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와의 짧은 인연
무라카미식의 표현을 빌자면,
고양이(가토, 혹은 반쪽이)가 없어진 것을 깨닫기까지는 며칠이 걸렸다. 왜냐하면 그 암고양이는 자기 기분 내킬 때만 가게에 왔고, 한동안 전혀 나타나지 않기도 했으니까. 고양이는 자유를 중시하는 생물이다. 또한 그 고양이는 보아하니 다른 데서도 먹이를 챙겨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주일이나 열흘씩 나타나지 않아도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간이 이 주일을 넘어서자 조금씩 불안해졌다. 사고라도 당한 건 아닐까. 그리고 삼 주째에 이르렀을 때, 나는 고양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무라카미 하루키의 ' 여자없는 남자들' 인용)
정확히 3주가 지나고 나는 길고양이의 죽음을 직감했다. 시골에서 길고양이의 사망율을 높이는 가장 큰 요소 중에 하나가 바로 Road kill이다. 이전에 반쪽이 녀석이 위험천만하게 4차선 도로를 건너는 것을 몇 번 목격한 적이 있다. 그리고 운전을 하다보면 아주 흔히 차에 치인 녀석들을 자주 목격했다. 굶주림과 추위, 질병도 길냥이들의 죽음을 재촉하여 집고양이와 다르게 길냥이들의 수명은 3년을 채우지 못한다고 한다. 반쪽이가 중고양이로 우리집에 들락거린지 1년 반만에 무지개 다리를 건너갔으니 그녀 나이 두살즈음에 무지개 저편으로 간 것이다. 있다 없으니까 햇살 좋은 날에 해바라기하며 같이 독서삼매경에 빠지던 녀석이 그립다. 있다 없으니까.
-묵혀 두었던 카메라 필름을 현상하며 그녀를 회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