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태 Aug 03. 2021

재밌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

빼놓을 수 없는 말

가장 친한 친구가 생일날 편지를 써준 적이 있다. 군대에 있을 때였는데, 제대하면 휴학하고 요리를 하겠다는 결심을 얘기한 뒤였다. 편지에 보면 “난 네게 항상 세상의 요구를 대변하는 느낌이다. 복학하자. 요리는 방학 때 할 수 있지 않느냐. 뭐 이런 식의. 너의 꿈을 내가 갉아먹는 것 같아 미안할 때가 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사실 이 친구는 맞는 말만 한다. 친하기에 진정으로 미래를 걱정하는 말을 해주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제시하고 도와준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얼마 전에 이 편지를 다시 읽다가 친구랑 전화하며 얘기했다. 그때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써줬는데, 미안할 필요 없다고. 정말로 고맙다고. 너 덕분에 내가 하는 선택이 얼마나 많은 걸 포기한 것인지, 그렇기에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자각하게 된다고. 이 길을 가지 않았다면 갈 수 있었던 다른 길을 생각하게 해주기에,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순간순간에 집중하며 열심히 살 수 있게 해준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저 문장 앞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전쟁을 막고 싶다고 언젠가 얘기했었지. 아직 그 꿈은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만일 상황이, 또는 내 자신의 능력이 여의치 않아, 그저 그렇게 살다가도, 저 꿈을 다시 생생히 마주치게 되면 다시 뽀송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넌 아직 작아지지 않은 것 같아 좋다. 균형을 맞추어주는 존재랄까.” 친구에게 나는, 나에게 친구는 서로가 균형을 맞춰주는 존재다.

내가 휴학이나 요리를 하겠다고 할 때 주변 사람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멋지다며 응원하거나, 걱정하며 말리거나. 어느 쪽이든 다 고맙다. 응원은 힘이 되고, 걱정은 자극이 되니까. 특히 나와 정말 친하고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의 걱정은 ‘나를 이렇게나 아껴주는구나’ 싶을 때가 많다.


그렇기에 무턱대고 도전을 이야기하거나 꿈을 찾으라고 부추기는 건 정말 조심스럽다. 친하지 않은 누군가가 당신의 꿈을 응원한다? 당신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믿었던 사람이 꿈을 반대한다? 당신을 진정으로 아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충분히 친하지 않은데도 굳이 반대해서 갈등을 만들거나 설득하는데 에너지를 쓰기는 쉽지 않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럭저럭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마음도 클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오지랖’이라는 단어 하나로 압축된다.


물론 ‘무관심=응원’ 혹은 ‘애정=반대’가 항상 맞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각박하지 않다. 친하지 않아도 관심을 가지고 진심이 느껴지는 응원을 해주는 사람도 많으니까. 다만 세상이 각박하니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걱정하는 것일 뿐.


그럼에도 모든 걸 목적성으로 환원하는 건 대학교 입시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한다. 오롯이 현실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 동아리를 선택할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입시에 어떤 도움이 될까, 생활기록부에 어떻게 쓰일까를 고려했던 시간을 더 살고 싶지는 않다. 사실 난 그때도 일단 하고 싶은 걸 하고,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지 하는 합리화를 했다. 행복한 고등학교 생활을 영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니 입시에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이제는 취업 때문에 대학교 생활도 비슷하게 반복될 가능성이 높지만, 휴학이든 뭐든 해서 잠깐만이라도 목적성을 떠난 시간을 보낸 건 좋은 경험이었다. 망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문학회에 매년 새로운 사람이 오는 걸 보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이미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 글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원래는 책 제목을 비틀어서 현실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내용을 쓰려고 했다. 재미만 마냥 추구하면 안 된다고, 현실을 완전히 잊지는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꿈만 좇다가 힘들게 사는 사람 이야기는 정말 많이 들리니까. 하지만 애초에 이 책을 쓰려는 목적이 기울어진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다른 쪽에 무게를 실으려던 것이라 그렇게 끝맺기엔 아쉬웠다. 재밌는 걸 하라고 바람 넣기만 한 게 걱정이지만, 그 반대도 역시나 마음이 편하진 않다.


그리고 사실 독자 여러분은 결국 알아서 잘 선택하고 남 탓을 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결국 선택은 자기 몫이니까. 그리고 거의 모든 답은 이미 스스로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르니까.


재밌으면 그걸로 충분하잖아?


작가의 이전글 남자가 무슨 발레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