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에 대하여. 색약인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색안경 낀 시선.
고등학교 시절,
제2 외국어를 배웠다.
여학생은 중국어, 남학생은 독일어.
편리에 의해 그어 놓은 이런 이분법적인 발상에 혀를 찬다.
북촌에 산책을 갔다 색약검사책을 연상케 하는 그림을 구경했다.
나는 색약이었고 매해 초에 하는 신체검사 날이면
친구들은 동물원 희귀 동물 쳐다보듯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저건 무슨 색인지 보여? 이건 무슨 색이야?’
‘너는 색약이 있으니 마케팅은 어렵겠다.’
색약이라는 이유로 광고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담임은 진로를 수정했다.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색약이 아니더라도 보는 시선이 백 가지 다 다르다.
어찌 정상과 비정상을 두 가지로만 구분할 수 있을까?
정상인 사람도 조금 정상, 조금 더 정상, 아주 조금만 비정상인 사람 다 제각각이다.
그냥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주세요.
그렇게 매년 신체검사 날이면 색약인 나를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