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않고도 낙원에 이르는 법

아홉 번의 이직 후 깨달은 가장 빨리 낙원 찾는 법

by 인선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내 선택을 부정하는 낙인처럼 아주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던 말. 사실 나는 정말 잘 도망치는 사람이었다. 회사 생활도, 관계도, 나를 갉아먹는다고 느끼면 나는 주저 없이 도망을 선택하곤 했다. 업무를 하다 보면 흔히 느끼는 회의감이나, 누군가에 대한 원망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어딘가에 내게 꼭 맞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은 분명 존재할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나는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다음 직장을 찾아 나섰고, 자리를 옮길 때마다 실제로 환경은 조금씩 더 나아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매번 다음 이직을 결심할 때면, "역시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어."라며 스스로 그 지독한 말을 되뇌고 있었다. 환경은 좋아졌을지언정 내 마음속 결핍은 자리를 옮긴다고 채워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옮겨간 회사만 아홉 곳. 정말이지 나는 얼마만큼이나 애타게 낙원을 찾아 헤맸는지 모른다.


그리고 열 번째 직장에서 퇴사 후 홀로 일하는 삶을 시작하며, 나는 비로소 이 오래된 격언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 낙원은 장소의 이름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곳을 마주하는 사람의 태도'라는 사실을.




결핍의 항해를 마치며



아홉 번의 이직은 역설적으로 '완벽한 직장'이라는 환상을 매듭짓는 과정이었다. 더 나은 곳을 찾아다니던 항해를 멈추고, 홀로 내 일 앞에 서고 나서야 질문의 방향이 바뀌었다. "어디에 가면 있을까?"가 아니었다.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도망칠 곳 없는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서야 내 손에 이미 쥐어져 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가진 것들이 만든 정원


내가 깨달은 '낙원을 발견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단순하다. 내 손에 쥐어지지 않은 것을 갈망하며 밖을 기웃거리는 에너지, 그 에너지를 거두어 이미 가진 것들에 온전히 쏟는 것.


혼자 일하는 삶은 대단한 복지도, 화려한 이름표도 없다. 모든 걸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서늘한 자유뿐이다. 하지만 부족한 환경을 탓하며 밖을 기웃거리는 대신,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일에 온 마음을 다한다. 그렇게 시선을 바꾸면 나를 둘러싸는 공기도 달라진다. 그리고 느끼게 된다. 낙원은 신기루가 아니라, 오늘 내가 정성껏 닦은 책상 위에서 완수해 낸 작은 과업 위에 있다는 걸.




'지금, 여기'라는 이름의 마침표


행복한 사람은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 뻔한 말이 아홉 번째 퇴사 후에야 비로소 선명해졌다. 이제 나는 더 나은 곳이 있을 거라는 기대로, 마음을 미래에 두지 않는다. 대신 오늘 내게 주어진 것들을 더 많이 발견하고, 오늘을, 그저 지금을 산다.


낙원은 지도가 아니라 거울 속에 있다. 내가 나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하며 현재에 감사할 수 있다면, 지금 발 딛고 선 이 자리가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찬란한 낙원이다. 도망치기를 멈추고 '지금, 여기'를 발견한 오늘. 나는 진정한 낙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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