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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태 Nov 29. 2020

Q.살면서 이보다 더 짜릿한 경험을 할수있을까? 우주?

A. 북한..?

 일기를 뒤적여 본다. 2주쯤 됐을 때

‘남극에 온 게 반쯤 실감 난다. 아직도 온전히 믿기지가 않는.

라고 써 놓은 게 있고 그로부터 일주일쯤 뒤엔

‘오늘 문득. 살면서 이보다 더 짜릿한 경험들을 할 수 있을까? 우주 정도..? 짜릿한 걸 목표로 살아본 적은 없긴 하지만.’

 이라고 써 놨다. 맨 위의 문장은 다음날 주방 크루와 한 대화고.

 같은 날에

‘3주 좀 넘었는데 5개월 길다. 오로라랑 펭귄 보고 버틴다. +월급’

이라는 말도 있네. 저때부터 약간 눈앞이 캄캄했나보다.


 그래도 ATV도 타고, 해표도 보고, 펭귄도 보고 사람들도 좋고 12월까지는 대체로 즐거웠나 보다. ATV는 정말 잠깐 몰아봤지만 잊지 못할 경험이 됐다. 언 바다 위에선 브레이크만 잡아도 드리프트가 되기에. 무한궤도는 또다른 맛이 있고.

 식당이나 푸드트럭을 하겠다는 꿈도 잠시 가졌다가 지극히 피가되고 살이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들을 듣고 접은 기억도 있다.

 ‘요즘 꿈이 하나 생겼다. 예전에 잠깐, 언젠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귀국하면 바로 해보고 싶어졌다. 학교 앞에서 식당을 하는 것. 아침에 장 본 걸로 그날그날 다른 메인메뉴+반찬 3종+과일. 내킬때마다 다른 브레이크타임을 가지고 저녁엔 예약제로 와인한잔 하며 즐기는 데이트·소개팅 다이닝. 테이블은? 홀직원은? 계절은 언제? 단기로 빌려주는 곳이 있나? 돈벌려고 하는 건 아니고 학생들 먹이고 경험용으로. 마감치면 친구들 불러서 파티하고 술 한잔하고.’

 돈이 충분해서, 일을 안해도 되는 시점엔 해보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있긴 하다. 하루견과 같은거도 저렴하게 팔거다. 학생들 건강을 위해. 다만 주변 식당들하고 협의는 해야겠지. 나는 계획이 다 있구나?

    

 아참, 날 남극으로 이끈 책을 만든 곳(안전가옥)에 DM을 보냈었다. 그쪽 책을 보고 어쩌다보니 남극에 와있더라는 얘기. 작가님한테도 전해졌고 안전가옥 인스타에도 올라갔었는데 팔로워 3명 늘어서 즐겁다는 얘기도 써있네.     

 ‘생각해보면 살면서 하고 싶은 건 거의 다 했던 것 같다.’     

 산책도 처음 나갔는데 푹푹 빠지는 눈에 추위에 강렬한 볕에 생고생을 했지만 아직도 좋은 기억이긴 하다.


 수염을 3주차부터 기르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2달 쯤 후 노홍철 김기방 달마 예티 설인 바야바 등의 별명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일을 잘 하지 못해서 슬퍼하는 글이 많다. 조리장과 그의 친구이자 다른 조리보조였던 분이 참 고생이 많았다. 그럼에도 내게 항상 친절했던 그들.

  

 이따금씩 친구들하고 연락이 되면 힘을 얻었던 것 같다. 군대에서 전화 거는 기분이랄까. 받아주었던 친구들 모두 정말 고맙다. 페이스톡이든 보이스톡이든.

 

 이 모든 일이 대략 2~3주치 일기의 ‘일부’ 일 뿐이다. 매일같이 한바닥씩 써댔으니.


 단편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된 이번 글은, 마음에 들진 않지만 원래 이 6개월짜리 기획에 가장 부합하는 글이기도 하다. 힘 다 빼고, 일기장 발췌만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웬 욕심이 생겨가지고.


 며칠 뒤면 1년 전의 나는 펭귄을 본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실물은 별로 안귀엽다는 거 정도? 분명 그 일주일 전에 펭귄을 찍어온 사람의 영상을 보곤 ‘너무너무 귀엽다 진짜.’ 라고 써놨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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