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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태 Nov 17. 2020

이 온도.. 습도.. 그리고 유통기한

남극에서 제일 놀란 세 가지

남극에 도착해서 제일 놀란 세 가지다.


온도는 너무 높아서,

습도는 너무 낮아서,

유통기한은 다 지나서.     

 손가락이 떨어질 것 같은 추위가 아니라 반팔에 가디건 걸치고 나가도 몇분은 버틸 만한 날씨였다는 건 여러 번 얘기했고, 습도가 낮다는 건.. 이렇게 낮을 줄은 몰랐다.

 이번에 찾아보니 남극은 ‘한랭사막’ 이며, 연평균 강수량이 200mm도 안 된다고 한다. 강수량 측정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내리는 눈은 드물고 어디서 모래처럼 뺨을 때리는 눈이 날라와서 쌓이더라.

 남극에 가기 전 잠깐 머물렀던 호바트의 박물관에서 남극이 사막과 함께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라는 설명을 봤다. 음. 에이. 설마. 사막이 1위고 남극이 2위인데 둘이 엄청 차이나나는 그런 정도겠지.

 기지에 처음 와서 온습도계를 보니 실내온도는 체감과 동일하게 20~25도정도이기에 온도 측정부는 믿었다. 다만 습도계는 기지의 어딜 가든 15%라서 고장난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가습기를 작동시키니 60까지도 올라가는걸 보고서야 고장나지 않았다는 걸 알았고, 곧이어 무서워졌다. 15%인 곳에서 살고 있다고? 40%는 되어야 살만하다고 알고 있는데. 나중에야 알게 된 건데 15% 라는 수치는 습도계의 측정 최저치일 뿐이고, 실제 습도는 한자리수 였다고 한다. 5%인가 7%인가. 그나마 15%라는 플라시보 효과라도 있어서 덜 힘들게 지낸게 아닐까? 심한 사람들은 발바닥이 갈라져서 쓰라릴 정도라고 하고, 나도 샤워하고 온몸에 로션을 바른건 15년만인 것 같다. 어쩐지 일을 시작 한 지 3일만에 손 상태가 말이 아니더라니. 비닐을 끼고 자는 등 별 짓을 다 해봤으나 악화되기만 할 뿐이라 그냥 포기했다.

 습도가 낮으면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우선 빨래가 잘 마른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6시간 정도면 아주 건조한 상태의 속옷을 만날 수 있었다. 낮에 하면 밤에, 밤에 하면 낮이 되기 전엔 입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해가 하루 종일 떠있으니 낮밤이라고 하기 좀 그런가)그리고 개인적인 추론인데 음식이 잘 상하지 않는 것 같다. 얼마나 된 건 지 감도 오지 않는 삶은 계란이 상하지 않은 채 무슨 젤라틴 모형처럼 건조된 것도 발견했다.

 그 연장선에서 유통기한. 기지에 도착해 우유를 마시려는데 팩 위에 써있는 유통기한이 몇 달도 더 지난 상태여서 다시 내려놓았다. 대부분의 과자나 레토르트 식품도 마찬가지였고. 처음엔 이거 먹다가 골병드는거 아닌가 싶었지만 다들 먹길래, 그리고 먹고 싶어서 나도 그냥 먹기 시작했다. 다 마셔갈 때쯤이면 밑 부분에 있던 걸쭉한게 꿀렁꿀렁 나왔던 것 빼면 먹을 만 했다. 그때부터였어요. 멸균우유를 맹신하게 된게.. 원래 위장이 좋은편이 아니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6개월간 배탈이 단 한번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귀국하고 한달에 한 번씩 배탈이 났지.

 기지 생활은 음 일기를 보니 프랑스 환경부 장관인가가 온다고 해서 다과를 준비했다고 써있다. 내가 한건 거의 없고 아마 조리장이 거의다 한걸 거들거나 옮겼겠지. 삼겹살 양갈비 새우 장어 등등으로 바비큐파티를 한 것도 있고. 아, 남극 초기에 인스타에 올린 글에서처럼 여기서 제일 유명한건 우리 셋일거라는 말도 써있다. 하루 세 번 기지 전체인원을 꼬박꼬박 마주칠테니 당연한 얘기다. 그리고 주7일 하루 11~13시간 일하는 것도. 나중엔 쉬는 날도 생기고 무척 여유로워지긴 했지만 저땐 어떻게 버텼나 모르겠다. 같이 일하던 두 분이 새삼 존경스러워진다. 그래도 큰 불만은 없었던 게, 연구원들은 여기 머무는 한두달 동안 수집한 데이터로 1년간 연구를 한다는 이야길 들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허락 하는 한 매일같이 밖에 나가거나 연구를 진행하기에, 그분들을 지원하는 내 역할 또한 주말이나 휴일이 없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회덮밥, 초밥, 대게, 로스트비프 등 한국에서 먹기 힘든 것들을 만들고 맛볼 수 있어서 행복했던 시기 같다.

 조리 칭찬이 많다는 얘기도 써있다. 잠도 못자고 힘들어하시는 분에게 “먹는 낙으로 산다” 는 말을 들은 날은 얼마나 기쁘던지.

 이젠 정말 먼 이야기 같다. 돌아온 직후에도 내가 여길 갔다왔나 싶었는데, 이젠 남극이라는 장소뿐만 아니라 그 생활조차도 감각 속에서 떠나버린 느낌이다. 6개월만에 입사와 퇴사를 하고 6개월간 놀았으니 그럴만도 하지만.


남극에 가서 처음 읽은 책.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중 김애란 작가님의 '서른'
로스트 비프. 줄여서 로비. 오늘 저녁은 로비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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