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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태 Jan 11. 2022

나는 어쩌다 우즈베키스탄에 가게 되었나

어쩌다 보니 길어진 출발 전 이야기

 자가격리 기간 동안에 완료할 줄 알았으나 귀국하고 한달 가까이 지나서야 작성하는 우즈베키스탄 후기. 공개된 곳에 글을 쓰는 것이 언젠가부터 굉장히 조심스러워졌다. 완벽에 가까운, 만족스러운 글만 남기고 싶은 욕심도 있고,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들이 있을까봐 그렇다. 하지만 더 미뤘다가는 해를 넘길 것 같아서 일단 쓴다. 일필휘지로 쓰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일기장과 카톡과 메일함을 뒤져 사실관계를 체크하고 있다. 새벽에 초고를 썼고, 지금은 보글보글 끓는 뵈프 부르기뇽이 완성되길 기다리며 쓴다. 허세인거 알지만, 장시간의 요리를 기다리며 요리 관련된(요리얘기는 없고 요리하거 간 거 준비하는 얘기지만) 글을 쓰는 기분은 특별하니까 기록해 둔다.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제트스트림 0.5 볼펜 한 자루를 다 쓸 만큼, 일기를 꼬박꼬박(매일이라고는 못 하겠다. 사마르칸트와 부하라에는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일기장을 가져가지 않았으니) 썼으니 기록의 밀도와 정확성은 어느 정도 보장되지 않을까. 매일 열장씩 올렸던 스토리는 그보다 더 신빙성 넘치는 기록일테고.     

 가기 전부터 보자면, 6월 중순에 지인의 sns를 통해 한식진흥원의 ‘2021년 한식전문인력 해외진출사업 파견인력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필수사항이 한식조리기능사자격증만 있어도 되는 것이었고, 우대사항이 영어가능자 혹은 유경험자 정도였다. 어라? 이거 해볼만한데?     

 자소서 쓸 당시 한 달간 소식이 없던 출판사에서 갑자기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를 써달라는 연락이 와서 약간 징징대면서 자소서를 수정했던 기억이 있고, 책 출간일하고 면접일하고 단 하루 차이라서 조금 빡셌다고 할 명분은 있다. (출간 직전에는 뭐 별로 할게 없어서 오히려 자소서 쓸 때가 바빴던 듯.. 아 이때쯤 집에 좀 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때쯤 스토리에 한식 관련 책 수십 권 쌓은걸 올렸는데 자소서 쓰느라 빌린 것..)     

 원래는 파견 전 얘기를 길게 쓰려던 건 아닌데.. 쓰다보니 쓸게 많다. 남극때도 준비부터 썼으니. 암튼 서류 통과 소식을 전하는 전화에서 백신 맞았냐는 질문 하길래 그렇다고 답하며 ‘오 이것도 합격에 궁종족 영향을 줄지도?’ 라는 생각에 부풀어있었다. 당시에 시행착오 끝에 빠르게 잔여백신을 맞았기에.. 면접은 화상으로 진행됐는데 유명한 셰프님들이 면접관이셔서 적잖이 긴장했었다. 거의 여덟분? 열분? 정도의 면접관이 게셨고.. 최종 합격자 공고 나기 전에 전화 와서      

 사실 나는 1지망이 터키였다. 친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한때 내 꿈이 중동에 요리학교를 세워서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것이었는데, 다른 국가 파견은 호텔 셰프를 가르치는 것이지만 터키만 유일하게 일반인들 대상이라 그 꿈에 굉-장히 가까워질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거에 맞게 자소서도 갈아엎고 면접도 봤는데! 서류인지 면접인지에서 나보다 고득점인 분의 1지망이 터키여서 떨어졌고,, 여차저차해서 우즈베키스탄에 가게 된 거였다. 근데 그 어떤 곳보다 우즈베키스탄이 좋았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어딜 갔어도 잘 지냈을 테지만, 우즈벡은 모든 게 좋았으니까. 어떤 게 좋았는지는 차차 설명하겠다.

 어떤 국가는 파견이 아예 취소되기도 했고, 나조차도 7월 말에 합격 발표가 났지만 8월 중순까지도 양국 상황에 따라 파견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전화를 계속 받았다. 그래서 주변에도 거의 알리지 않았고, 일단 복학 신청하고 수강신청까지 완료했는데! 파견 여부와 관계없이 교육부 원격 멘토링에 참여하게 되어 여유롭게 중도휴학을 신청했다. 휴학 그거 그냥 하면 되지 않냐고 할테지만, 장학금을 받고 있기에 조금 복잡한 사정이 있다.

 9월초만 해도 우즈베키스탄 입국 시 2주간 자가격리라서 10월 중순부터 자가격리 포함 6주의 일정을 계획했는데, 9월 23일부로 그게 폐지돼서 10월말부터 4주간으로 변경했다. 사실 우즈벡에서 귀국할때만 해도 4주 너무 아쉽다는 생각밖에 안 했는데 오자마자 며칠만에 오미크론이 유행하는걸 보며 다행이다 싶었고..

 출국 준비는 그래도 수월한 편이었다. 출발 몇주 전에 캐리어 세트를 샀는데 내부가 오염돼서 반품시키고, 다시 산 캐리어는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환불하고, 출발 몇주전에야 원하는 캐리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심지어 반품 캐리어는 판매처랑 연락이 안돼서 출국 하고서야 가족 도움으로 반품하고 귀국 하고서야 통장에 돈이 들어왔다. 음 안수월했나?

 사실 출국 전 40여일간 일기가 아예 없다.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로 안쓴거다. 인스타를 뒤져보니 안경사고, 친구들 만나고 전시보고 그랬나보다. 출국 2주 전부터는 혹시라도 코로나 걸리면 출국 못하니 친구들하곤 밥도 안먹고 마스크쓰고 카페에서만 봤던 기억이 난다. 고마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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