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기록] 1편_ 결혼
< 유니콘과의 결혼 4년차, 김옥진 >(1) 편에 이어
@ 형부와는 자존심이 충돌하진 않았나요. 어떻게 결혼까지 갔다고 생각하세요?
남편은 굉장히 뜨거운 사람이에요. 결혼 결심에 제일 컸던 부분은 살면서 이렇게까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또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거였어요. 행복한 가정에서 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부분에서도 문제가 없었고요.
지금까지 내가 쓴 카드결제 내역을 월별로 몇 년치 놓고 봤었어요. 저는 가끔식 그렇게 하거든요. 연애를 할 땐 카드결제금액이 줄고 연애를 안 할 때는 결제액이 늘어요. 그 주기가 얼추 맞더라고요. 내 마음에 불안이 싹트면 뭔가를 사는 거에요. 그렇다고 엄청난 걸 사는 것도 아니고 남자친구에게 엄청난 걸 받는 것도 아니지만, 내 마음이 외롭다고 느꼈을 때 그걸 채우기 위해 뭔가를 지르는 삶을 이미 몇 년간 살아왔다는 거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정서적 안정이 너무너무 중요한 사람인데 그게 안되면 결국 스스로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거죠. 그러기엔 나는 너무 가난한데. 그 안정감이라는 부분에서 남편은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이 애정의 강도가 강했고 나에게 가장 뜨거웠던 사람이었어요.
@ 남편과 대화가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일의 분야가 같아서 일 것도 같지만, 일 외 다른 분야의 대화도 엄청나게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신랑이 하고 있는 일이 장르는 다르지만, 결국 제가 했던 일과 결은 같아요. 프리랜서의 생활은 크게 다르지 않고, 예술가와 부딛히는 프리랜서의 장점과 한계는 저도 겪어봤으니 그게 신뢰를 쌓는데 도움이 되었을 거예요. 기본적으로 둘 다 말이 많고, 수다를 좋아해요. 자연스럽게 함께 해야 하는 모든 순간을 “이건 어때?”라고 물으며 가게 됐어요. 아기 태어나고 같이 못 나갈 땐 영상 통화하면서 장보고 그랬으니까요. 둘 다 작은 것까지 다 알아야 하는 성격 탓인 것도 있을 거에요.
신랑은 누가 가르친 걸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찾고 인정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 전 가끔 키워드를 던지고 돌아서야 할 때도 있어요. 그럼 또 혼자 열심히 찾아요. 제가 뭘 말하면 흘려 듣지 않아요. 그러니까 대화가 되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제가 더 무심하죠. 무디고.
연애 초반부터, 결혼 준비하면서도 많이 학습을 시켰죠. 뭐든 “부모님 말대로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배우자와 상의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거라고. 네이트 판에 별의 별 이야기들이 많이 올라오잖아요. 그런 글 같이 보면서 “넌 이럴 때 어떻게 할 거냐” 그런 이야기도 굉장히 많이 주고 받고. 결혼 전에 ‘반반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도 했는데, 결혼식 비용이며 생활하는데 드는 돈을 반반으로 하는 것에 나도 찬성한다, 그럼 내가 임신 기간도 최저임금으로 계산하겠다, 아이를 낳아서 시터를 쓰게 되면 비용도 반반하고, 대신 독박 육아를 하게 되면 시터 비용을 나에게 줘라, 그런 이야기도 했거든요. 신랑 첫 마디가 “이 여자 똑똑하네” 였어요. 이제는 남편도 지금 사회가, 여자가 한 인간으로서 받아야 할 최소한의 대우도 결혼 이후에는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나라라는 건 알고 있었거든요. 지금도 당근(마켓)에서 뭘 살지 하나까지도 다 이야기 해요.
또 결혼 초에 장난 반 식으로 남편이 저한테 ‘서방님’이라고 한 번만 불러달라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부인을 지칭하는 존칭을 찾으면 서방님이라고 불러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며칠 후에 신랑이 그런 말이 정말로 없다고 하더라고요. “공평하게 서로 존중하자는 게 유리의 유일한 원칙인데, 잘 생각해 봐라, 결혼을 하고 당신이 우리 집안에서 나와 같은 항렬 누구에게도 존대해서 부르는 사람은 없어. 내 동생이 당신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데도 ‘처남님’이 아니고 ‘처남’이잖아, 위도 아래도 없이 그냥 처가의 남자. 내가 언니가 있다면 그의 남편, 다른 집에서 들어온 손윗남자에게만 ‘형님’이라고 하잖아, 그런데 난 당신의 가족에게 도련님, 아가씨라고 불러야하고”. 이런 식의 충돌들을 자잘하게 남편과 계속 겪어왔어요. 다행인건 남편이 귀가 열려 있는 사람이고 나와의 대화를 새겨 듣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거에요.
@ 흔히 보기 힘든 남자라니까요. (웃음)
그렇지. (웃음) 남편은 굉장히 섬세하고 감정 폭이 넓어서, 흔히 말하는 남자의 대화가 제 입에서 나오고, 여자의 대화가 남편 입에서 나와요. 그래서 살면서 하나하나, 남편이 하는 행동을 내가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입 밖으로 내서 이야기를 해줘요. 설거지 해줘서 고마워, 다음엔 내가 할게, 라든지.
@ 언제 처음 결혼을 실감하셨어요?
딱히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살던 집을 빼서 결혼식 두 달 전에 살림을 합쳤고, 한달 전에 혼인 신고를 했거든요. ‘우리집’에서 결혼식을 준비한 거니 자연스럽게 결혼했구나 싶어요.
오히려 요즘 문득 ‘아, 내가 저 사람과 결혼했네’ 할 때가 있어요. 같은 대학원 사람이라 2012년 봄부터 알고 지냈고, 2015년에 연애를 시작했거든요. 학교 다니면서 남편 목 조르고, 때리고, 신랑이 나이가 많이 어리니까 자료 같은 것도 내가 고쳐서 주고 그랬는데 그런 사람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여기까지 왔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거죠. 남편도 갑자기 “아, 내가 그 때 그 누나와 결혼해서 아빠가 됐다니, 아직도 신기해” 그래요. 문득 그런 신기함? 새로움이 느껴지는 상황이 저도 참 좋아요.
@ 현실로 마주한 출산과 육아는 어떠세요? 오래 전부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겠다는 생각을 하셨잖아요.
결혼에 대해서는 남편과 큰 이견이 없었는데, 아이에 대해서는 제가 반신반의했어요. 남편과 연애를 시작했을 때 제 나이가 서른 여섯이었어요. 남편은 스물 아홉이었죠. 이 사람과 만나 결혼을 이야기 할 때 내 주변 사람들이 결혼 후 출산 육아로 하나씩 사라졌었어요, 선아씨를 포함해서. 업계에서 정말 뜨겁게 일했고 나와 계속 커뮤니케이션하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런 귀한 사람들이 갑자기. 물론 그 사람들 스스로의 선택이고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큰 상실감이었거든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다시 어떤 노멀한 상태가 되기까지 너무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걸 나는 지켜봤잖아요. 그걸 내가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무서운 거죠. 사회생활을 포함해서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큰 공포였어요.
그런데 신랑은, 원래 비행기 탔을 때 애가 있으면 “시끄럽겠는데” 했다면 결혼할 즈음에는 “아이고, 저 애기 힘들어서 어쩌나” 그러는 거에요. 그런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애를 안 낳을 수가 없는 거에요.
우리가 일곱 살 차이니까 시댁에서 반대가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쟤 나이 많은데 애 못 낳으면 어떻게 할거야” 하셨는데 신랑이 “입양하면 되지”라고 했대요. 그랬더니 어머님이 신랑 따귀를 때리신 거죠. 신랑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한테 맞아보고 어머님은 우시고. 고맙더라고요. 그런 일들을 감당하면서 나와 결혼을 하려고 끌고 가는 거잖아요. 그걸 준비할 때는 몰랐어요. 자기도 계속 고민하면서 나한테 말도 못하고. 나도 미안했어요.
우리는 약간 전우애? 그런 마음이 생기는 사이였거든요. 결혼이라는 미션을 이루기 위해서 둘 다 고군분투하는. 저는 미국에 있는 시누이와 영상통화로 면접도 봤어요. (웃음) 누군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건데 그걸 중간에 끝내기엔 두 사람 자존심이 너무 상하는 거야. (웃음) 그래서 나중엔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체념한 상태였고, 임신 기간엔 24시간 아이를 온 몸으로 받쳐 안고 있는 느낌이어서 굉장히 기분이 다운되었는데 그걸 신랑이 굉장히 잘 케어해줬어요. 또 아이 낳고 병원에서 새벽에 밤수하러 갈 때도 신랑은 날 부러워했거든요, 아이를 안아볼 수 있지 않냐며. 그만큼 아이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어쨌든 되게 힘든 상황 속에 결혼을 끌고 오면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심리적 연대감이 쌓인 거죠.
@ 자상하고 섬세하고 나에게 열정적인 남자, 형부는 정말 보기 힘든 남자상이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흔히 말하는 ‘결혼하기 좋은 조건’을 가졌다고 하긴 힘들잖아요.
지금 결혼 4년 차인데, 아직까지 제 신랑이랑 비슷한 신랑을 못 봤어요. 제가 그래요, 유니콘이라고. (웃음) 그런데 진짜 제가 생각하는 결혼의 조건, 혹은 이러지 않았으면 하는 조건을 신랑이 전부 다 갖고 있었어요. 저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은 아니었으면 했고, 제가 성당에 다녀서 결혼식에 대한 유일한 로망이 예쁜 성당에서 결혼하는 거였는데 무조건 어머님 다니는 교회에서 해야 하고, 어머님이 집사 되라고 하시고. (웃음)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우리집보다 더 여유 있거나가 아니라 딱 비슷했으면 좋겠고, 우리집 형편이 좋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교육자 집안은 아니었으면 좋겠고, 예술가 집안은 아니었으면 좋겠고, 술 담배는 안 했으면 좋겠고. 저희 아빠가 되게 애주가셨는데 그게 전 싫었거든요. 그리고 부자(父子)간에 사이는 좋지만 적당히 거리는 있었으면 좋겠고. 그리고 외적으로는 성시경 같은 스타일을 좋아했는데 저희 남편은 어딜 가도 범 아시아권 얼굴이야. 피부 까맣고 쌍커풀 막 엄청 두껍고. (웃음) 다 반대인 남자였어요.
이 사람은 체형이 이상한 건지, 조금만 무리하면 그게 다 허리로 가요. 남편이 출장 갔다 돌아와 목욕하고 나오면 엎드리게 해서 내가 마디마디 마사지를 다 해줘요. 또 시각장애가 있어서 한쪽 눈이 안 보여요. 나머지 한 쪽도 시력이 되게 안 좋고. 저희 집에서는 다른 건 상관 없고 신체만 건강하면 된다, 였는데. 최악의 상황은 양쪽 다 같은 정도로 시력이 안 좋아지면 결국 다 못 볼 수도 있다는 거죠. 학교 다니면서 이미 들었고, 결혼 전에 남편이 술 많이 먹고 “누나, 나 마흔 되면 앞을 못 볼지도 몰라, 그래서 하루하루 미친 듯이 열심히 살아야 해” 그런 이야기도 했고. 저는 그걸 인정하고 각오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그게 제게 큰 문제는 아니에요.
@ 그런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고, 이만한 남자가 없다고 장담!하는 이유는 뭘까요? 유니콘이라서? (웃음)
그 모든 걸 커버할 만큼 잘 맞았어요. 결혼 후 대화시간이나 접촉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지잖아요. 어떤 이슈, 상황에 대한 리액션을 지켜보면 방향, 색깔, 각도까지 저와 비슷할 때가 정말 많아요. 정말 결혼 잘했구나, 하는 걸 결혼 후에 더 크게 느꼈죠.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 그걸 위해 절대적으로 노력하고 믿어주는 사람. 다들 백지 같은 남자를 원한다고 하는데, 그것까진 바라지 말라고 해요. 원 그림이 있는데 네가 그림을 그리면 덧칠이 되는 남자를 만나라고 하죠. 보통의 한국 남자는 내가 덧칠하면 쫙 빨아들여서 내가 칠한 색이 안 보이는데, 덧칠한 그 모습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고 해요. 남편은 덧칠이 되는 사람이고, 밑그림도 괜찮았어요.
@ 그럼 지금까지 지내오며 결혼 생활의 어려움이라고 꼽을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요?
신랑이 되게 뜨거운 타입이라고 했잖아요. 그건 화를 낼 때도 뜨겁게 낸다는 거죠. 저도 기복이 심하지만 저는 그걸 드러내는 게 싫어서 누르고 글을 쓰거나 무언가 발산할 대체재를 찾으려고 애쓰는데, 신랑은 숨기지 않고 발산하는 스타일이에요. 신랑은 자기 자신 때문에 화가 날 수도 있는데, 저는 옆에서 그걸 보잖아요, 그럼 저도 힘들죠. 요즘처럼 돈 문제에 민감해질 때 화를 어떠한 자기화(自己化)로 끄집어내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는 않은가 봐요.
@ 결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아야 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결혼은 이런 것이다’라고 정하는 순간 거기에 집착하고 매달리게 되요.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걸 다 가진 사람과 결혼했는데도 이렇게 행복한데, 그건 내가 죽도록 뭘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거든요. 남편의 어떤 한 부분이 주는 만족감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것 같아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건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이렇게 조율하면서 사는 거죠. 우리 부부의 딱 하나의 원칙은 ‘공평하게’. 명절에 어느 집에서 자고 오면 다른 집에서도 자고 오고, 시어머니 생신에 제가 돈을 쓴다면 저희 아빠 생신엔 남편이 돈을 쓰고, 이 달 지출이 얼마인데 어느 정도 선에서 하자, 총 합을 맞추는 거죠. 시간이든 돈이든 노력이든 공평하게 하자는 게 저희들의 원칙이에요.
결혼은,
서로 노력하고 애쓰며 평생의 동지(친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말하는 ‘결혼’의 기준이 아닌, 서로의 상황과 입장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직선 평행선이 아닌, 울퉁불퉁해도 한 뼘 더 겹치는 지점을 늘려가기 위해 때로는 싸움을, 때로는 포기와 배려를 해야하는 것, 그게 결혼인 것 같다.
유니콘과의 결혼 4년 차, 김옥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