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과의 결혼 4년 차, 김옥진(1)

[대화의 기록] 1편_결혼

by 인터미션

스스로 많이 받아들일 수 있고, 더불어 많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이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대화의 기록] 첫 번째 주제로 '결혼'을 정하였습니다.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지금의 세계 속으로 드러서게 한 문이 '결혼'이었기에 그 어떤 것보다 자주, 깊이, 또 여러가지로 생각해오고 있는 터였습니다. 한 때는 결혼준비학교가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을 정도로 예상치 못하게 닥친 소소하고 대대한 난관에 정신을 놓기도 했었거든요. '라떼는 말이야'는 아니지만, '이런 결혼들이 있다'를 만나면 결혼을 했든 안했든, 할 것이든, 안 할 것이든, 그간 가져온 결혼에 대한 생각에 또 다른 가능성을 더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코로나 19로 인해, 주제상 대화에 참여해주시는 분들의 육아, 근무 등의 여건으로 인해 대부분의 대화는 영상통화를 활용합니다. 또한 글에 실린 모든 사진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의 개인사진이니 임의 사용을 하지 말아 주세요.


그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마스크팩이다. 결혼식이 한 달도 안 남았을 때 일에 치이고 결혼식 준비에 치여 한창 까끌해진 내 얼굴을 보고 “1일 1팩이라도 하라”며 브랜드를 콕 찍어 일러주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녀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똑 부러지게 하는데, 그 말들에는 언제나 직접 선택하여 몸으로 겪어낸 데이터들이 쌓여있어 주저함이 없고 상대방을 결코 헛갈리게 하지 않는다. 물론 골라준 마스크팩은 그날 바로 구입했다.


짧지 않은 시간 일터에서 김옥진이라는 사람을 알아왔지만, 나의 결혼 소식을 알리면서 그녀의 험난했던 연애사와 결혼에 대한 생각을 비로소 나누게 되었고, 그렇게 세상에서, 인생에서, 여자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서로에 대한 범주를 넓히게 되었다. 분명하고 당당하게, 앞장서 걸으며 끝까지 책임지려는 그의 태도는 일 뿐 아니라 결혼이라는 테마에서도 변함이 없다. 이 기록은 2017년 결혼 후 지난해 말 마흔 나이로 출산을 경험하고 올 겨울 복직을 앞둔 김옥진과 나눈, ‘전우애’가 쌓였다는 결혼에 대한 대화다.


@ 카페인가봐요. 아이는 어린이집 갔죠?

아침에 보내고 나왔죠. 잠깐만요, 확인할 게 있어서. 남편이 지금 당근 나가있는데, 당근마켓.(웃음) 이유식 제조기를 팔았거든요. 막상 써보니 번거롭고 애도 잘 안 먹어서.


@ 역시 자상한 남편!(웃음)

결혼하는 후배들이 보기에 내 남편이 쏘 스윗한데, 그들에게 “너 이거, 이거, 이거 안고 살아볼래?”하면 선뜻 말을 못해요. 나는 좋은 이야기만 하니까. (웃음) 신랑이랑 같은 업계, 같은 판이니까 내 이야기를 다 듣기도 할테고.


@ 요즘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아침 7시 전후로 눈을 뜨죠. 보통 새벽에 아이가 한 두 번 울어서 날 소환해요. 우리는 따로 재우니까. 그 땐 신랑이 토닥토닥해도 울고 무조건 엄마여야 해요. 두 번째 쯤 소환하면 그땐 가서 옆에 누워요. 어차피 조금 있으면 일어날 시간이니. 그렇게 자고 있으면 애가 막 깨우죠. 나 건들고 위에 올라타고, 그러면 비몽사몽 일어나서 기저귀 갈고 우유 먹이고.


9시 반 전에 어린이집에 가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후 3, 4시에 데려와서 집에서 간식이나 저녁 이유식 먹이고 산보를 가요. 그리고 집에 와서 씻기고 막수하고 재우러 들어가죠. 그 사이 신랑은 저녁을 만들어요. 보통 9시에 저녁을 먹고 그 다음엔 넷플릭스 보고 서로 수다 떨고 빨래 같이 개고, 그리고 나가 떨어지는 거죠.

06.jpg 생후 11개월 딸과 그녀 ⓒ김옥진

@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엔 뭐해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잖아요. 저도 어떨 땐 엉덩이 한 번 못 붙이고 허둥지둥 하원길에 나서기도 하거든요.

요즘은 온라인에 글을 쓰고 있어요. 돈 받고 쓰는 글, 굉장히 소중한 기회잖아요. (웃음) 그걸 쓰기 위해 주로 카페에 나오는데, 그러면서 간단하게 점심 먹고, 신랑이 나가지 않으면 아기 없는 사이에 제가 집에서 일을 하거나 하죠.


@ 오! 어떤 글이요?

아는 분 중에 온라인 콘텐츠 운영 회사에 계신 분이 있는데, 경제에 관심도 있고 글도 쓰는 전공자를 뽑는다는 채용 공고를 내셨더라고요. 그런 사람이 난데 왜 사람을 뽑냐고 했죠. (웃음) 제가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일단 원고를 한 번 써 볼래? 해서 부동산과 주식으로 몇 꼭지 썼는데 한 출판사에서 주식 글을 책으로 내고 싶다고 해서 썼던 원고를 불리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 주식과 부동산이라니, 전문가가 옆에 계신 걸 알았더라면 좀 물어볼 걸 그랬어요. 얼마 전에 집 보러 다니느라 엄청 고생했거든요.

주식 관련 책은, 주식을 처음 하는 사람 입장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기록한 건데 책 제안을 받아서 원고를 불리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또 ‘월세부터 자가까지, 서울여자 독립기’라는 제목으로 쓰는 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던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집을 샀는지를 풀고 있고 지금 온라인에 연재되고 있어요. 브런치에 썼던 임신 육아기도 책 제안이 있어서 정리 중이고. 그런 원고 작업을 아이 낳고 100일 언저리부터 계속 했어요. 신랑이 전시라든가, 뭐 보고 싶다고 하면 같이 갔다 오고. 그래서 이만하면 육아휴직이 정말 저에게 건강하고 유익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분들에 비해서.


@ 저는 출산 후 정말 예상하지도 못하게 많이 무기력했어요, 지금도 업다운 중이지만. 몸이 힘들기도 했고 타지에 뚝 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우울하기도 했거든요.

저도 그럴까 봐 공인중개사 시험 책도 샀어요. 원고 작업이 끼어서 제대로 못했지만 그래도 공부도 하고 해서 시험은 봐보려고요. 아주 조금이나마 눈이 열리지 않을까 싶어서요. 남들보다 오래 걸리면 걸리는 대로 해보자, 그런 상태에요.


@ 육체적으로 피곤하진 않았어요? 전 걸을 때마다 골반이 삐걱거려서, 이제야 제대로 걷네, 싶었던 게 출산 후 8개월 무렵이었거든요.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해.

코로나가 신랑 개인에게는 너무 괴로운 일인데, 저한테 한편으로는 도움이 되기도 한 거죠. 프리랜서인데 과거 종합소득세 낸 걸 보면서, 아, 내가 휴직해도 둘이 먹고 살만하겠다, 생각했거든요. 여름부터 연이어 해외출장을 다니는 사람이라 “난 여름부터 독박육아야” 하고 다녔는데, 코로나로 여름이 되기도 전에 모든 일정이 다 깨져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신랑은 정말 폭발 직전이었죠. 돈은 없고 갖고 있는 걸 계속 쓰기만 해야 하니까. 그 와중에 대출금은 계속 갚아야 하고, 어느 순간 폭발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렇게 이 사람이 집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진 거에요. 그래서 제가 몸이 힘들 수 있는 일들을 신랑이 다 커버한 거죠. 출산 직후에는 친정 엄마가 수시로 오가시면서 제 컨디션도 봐주시고, 아이가 100일이 안 되었을 때도 엄마가 아이 봐줄 테니 나갔다 오라고도 하셨고. 저보다 신랑이, 그런 감정적인 디프레스가 엄청 더 많았거든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자기 시간도 없고. 그래서 같이 나가면 신랑이 너무 좋아해요. 주말에는 시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셔서 저는 나와서 원고 쓰고 남편도 남편 일 하고. 일단 남편이 너무 신나하니까 나도 행복하죠.

04.jpg 부부는 아이를 낳기 전 해외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스냅사진을 찍었다. 지금같은 때에는 더욱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추억이 되고 있다. ⓒ김옥진

@ 평소 결혼에 대한 생각은 어땠나요, 하겠다? 안 하겠다?

스무 살 때 제 생각이, 스물 다섯에 결혼해서 아기 낳고 아기가 좀 컸을 때 사회생활을 편하게 해야겠다, 였어요. 말도 안되지, 내가 마흔에 애를 낳았는데. (웃음)


아주 막연하게 일찍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아버지 형제가 8형제인데, 그 중 딱 한 집이 아이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이가 없는 집이 가지는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너무 잘 알게 되었죠. 제가 스물 두 살 때 그 집에 아이가 생겼는데, 우리 엄마랑 비슷한 또래시니 얼마나 노산이셨겠어요. 그걸 보면서, 저렇게까지 아이를 갖고 싶은가, 아이가 꼭 있어야 하는 존재인가, 생각을 하기도 했고. 또 막연하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정말 어른이 되는 거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 서른 여덟에 결혼을 하셨으니, 생각처럼 빨리는 아니었네요.

업계 들어와서 일 시작하고 바쁘게 지낼 때는 아예 생각을 못했죠, 그땐 연애도 안 했을 때고. 그리고 한 번 결혼 직전까지 갔다가 어그러졌었는데, 그 때 든 생각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혼자 살아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겠다’ 였어요. 그 때부터 독립을 준비하게 됐죠. 막연하게 결혼해서 독립할 줄 알았는데 잘 안 됐고, 그렇다면 나 혼자라도 집 밖을 나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결혼하지 않고 마흔 넘도록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돈 뿐 아니라 정서적인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보기도 했고요.


그래서 독립하겠다고 엄마한테 얘기했는데, 그날 엄마가 밤 새 우시고(웃음), 다음 날 체념하신 듯 나가 살고 싶으면 그리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독립하고 2년 반 만에 결혼했어요.


@ 당시 결혼이 어그러진 이유가 뭐였나요?

자존심이었던 것 같아요. 서로의 트라우마가 부딪히면서 결국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한 게 아닐까. 그 때까지도 결혼이 뭔지 잘 몰랐던거죠. 그 일을 겪고서야 ‘아, 결혼은 그간 두 사람이 살아온 집에서 분리해서 나오는 것이구나’, 생각하게 된 거죠. 집안 문제에 내가 끼어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때 만나던 사람과 연애를 오래 했고, 매일같이 만났기에 나는 그 사람을 정말 많이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나도 상대방의 자존심을 간과하고 있었고, 서로의 자존심을 받아들이는 게 용납이 안 됐던 거였죠.


부모님께 “결혼을 엎어야 할 것 같아요” 하고 출근했는데 그날 회사로 당일특송 편지를 태어나서 처음 받아봤어요. 아빠가 보내신 거에요. ‘네가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선택했으면 좋겠다’고요. ‘엄마나 아빠, 친척들에 대한 걱정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너의 행복만 생각해서 결정하라’고 편지에 써서 보내셨더라고요. 어쨌든 그 때 한 시행착오가 남편 만나서 결혼하는 과정에 또 지금 사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2편에서 계속

< 유니콘과의 결혼 4년차, 김옥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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