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마르크의 '개선문'을 읽다가
번역가를 거침 외국문학작품들.
가공을 거친 음식같다.
중국이나 일본문학의 번역본은 가까워서 싱싱한 채로 잘 배송되어 온다.
하지만 아메리카나 유럽에서 건너온 작품은 통조림에 넣어져 상하지 않도록 가공되어 온다. 그 맛은 번역되기 전의 싱싱함을 잃고 그저 부폐하지 않도록 보존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 같다.
술술 잘 읽히고 공감이 잘 되는 동양 작품과 달리
초등학생에 깍은 연필처럼 나무도 검은 심도 울퉁부퉁하고 매끄럽지 못하다.
생물과 통조림 사이.
원어를 유창히 구사하지 않는 이상,
현지에서 먹지 않는 이상
이 살아있는 표현을 어찌 맛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