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태 Oct 03. 2020

남극통신 - 남극의 주방 4

2020.01.26


원래는 한 5일 전쯤 올리고 '설날 특집을 기대해주세요~' 로 끝맺으려 했는데 게으름+당구로 인해 설이 지나서야 올립니다. 3호를 발간한 뒤 한 달도 더 지나 올리는걸 보니 참 게을렀구나 싶네요. 그간 크게는 크리스마스와 신정, 구정이라는 이벤트가 있었네요. 고향집에 선물을 보내기도 했고 각각의 명절에 맞는 음식들을 준비했습니다. 스토리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구정은 명절 분위기가 제대로 났습니다. 세뱃돈을 받았거든요. 근데 그래도 연말연시를 한국에서 보내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설렘과 몰랑몰랑한 마음으로 온동네가 가득차는, 그 간질간질한 분위기를 정말 좋아하는데 여기선 거의 느끼지 못했거든요. 슈크림 붕어빵이랑 슈톨렌도 못 먹었고.



아맞다. 생일도 있었는데 여기선 3끼 모두 생일상(T본 스테이크 등)을 즐기고 글렌피딕을 선물 받는 등 거하게 축하받았습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정말 많이 축하인사를 보내줬구요. 기프티콘은 귀국하면 쓸 예정이고 귤은 배송받으신 어머니가 참 좋아하셨습니다. 출국 전에 생일에 열어보라고 편지를 써준 셀리들은 또 어떻구요. 모두들 고마워요 정말.


손목 쪽을 다쳐서 4주째 치료중인데 참 느낀게 많습니다. 우선 다치고 하루 반정도는 일을 못하고 쉬었는데 몸은 편해도 마음이 정말 불편했습니다. ‘쓸모 있는 사람’ 이 되고싶다는 마음이 가득해지더라구요. 한때 유한계급(요즘말로는 돈많은 백수쯤 되려나요)이 삶의 목표였던 제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사회가 굴러가는데 일조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을 수도 있다는 충격이죠.


1월 초에는 난생 처음으로 향수같은걸 느껴봤습니다. 카페에서 커피마시면서 책읽거나 공원 벤치에 앉아서 사람들 구경하는 그런 일상이 그리워요. 학교, 카페, 거리, 음식, 사람들. 굳이 한국까지 안가도 탈 남극만 해도 어느 정도는 충족될 것들도 있긴 한데 친구가 페이스톡으로 학교를 보여주는데 왜 그리 예쁜지.. 서울 야경에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김영하 작가는 여행이 일상의 부재라고 했는데 여긴 좀 다른 의미로 부재한다는 생각이예요.



극지적응훈련으로 밖에서 텐트치고 하루밤 자고 등산까지 하고 왔는데 잊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는 모든게 그렇긴 하겠지만 남극에 와서 한다는건 정말이지. 아참, 남극에서 등산하면 좋은점은 1. 물을 챙길 필요 없이 눈을 퍼먹으면 된다 2. 내려올 때는 썰매타듯 미끄러져 내려올 수 있다. 의 두 가지입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산행 후에 0.5kg이 빠지는건 덤.


요즘은 드럼과 피아노를 매일 30분 정도 연습합니다. 드럼은 대만대 천체물리 교수님께서 지도해주시는데 한국 가서도 배울만 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피아노는 궁 ost였던 얼음연못을 연습중이고요. 원하는대로 연주가 될 때의 쾌감을 얼마만에 느껴보는건지. 쇄빙선 일정으로 인해 출남극이 5일정도 늦어졌습니다. 오로라를 보고 나갈 확률이 더 높아진 셈이죠.


저는 돈욕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엄청난 금액은 아닌데도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돈을 벌어본 적이 없어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100만원만 벌어도 밀리어네어라고 놀리던 사람이라 그런가. “돈 욕심 없다고 하는 사람을 조심하세요. 그사람은 돈에 미친 사람입니다.” 라는 말이 이해가 갑니다.



한편 저 자신을 더 발견해나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밑바닥도 보고 몰랐던 부분도 알게되고 실망도 하고 만족도 했지만 자기애나 자존감은 여전히 충만합니다. 또 살면서 하고 싶었던 것은 대충 비스무리하게 다 해왔던 것 같아서 조금은 기분이 좋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따로 정리하겠지만 몇몇가지 에피소드는 자랑스럽게 내보일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책을 다섯 권 반쯤 읽었고 영화는 엄청 많이 봤고(B급 며느리랑 바이스 보세요.) 미생을 7화? 까지 봤습니다. 며칠 전엔 게임도 처음으로 해봤는데 추억의 리볼트랑 영화만드는 시뮬레이션, 스타2, 플스 등등 재밌더라구요. 아참, 이슬아 작가님의 글도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근데 문제는 여기서 할 수 있는 모든게 재미없어지는 노잼 현타시기가 이따금씩 찾아온다는 겁니다. 생각보다 그 주기가 짧아져서 지금 좀 고민중이예요. 책 영화 드라마 게임 글쓰기로는 안되는 뭔가가 있는건지. 밤엔 기지 밖으로 나가면 안되니까 산책도 못하고. 미술관 영화관 카페 모티집 별달밤 친구들과의 수다.


마지막으로 기지 앞으로 놀러온 펭귄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코로나 바이러스 조심하세요.


#남극통신 #남극통신4호 #남극 #antarctica #southpole #여행 #travel

작가의 이전글 남극통신 - 남극의 주방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