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라'브런치에 글을 써야지' 하고 생각한 지 3개월이 지났네' 라고 생각한 지 3개월이 또 지났네요. 그 동안에도 인스타그램에는 글을 꾸준히 올려왔지만, 브런치는 뭔가 큰맘 먹고 올려야 할것만 같은데 그 큰맘이 잘 생기지 않아서 이제야 올립니다. 업로드를 자주 하지 못해 구독해주신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 상태로 6개월을 보냈으니 제 상심이 얼마나 큰지 아시겠죠..? 아마 오늘 글이 여러 개 올라올겁니다. 인스타와 에브리타임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글들을 거의 다듬지 않고 올릴 것 같습니다. 대신 더 재밌는 일을 기획하하고 있으니 너그러이 봐주세요.
2019.12.16.
꽤나 오랜만이네요. 며칠 전부터 써야지 했다가 오늘 모종의 이유로 기분이 좋아서 적습니다. 스토리를 꼬박꼬박 올리기도 했고 펭귄, 쇄빙선 본거랑 화상통화 빼면 사실 별거 없어서 그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요. 나머지는 뭐 컨테이너에서 음식이랑 짐 나른거 정도?
펭귄은 뭐 보셔서 알테지만 정말 귀엽습니다. 근데 솔직히 제 기준엔 실물보다 사진이 귀여워요. 실물은 귀여움보단 신기한게 더 크고. 쇄빙선은 아직 가보진 못했는데 얼음을 깨고 들어오는걸 보니까 신기하긴 했습니다. 어차피 집에 갈 때 보름정도 탈 예정이니 아쉬움은 없구요.
화상통화는 부산에서 열린 극지체험전에서 어린이 및 학부모님들과 했던건데 결혼 했냐, 연봉이 얼마냐, 펭귄 먹냐 등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아참, 기억에 남는 일화로 그저께는 통신대원이 화상통화를 했는데 사회자분이 가족 보고싶지 않은지, 어머니께 하고싶은 말이 있는지 등을 물어봐서 시큰둥하게 답했는데 알고보니 어머니가 오셨더라는 뭐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제일 그리운 건-즉 여기 없는 건-아기와 동물입니다.(아 얼마전에 화산연구팀이 나감으로서 여성도 기지에 없지만 군대만큼 걸그룹 영상에 환호하고 그러지는 않습니다.) 애기들이랑 동네 길고양이, 강아지, 철물점에 있는 순돌이, 삼월이 등등 어른 이외의 존재가 그립습니다. 기지엔 귀여운 생명체가 없거든요. 제가 최연소이기도 하고. 아참 그러고보니 펭귄팀에 저랑 생년월일이 같은 분이 있어서 곧 함께 파티를 하기로 했습니다. 휴. 하루라도 일찍 태어났으면 최연소를 뺏겼을 텐데.
제일 아쉬운 건 친구들 졸전을 가지 못한겁니다. 정말 기대되는 작품들이 많았고 꼭 축하해주고 싶었는데. 다시 한 번 미안하다는 말과함께 축하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한 일주일 전부터 남극에 있다는 게 온전히 실감이 났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일종의 매너리즘?혹은 현타?가 잠시 왔죠. 아주 잠깐. 어딜가나 똑같겠지만 결국 여기도 일터고, 주거공간이고,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입니다. 아마 지구 어딜 가든 비슷하겠죠. 일전에 군대에서 제대 후 제주도에 살 계획을 세우며 서울에서 이주한 분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탈출구로 선택한 제주도에 거주하게 되면 또다른 탈출구가 필요해진다' 라는 문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서 딱 좋은 시기가 저는 3개월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여긴 일상이 단조로우니까 2달이 안돼서 이렇게 된것 같기도 하구요. 헬기나 ATV를 타지 않는 이상 하루 활동반경이 300m도 안되니까요. 물로 헬기를 타면 200km씩 될때도 있답니다. 근데 그래도 여전히 흐린날의 빙하와 변화무쌍한 날씨를 통신실 테라스에서 보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이제 슬슬 한국에 가면 무엇을 할지 짱구를 굴리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가자마자부터 복학 전까지, 장기적으로는 삶 전체에 걸쳐서. 일단 불어난 살을 뺴기 위해 열흘 정도는 칩거하면서 두부랑 양배추만 먹어야 할 것 같고, 다음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남극 덕에 군입대때 만큼이나 많은 사람과 연락이 됐거든요. 그거 말고는 아는 교수님께서 저를 보고 말씀하신 '보헤미안 부르주아'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지를 생각하고 있고 몇 가지 가닥을 잡아나가고 있습니다.
수염은 이제 3주 좀 넘게 길렀는데 오기 전이랑 인상이 꽤나 바뀐 것 같습니다. 한국 가서도 당분간은 유지해 볼 생각입니다. 못해도 서른살로 보인다는, 혹은 양촌리에서 배농사 짓다가 망한 아저씨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작은 소망이 생겼는데 언젠가 펭귄 연구팀으로 여길 오는 겁니다. 학부생도 가능은 한가보더라구요. 필요하다면 생물 복전도 생각중입니다. 그래서 펭귄 박사님께 잘해드리고 있습니다. 국도 잔뜩 퍼드리고고 먹을거도 챙겨드리고.
한국은 이제 시험기간이 끝났거나 막바지겠네요. 또 연말 분위기도 물씬 날거구요. 모두의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시기겠네요. 마치 갑자기 인연을 만날것만 같은. 뭐 꿈은 빨리 깨고 내일부턴 주방에서 캐롤이라도 틀으면서 분위기를 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