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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태 Nov 22. 2020

남극에서 만난 채식주의자

이 춥고 배고픈 곳에서 채식을..?

"난 고기를 안먹어"

"난 해산물을 못먹어"

"난 둘다 안먹고 계란이랑 우유까지만 먹어"     


 남극에 도착 한 지 3주가 조금 안되었을 무렵, 화산 관련 다큐멘터리를 찍는 팀이 왔다. 오스트리아인, 독일계 미국인, 영국인으로 구성된 팀이었는데 저 위의 세 문장이 순서대로 그들의 식성이었다. 오스트리아인과 영국인은 자신들의 신념때문에 그러는 것 같았고, 독일계 미국인은 알러지가 있다고 했다. 사실 독일계 미국인의 이름은 그렉, 영국인의 이름은 클라이브라는게 기억나는데 오스트리아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서운해할까봐 국적으로만 부르는 것이니 양해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이 말을 씀으로써 그는 더 서운해지겠지.


 처음엔 누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안(못) 먹는지 구분하는 것만 해도 굉장히 큰 노력이 필요했다. 매번 그들에게 주의해야할 음식을 설명하거나 그들이 우리에게 와서 물어보는 건 양쪽에 모두 힘든 일이었기에.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고기, 해산물, 야채에 해당하는 약자를 각 음식 앞에 붙여놓는 것이었다. 분초를 다투며 음식을 만들어내다가 일이 추가되니 처음엔 귀찮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기는커녕 여전히 귀찮았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편이긴 했는데 3명이서 100인분의 3끼와 도시락까지 챙기려니 몸이 힘들고 마음까지 약간 힘들뻔 했다. 그들이 떠나기 전에 우리에게 고맙다며 고급 초콜릿을 주고, 케임브릿지 대학교 화산학 교수이자 넷플릭스에도 작품이 있는 영국인이 나중에 영국에 오면 연락하라며 명함을 주지 않았더라면 정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알려주는걸 불평했지만, 요리하는 것 자체에 비하면 그래도 양반이었다. 한식은 그나마 채식에 가깝지 않느냐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사실 김치부터가 젓갈이 들어가기때문에 완전한 채식을 하는 사람에겐 조심해야 할 것이 많은 식단이다. 특히나 식단에서 육류의 비중이 굉장히 높은 남극에선 더욱 그렇다. 그들은 먹을게 없어서, 우리도 100인분을 준비하며 따로 3명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예를 들면, 야채볶음을 만든다고 해도 거기에 맛을 내기 위해 굴소스가 들어가면 독일계 미국인과 영국인은 먹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간장처럼 해산물이 없는 소스로 따로 만들었다. 만약 식단 상 고기가 들어간 메뉴가 대부분이면 그들만을 위해 계란이나 채소로 만든 아예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나야 몇 개월 불태우고 가면 되지만 1년을 일해야 하는 조리장은 채식주의자들을 덜 챙겼어도 되는데 본인이 더 나서고 고생하면서까지 배려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재료에 한계가 있어서 나중에는 그들도 반쯤 체념하고 비빔면을 찾아 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야채나 과일의 종류가 극히 제한되어 있는 상황이니 우리도 별 수가 없었다.


 그 외에도 한국인 채식주의자 한 분을 만났었다. 식사를 거르고 오징어짬뽕을 끓여드시는 모습이 보여서 식사가 입에 안맞으시냐고 여쭈니 고기를 안먹는다고 하셨다. 원래는 해산물까지도 먹지 않는 채식을 하시다 거의 모든 음식에 해산물이 들어가니(위에서 말한 김치에 젓갈처럼)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고기만 안먹는 걸로 바꾸셨다고 했다. 채식주의자 친구가 있는 덕분에 약간의 지식이 있었기에 그분과 대화가 잘 통했는데, 자신의 서러움을 알아주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그런지 굉장히 반가워하셨다. 나중에 쇄빙선 아라온에서 일할 생각 없냐고 하실 정도였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나는 아직 완전한 채식을 하진 않지만 현 상황에선 고기를 줄여나가려고 노력중이다. 육식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연구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최소한 소고기는 많이 줄이려고 한다. 소가 생산하는 메테인도 상당하고, 소가 소비하는 곡물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곡물이 적고, 그 곡물은 또 화석연료를 사용해서 운반되기 떄문이다. 장족의 발전이다. 채식주의자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땐 존경심을 표한답시고 "와 정말 대단하다. 난 고기 너무 맛있어서 못 끊겠던데.. 먹고 싶지 않아?" 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무지했다. 그럼에도 나를 버리지 않아준 친구에게 참 고맙다. 물을 몇천리터씩 먹어대는 아보카도도 가끔씩만 먹으려고한다. 나 하나가 변한다고 얼마나 큰 영향이 있겠냐마는 그럼에도 이런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바뀔테니까. 하지만 한편으론 채식주의를 주장하려면 축산업자들이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그 대안을 제시하고 돕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남극의 채식주의자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 춥고 배고픈 곳에서 고기 없이 지내느라 고생한 그들이 귀국해서 좀 더 행복한 삶을 살아왔기를 바란다. 그리고 존경하는 클라이브 교수님은 내가 영국을 방문하거든 꼭 숙식을 제공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채식도 마다하지 않을테니.

의외로 물속에 들어간건 보기 쉽지 않은 물범
자연적 거리두기 지켰습니다
남극에서의 첫눈
합성 아닙니다. 점프력이 좋을 뿐..


+오래 전에 써놓은 글인데 다시 보니 맘에 안드는 부분이 많다. 저때 좀 힘들었어서 그런지 채식주의자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글처럼 느껴질까도 걱정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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