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sun Ryu Jul 14. 2024

여기 사람 있어요

화장실 셀프감금에서 찾는 교훈의 순간

토요일 흐린 비 오는 오후, 화장실에 갇혔다.

난 그냥 화장실에 갔고. 문이 밖에서 잠겼고. 열리지 않는다. 게다가 너무 생소한 열쇠 도어록과 돌려볼(?) 만한 손잡이도 없는 화장실 문. 어.. 이런다고??


완전히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그나마 다행히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가서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바로 메시지를 날렸다. ‘해나.. 나 갇혔어요.. 문 여는 법 좀 알려주세요. 나가고 싶어요’ 그리고 그 안에 무심히 눈에 들어오는 한 문장. ‘Typical response time 7 hours’  아.. 안돼.. 안 돼요.. ㅠㅠ


뭐든 해봐야지라는 마음에 맥가이버(yes.. 아이 엠 옛날 사람)에 빙의하여 화장실 선반에 있던 실핀으로 자물쇠를 건드려보고, 힘으로 문을 밀어도 보고, 창문 밖은 어떠한지도 보고, 실핀을 드라이버 삼아 자물쇠 나사를 돌려보기고 하고, 자물쇠 사진으로 구글검색하여 유튜브로 여는 법을 찾아보기도 하고. 짧은 시간에 많은 시도를 긴박하게 해 보았으나 모두 참담히 실패 혹은 가능성 없음.


첫 메시지에 답이 없어, 거듭 SOS메시지를 보낸 결과 화장실 셀프감금 50여분 만에 집주인의 회신이 왔다.


자물쇠는 내가 상상하기 힘든 방식으로 열리는 거였고, 한 시간을 넘기지 않고 다행히 탈출에 성공하였다. 진이 빠진다. 저녁에 영화나 한 편 보러 갈까 극장과 시간표를 봐뒀는데 포기. 나갈 기운이 없다. 나와서 생각해 본다. 핸드폰을 안 가지고 들어갔음 어찌 되었을 것인가. 문을 부수던가 한 서너 시간 더 씨름하다가 우연히 운 좋게 여는 방법을 터득했으려나. 그랬음 해피엔딩이겠으나 그랬을 가능성 또한 희박하다. 이래저래 상상만으로 아찔하다.


한국에서 똑똑한 척하면서 살다가 여기 와서 대놓고 바보 되는 일이 잦다. 우선 글과 말을 모르는 바보인 데다가, 환경이 낯서니 본의 아니게 자꾸 사고를 치고 당황스러운 일을 마주한다. 사실 지난 집에서는 현관문 열쇠를 안 들고 나와서 두어 시간 만에 집에 들어간 적이 있다. 기차 시스템이 익숙하지 않아 바짝 긴장하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가 자리 주인에게 친절하게 쫓겨(?)났고. 자전거길과 사람길의 구분이 아직도 쉽지 않다.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 보는 것 중에 만만한게 하나도 없다. 긴장하여 또 실수한다. 뚝딱뚝딱 오작동이 잦은 로보트다. 처음부터 아는 게 어딨어… 알아도 처음은 모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단 말이다. 스스로 위안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낯선 거지 진짜 바보여서, 모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래서 우린 처음인 모든 순간과 시간에 친절해야 한다. 그게 조금 덜 긴장하는, 혹은 한번쯤은 더 실수해도 되는 너그러운 다음을 만들어 준다. 친절함은 힘이 세다. 잊지말아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한 달이 지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