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여깄지. 뭐하는 거지. 집 가고 싶다. 12월에 가는걸 붙었어야 하는데. 다시 9월로 돌아가면 지원 했을까? 5개월 너무 길다 우울하다.”
지금 보면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약간 웃기기도 한데 저때는 꽤나 심각했던 것 같다. 우울함을 거의 느끼지 않고, 애초에 그리 심각한 사람도 아닌데 저렇게 써놨을 정도니.. 숙소 침대 위에서 집이 그립고 엄마가 보고 싶었던 그 감정과 공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남극에 온 지 한시간 만에 “다 봤다~ 집에 가자~” 고 하셨던 형님의 말이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이유를 생각해보면,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하고 한강 놀러가고 자취방 가서 밥해먹고 하하호호 지내다 새벽 5시반부터 일어나서 중노동을 하려니까 눈앞이 캄캄해졌나보다. 낮잠자다 악몽을 꿨던것도 같고. 오전에 윤태호 작가님이랑 사진도 찍었는데 말이야.
근데 또 그 밑에 줄에 보면
“다행히도 저녁 준비하면서 사람들 다 너무 착하고 좋아서 싹 풀렸다.”
“햐 내가. 요리로. 남극을. 왔다고? 내가. 뭘 잘해서. 햐.”
“암튼 행복한 하루였다.”
쩝. 하루 동안 참 많은 생각을 했나보다. 조울증이야 뭐야.
흔히들 직장은 일/사람/급여 중에 한두개만 맞아도 다닐만 하다고 하는데 남극은 이 셋이 다 맞는 몇 안되는 직장일거다. 다만 장소가, 거기가 남극이라는 게 문제지. 그래도 이건 한 1월 넘어가서야 느낀거고 그 전까진 일이 고되긴 해도 해피해피한 하루를 보냈다. 덕분에 앞으로의 글들도 1월 전까진 철판에 손목 찔려서 수술한거 빼면 적당히 힘들고 적당히 어렵고 무지 행복하고 정신없는 내용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