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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un Ryu Aug 03. 2024

여름방학, 2개월 차 회고

빈틈이 넘치는 인선씨의 시간으로 살기

5주간 벨린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새로이 5주간의 뉴욕을 시작했다. 오늘로 뉴욕살이가 딱 일주일 지났는데 일주일이 길게 느껴진다. 벨린에서 5주간 차곡차곡 쌓은 익숙함이 관성으로 남아있어 갑자기 변한 환경에 대한 적응이 쉽지 않다.  


1. 아기새에 빙의되어 있는 귀염둥이 서른 살 사촌 동생과 한 집에서 살고 있다. 내가 얹혀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대신 특별한 여행과 생활비를 제공하기로 오기 전에 딜을 했다. 아기새가 고른 집은 무려 브루클린 반지하 에어비앤비인데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에피소드 공장 같은 곳이다. 이틀 전 새벽에 불안불안 걸쳐있던 커튼봉이 숙면을 취하던 나의 발목 바로 옆으로 자유낙하했다.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 (그냥 거의 바로 옆이라고 보면 됨) 갑자기 툭 떨어졌는데 둔한 아기새는 바로 앞 소파에 누워있었으나 떨어지는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한다. 다행히 다치지 않았고 다음 날 미국수리기사 아저씨를 알현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11시까지 온다더니 시원하게 1시에 오셨다. 후훗. 미국이다.  

자유낙하한 커튼봉과 수리 기사님의 성스러운 방문


2.  하루라는 시간에 만족감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벨린에서는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긴 산책, 흙바닥을 걷는 발의 촉감, 푸릇한 나무 냄새, 햇빛 쨍쨍 일광 소독이 하루의 긍정을 채워주었던 거 같은데. 이곳은 형태가 좀 다르다. 뉴욕에서는 다양한 전시, 공연들을 볼 때 비슷한 긍정을 감각한다. 몇 걸음 안 가고 계속해서 만나볼 수 있는 갤러리에서, 벤치마크 혹은 must visit에 속하는 거대한 건축물들의 놀라운 구성에서 등 대체로 자연의 손길과는 무관한 것들로 부터  새로이 배우거나 느끼는 순간을 경험한다. 센트럴파크는 멋진 곳이지만 그 곳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핵심은 자연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푸른 공간이 첨단의 회색 자본주의 한가운데, 높디 높은 빌딩숲에 둘러 쌓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벨린이 내가 안겨준 것들이 자연의 순간, 자연스러운 시간이었다면 여긴 인간의 것들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많이. 다르다.    


3. 좋은 환경이 좋은 습관을 만든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3개월간 기대했던, 기대하지 않았던 다양한 상황과 일들을 경험하고 있는데 "빈부격차"라는 단어 -  다소 과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 가 생활의 범주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아주 조금 경험하고 있다. 아침 조깅이 가능한(혹은 하고 싶어 지는) 환경에 사는 것, 굳이 돈을 내고 카페 혹은 어딘가로 들어가지 않아도 약속 시간 전 비는 시간에 가볍게 앉거나 걸을 수 있을 공공 공간의 유무, 냉동식품 말고 신선한 먹을거리를 구매하고 먹을 수 있는 환경과 여유 등등에서 비롯된다. 뉴욕은 여전히 많은 것들의 중심이고 어느 곳보다 많고 다양한 볼거리 먹을거리가 존재하지만 어디나 그렇듯 그것을 소비할 수 있는 사람에게 제한적으로 제공된다. 20%를 디폴트값으로 수렴하는 넘사벽 팁문화와 사악한 현재의 원달러의 환율 덕에 동생과 함께 일본 라멘, 벳남 쌀국수, 햄버거 뭐 이런 간단한 메뉴로 외식을 해도 최소 50달러(현재 기준 약 68,000원) 이상을 고려해야 한다. 접근성이 좋은 식문화적 다양성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용감한 시도와 유의미한 기회들이 엄연히 존재할 것이며 단순히 무식한 여행자로서 내가 모르는 것일 수 있다. 그 것을 전제로 하더라도 소비의 천국에서 느끼는 소비로 구분되는 기회의 차이는 여전히 맘 한구석을 헛헛하게 만든다.  

하지만 뉴욕의 지하철이 염려보다 컨디션이 너무 좋아서 깜놀. 집 앞에 신선식품 나눔(?)을 위해 긴 줄을 선 사람들이 있던 날  


2개월이 지났으니 이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확실히 더 가까워졌다. 빈틈 넘치는 에피소드 부자 인선씨의 여름방학을 마감하고 빈틈없(고 싶어하)는 직장인으로 지내야 하는 시간에 하루하루 근접해가고 있는 것이다.여름방학 2개월 차, 내가 앞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조금 더 선명하게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환경도, 시간도 내가 어디에서 어떤 것들에 기쁘고 행복해지는지, 내가 나를 촘촘히 관찰하는 시간을 가지는 중이다. 다음 주에는 만나본 적 없는 먼 친척이 사는 시카고에 갈 거고, 마지막 주에는 동생과 캐나다로 오로라를 보러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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