다.

감나무 무성한 시골 기와집 안방에서

마흔 셋의 남자는 한여름의 초록 내음을 맡으며 세상과 이별했다.

고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철모르는 딸들을 남기고.


오십에 마흔 셋의 남자를 들여다본다.

어렸구나, 힘들었구나, 외로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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