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의 여름방학 중 한 달을 통과하며
한 달이 지났다. 6월 2일에 출국하여 도쿄, 런던을 지나 베를린에 온 지 2주가 지났다. 서울을 떠난 지는 정확히 한 달이 되었다. 주어진 3개월 중 3분의 1의 시간을 통과했다. 도쿄와 런던에서 보다 확실한 여행의 기분으로 분주하게 여러 곳을 보는데 시간을 썼다면, 베를린에 온 이후로는 일상과 여행 중간 그 어디 즈음에서 적응과 헤맴을 동시에 진행 중이다.
꼭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을 버리려고 노력 중이다. 시간은 귀하지만 자꾸 뭘 하려고 애쓰면 그것이 또 다른 "일"이 되어버려 부담으로 돌아온다. 습관같이 굳은 바로 그 관성에서 벗어나 보려고 한다. 하지만 한 방에 딱 벗어나기란 다짐만큼 쉽지 않아서 드물게 떠나온 곳의 일들을 참견한다. 줄이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어느 때보다 이기적으로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아침에 너무 이르지 않게 일어나서 선크림만 슥슥 바르고 뜀을 조금 겸한 산책을 한다. 확인해 보니 6월 한 달 평균 걸음수가 12,818걸음이다. 일부러 공원에 가까운 위치로 집을 선택했는데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돌아와서 친구의 강권에 따라 레몬을 짜서 물과 섞어 마시고, 녹색 채소를 곁들인 아침을 먹는다. 생전 안 챙겨 먹는 영양제도 3종이나 소화하고 있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오후는 갤러리를 가거나, 인스타에서 본 재미나 보이는 이벤트를 보러 가거나 한다. 빡빡한 일정표는 없다. 베스킨라빈스처럼 그냥 맛보기만 해도 만족한다. 도서관도 맛보고, 축제도 맛보고, 플리마켓도 맛본다. 오후 9시까지 환한 햇살 인심이 너그러운 날들의 연속인 덕에 천천히 움직여도 되는 기다란 하루를 보낸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기억에 남을 작은 순간들이 존재하는 고요하고 담담한 하루로 매일을 채워보려고 한다.
전에 없이 느린 하루와 잉여스러운 이방인의 삶은 어색하다. 아는 이가 거의 없으니 기분과 생각을 나눌 이가 없어 특별한 순간들이 오히려 더 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문맹으로 살아야 하다 보니 글자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도 몸은 조금 더 건강해지는 기분이고 내가 즐겨하던 여러 날의 분주함 들은 기쁨이라기보다는 불안을 가려주는 용도였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발적 고립 한 달 차,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어느 책에서 그랬다. "내 삶을 돌봄으로써 누적한 에너지는 나를 좀 더 둥글고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라고. 지난 여러 해 동안 마음을 대신하여 한 껏 둥글어진 몸의 부기를 빼고, 마음 여기저기 번진 모난 면들은 다듬어 내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름이 지나면 다시 따스함이 필요한 시간이 다가올 테니, 남은 시간 조금 더 깊고 따수운 사람이 되는 순간들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본다.
2024.7.1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