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를 위한 응원
첫째 아이가 광물과 암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일전에 좋아할것 같아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이 꽤 흥미로왔는지 종종 뚫어져라 보곤 하더니 이내 몇몇 페이지를 따라 그림도 그리고 현장 학습 차 집 앞에 나가 이 돌 저 돌을 줍기 시작했다. 루비를 우리 집 앞뜰에서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듣고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가! 아이에게 보석은 그렇게 쉽게 찾아지는게 아니라고, 책에서 본 커다란 보석들은 대부분 박물관에 있다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지면 뉴욕에 있는 커다란 박물관에 가 눈으로 보자고 달랬던 기억은 아직도 참 우습다. 그 이후로 아이는 레고로 박물관을 만들고 동생과는 박물관이 엄청 대단한 곳인듯 각종 놀이를 진행했다. 해적 놀이를 하면서도 “찾은 보석은 모두 박물관에 기증한다, 알겠나!”하며 씩씩하게 외치고 밖에 나가 모은 돌들 중 몇은 솔로 깨끗하게 씻어 그 박물관을 채우기도 했다.
아이는 이제 자기가 모은 돌이 어떤 이름을 가진 것인지 알고 싶다. 퇴적암일까? 화성암일까? 석영일까 아닐까? 이런 궁금증을 아주 쉽게 해결해 줄 수 있다면 좋을텐데, 바깥에서 만난 흔하디 흔한 돌의 이름을 딱히 궁금해해본 적이 없던 나는, 광물의 결정만 보고 이런저런 이름을 짐작하기도 어려운 미천한 지식을 가진 나는 아이 앞에서 답답하고 또 괜히 미안하다. 그리고 다급히 궁금해진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스치듯 생각난 것이 모스 경도계였다. 아이가 쌓은 돌 무더기의 모두를 다 헤아리긴 어렵겠지만 그 중 몇몇의 정체는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아이에게 모스 경도계 이야기를 해주고 관심 있어 하던 보석들의 경도도 알아보며 한나절을 보냈다.
그렇게 미지의 돌을 긁어 관찰하며 그 정체를 알아가는 과정에 대해 찬찬히 이야기하면서, 나는 내 아이에게도 닥칠, 어쩌면 상처가 되고 아픔을 될 일들과, 그 안의 우리 모습을 생각해봤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우린 살면서 이런저런 사건에 부딪힌다. 깊이감이 있는, 마음 따뜻하되 의연하며 부드러우나 옳은 가치를 단단히 안고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아무래도 그런 사건들을 어떻게 마주하고 소화하느냐에 따라 빛날테다. 해서 아이의 앞날에 응원을 보냈다. 긁히더라도 견뎌야 함을... 혹여 부서 떨어져 나가는 것들이 있더라도 털고 일어나야 함을 다짐하듯 말이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필요할 응원이었다.
먼 어딘가로 보내는 응원엔 호기심에 반짝이는 아이의 눈과, 활짝 웃는 아이를 쓰다듬는 엄마인 내 손이 있다. 우리 바깥으로 빛나던 초여름의 햇살과 부서지던 연녹색의 빛깔도. 바람에 일렁여 부드럽게 움직이는 나뭇잎들의 그림자가 유난히 유연하게 느껴지던 공기도.
응원이 필요한 그날, 부디 우리에게 이날의 따스함이 공명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