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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태 Oct 15. 2020

남극엘 다녀왔다.

지금까지 남극 관련해서 쓴 것 중 제일 맘에 드는 글

 이제 6개월간 진짜 후기를 쓸 예정입니다. 1년 전의 그 날짜에 맞춰서.

 이 글 또한 인스타그램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여기까지 브런치에 천천히 옮겨놓은 후에 일기같은 후기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조회수가 폭증해서 좀 무리를 했습니다. 브런치 선공개 컨텐츠를 좀 생각해봐야겠군요. 아무튼 이 글은 부제에도 써놨듯 지금까지 남극 관련해서 쓴 것 중 제일 맘에 드는 글입니다. 매번 이만한 글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니, 더 좋은 글을 바랍시다.



2020.06.01.

 남극엘 다녀왔다.


 사람들이 “남극 어땠어?” 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응 추웠어. 겁나.” 라고 해야할지, “남극의 여름인 12월은 서울보다 덜 춥고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는데..” 라며 사실을 얘기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좋았어.” 라고 해야할지 “너무너무 힘들었어. 엄마 보고 싶었어” 라고 해야할지도 잘 모르겠다.



 이 글은 원래 한달 전쯤 계획했던 건데 그때까지만해도 내가 생각한 답은 “응, 별거 없었어.” 였다. 남극에 들어갈 때 비행기에서 남극 대륙이 보이니까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나와는 달리, 여러 번 와보셨던 옆자리 형님들은 ‘뭘 그리 호들갑이냐’ 하는 표정으로 별거 없다는 얘길 하셨는데 그게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4월 24일에 써놓은 글을 보면 별거 없다고, 그치만 와보기 전엔 절대 모르는 그런 별거 없음이라고 적어 놨다. 해보고 이루기 전엔 엄청 대단해보이지만 막상 이루고 나면 별거 아닌것들 있지 않냐면서. 그리고 5월 중순까지는 이 생각이 이어졌다. 아마도 한국이 너무나 그리워서 흔들리는 나무만 봐도, 길가의 꽃향기만 맡아도 행복해서 그랬을거다.



 하지만 한국의 풍경이 다시 일상이 되고, 하루에 한달치씩 남극에서 찍은 사진을 돌려보니(대략 1만장 정도 되는 것 같다) 생각이 바뀌었다. 대체 내가 어딜 갔다온건가 싶고 모든 게 꿈만 같다. 남극에서의 5개월-일하고, 먹고, 등산가고, 해표와 펭귄을 봤던 것. 그리고 배에서의 40일-멀미와 석양과 돌고래와 일출들. 그렇게나 탈출하고 싶었던 남극인데 벌써 그립다. 이제야 좀 객관화가 되는 것 같다. 정말 대단한 경험을 하고 온거다.



 근데 내가 잘나서 그런것도 아니고 또 남극을 다녀왔다는 건 내 일부분일 뿐이기에 얼떨떨하기도 하다. 난 막 탐험정신이 강하지도, 장발을 하거나 수염을 기를 만큼 튀고 싶어하지도 않는 사람인데. 어쩌다보니 남극에 가서 머리랑 수염을 잔뜩 길러왔을 뿐.



 덧붙여 남극 도착한지 며칠 안되고부터 느낀건데 참 적당한 시기에 갔다온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남극에 오려면 잃는 것도 포기해야 할 것도 많은데 난 젊고 어리니까 그런게 별로 없었거든. 매일 형님들이 아내 및 자녀들과 통화하며 그리움을 달래는걸 보면 마음이 찡했다. 또 하루가 다르게 아이들이 아빠를 덜 반긴다는 얘길 들으면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근데 언젠가 다시 가고 싶다. 세 번쯤. 장보고 한 번, 세종 두 번 더. 맥머도 기지도 가보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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