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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태 Mar 17. 2020

남극통신 - 남극의 주방 1

미술&경제 전공 학부생이 남극에서의 5개월을 기록합니다

2019.11.09.


원래는 출국부터 남극 도착 전까지 4일간의 일정을 따로 게시물로 만드려고 했는데 그럴 여유가 없어서 남극에 온 이후의 일부터 정리합니다.

기록용으로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많이 활용했는데 여기 인터넷 상태가 좋지 않아서 예전걸 보는게 어렵네요. 거기에 참 많은 걸 써놨는데.


여튼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조리보조로 일하고 있습니다. 풍경은 워낙 특별하니까 말할것도 없겠지만 또 신기한 점은 해가 지지 않아서 24시간 밝다는 겁니다. 밤 10시에 나가도 밝기 때문에 멀리있는 휴화산과 빙벽, 해표를 감상할 수 있죠.


기온은 여긴 이제 여름에 접어들고 있어서 그런지 따듯합니다. 기지 중앙인 식당에 날씨를 표시해주는 모니터가 있는데 현재 영하 7.4도를 기록하고 있네요. 아, 그리고 여기선 영하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분도 있습니다. 영상에만 '영상' 을 붙여주는거죠.


영하 10도 정도까지는 반팔에 가디건 걸치고 나가서 셀카를 찍고 들어올 정도는 됩니다. 추위보단 눈(eye)이 문제인데요, 햇빛이 엄청 강해서 선그라스를 끼지 않으면 눈이 많이 아픕니다. 사방이 하얘서 그런것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모두들 펭귄얘기를 하시는데 아직 펭귄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몇십키로 떨어진 곳에 영화 '해피 피트' 의 모델이 된 장소가 있고, 날이 풀리면 이따금씩 기지 주변에 출몰한다고 하네요. 나중에 나가게 되면 꼭 셀카를 찍도록 노력해볼게요.


기지 주변을 다니다가 문득 깨달은 게 길냥이가 없다는건데(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그냥 재밌는 통찰이라) 나중에 펭귄이 근처에 오면 길펭 삼아서 오레오로 이름지을 계획도 있습니다.


생활은 제 업무인 주방보조 역할을 하루 종일 하는겁니다. 현재 기지 체류인원이 85명 정도 되는데 이 인원의 하루 3끼 식사를 챙기는 거죠. 보통 새벽 5시반이나 6시쯤 출근하는데 오늘은 저녁 8시 20분쯤 퇴근했네요. 물론 중간에 쉬는시간도 있어서 생각했던 것보단 덜 빡빡합니다. 그렇다고 힘들거나 피곤하지 않은건 아니구요. 그래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들 좋아서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온지 3일만에 갑자기 현타가 왔는데 '여기와서 뭐하는거지, 집가고 싶다' 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저녁준비하면서 바로 사라졌을 정도니까요. 또 "고생했다, 수고했다, 잘먹었다."는 말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도는걸 보면 요리가 좋긴 한가봅니다. 조리보조라서 큰 욕심 없을 줄 알았는데 쓴소리에는 가슴도 아프고.


오기 전에 남극에서 5개월간 공부할거를 추천받았는데 (외국어, 민법, 리트 등등..) 그런거 하는 거보다 요리계 1타강사의 현강과 함께하는만큼 요리를 열심히 배워가는게 제일 의미있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재료도 생각보다 다양하게 있는데, 사프란, 양갈비, 랍스터, 대게, 전복, LA갈비, 삼겹살 등등 돈걱정 없이 재료를 마음껏 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보다 잘 먹는것 같아요. 3끼 다 챙겨먹고 고기 야채 과일 유제품 등등 섭취하니까. 그래서 살이 조금 쪘어요.


지금 이걸 작성하고 있는 공간은 식당인데 한쪽 벽면에는 도서관처럼 온갖 시리얼과 과자, 라면, 에스프레소 머신 등이 준비되어 있고, 맞은편에는 정말 책들이 꽂혀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아직 한번도 안읽어본 하루키의 책들이 많아서 여유가 되면 도전해보려구요. 그리고 그 사이 벽면 에는 트와이스와 레드벨벳의 사진이 있네요. 아이유 사진도 있으면 좋을텐데 말이죠.


사람들은 다 좋습니다. 도대체 면접을 어떻게 보면 이렇게 구성할 수 있는건지 싶을 정도로 친절합니다. 헬기 조종사로 외국인도 6명정도 있는데 여기 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다들 젓가락을 사용할 줄 알고 매운 음식도 잘 드시는 편이더라구요.


얼마전까지는 기지에 저보다 어린 사람이 없는 것 같았는데(엄청난 노안이 아닌이상) 이번에 새로 들어온 팀들은 대학원생으로 추정되는 분들이 있어서 막내의 자리를 위협받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만 23세에 문과가 여길 올 일은 거의 없으니 만족하렵니다.


좀 정리해서 멋지게 쓰고 싶었는데 자기 전에 생각나는대로 적다보니 두서없는 글이 된것 같네요. 그치만 이것도 제 오랜 스타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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