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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미션 Jan 28. 2019

4. 똥

엄마 29개월

아무리 우아한 엄마라 해도,
정말로 고지식한 아빠라 해도,
깔끔이 하늘을 찌르는 부모라 해도,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그 말-


똥.


사과 반쪽, 견과류, 요거트.
임신 기간 내내 아침에 꼭 먹었던 세 가지다.

원래도 좋아했던 것들이지만, 찾아만 오면 약을 먹기도 겁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임신 중 변비'를 예방하기 위한 소소한 습관이기도 했다. 평소 변비가 있지도 않았지만 임신 중에도 배변 활동은 원활해 다행이었지만, 이때부터 본격 육아 실전에 들어가면서부터 끝나지 않는 그분와의 사투가 시작된다.


바로


대변 - 응가 - 똥.


내 응가는 어른 응가이니 때때로 아랫배가 묵직할 때 양배추를 데쳐 먹거나, 유산균 음료를 서너개 쯤 한번에 들이키거나 아니면 약을 먹어도 된다. 방법들이 있다.

하지만 제 몸 하나 가눌 수 없는 신생아부터 적절한 상태 표현이 힘든 유아기때의 아이라면 아이가 속이 불편한 건 아닌지, 왜 두드러기가 나는지, 체한 건지, 감기약 같은 것이 잘 안 맞는지 등의 현 상태를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똥' 이다.


갓 태어난 아가는 찍- 물똥을 싼다. 독한 냄새도 없다. 초록색이기도 하고 누런색이기도 하고 색은 그때 그때 달라지는데, 모유를 먹이고 있던 터러 엄마인 내가 미역국이나 녹색 채소를 많이 먹은 날은 아이의 똥이 좀 더 푸르러지고 그렇지 않으면 색이 바뀌는 것이 신기했다. 녹변은 안 좋은 거란 이야기를 들어서 처음엔 긴장도 많이 했는데 아직 장과 그 기능이 온전히 자리잡지 않아 그렇다는 소아과 의사의 말을 듣고선 예민을 조금 거두기도 했다.


항문(똥꼬)이 여물면서 뿌웅 방귀 소리도 제법 커지는데 방귀 뀌기 전에 '오-' 하고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는 모습이 여간 귀여운게 아니었다. "어머어머, 이제 방귀 뀌려고 한다, 입술 봐.(눈에 하트하트)"

이제 방귀나 똥은 사랑스러움과 성장의 결정체가 된다, 부모에게.


태어나고 3주 쯤. '오-'는 신생아들이 잘 짓는 표정이기도 하지만, 방귀 발사 신호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배변이 원활하지 않은 아이들이 적잖은데 다행히 이유식 전까지 아이는 잘 먹고 잘 싸줬다. 도저히 아이의 응가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흥건히 기저귀를 적시는 때가 많았는데, 출근한 남편에게 기쁨에 겨워 매일 보냈던 문자 구성은 '질펀하게 싸재낀 아이 응가 기저귀 클로즈업 사진 + 멘트 '어메이징' '. 당시 남편의 휴대전화 사진함엔 아이의 똥기저귀 사진들이 빼곡했는데, 왜 그걸 저장까지 했을까, 싶기도 하고.


6개월 전후로 이유식을 시작하면, 이를테면 간 사과나 부드러운 바나나 등의 과일 퓨레를 시작으로 모유나 분유가 아닌 질감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가장 먼저 훅- 예고도 없이 들어오는 것은 냄새다.

이제 아기 응가에서 냄새가 난다. 어른의 똥 냄새, '똥'이라는 물질이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냄새.

똥기저귀를 버릴 땐 꼭 비닐 봉투에 한번 더 쌓아 꽁꽁 여미곤 했는데 그래도 냄새는 온전히 막지 못했다.


똥의 색과 질감도 수시로 바뀐다. 이유식 재료에 따라 정말 즉각적으로 응가의 색이 변하는데, 브로콜리나 시금치 등의 녹색 채소가 들어간 날은 녹색이, 과일을 많이 먹은 날은 노란 색의 응가가 배출된다. 이때 아이의 똥기저귀를 더욱 유심히 보는 습관이 시작되는데, 어느 날 목욕 중 욕실 바닥에 노란 응가를 쫙- 쌌는데, 그 안에 아주 작은 검은 털? 모양의 것들이 많아 놀란 마음에 응가 사진을 들고 소아과로 달려가기도 했다. 결론은 바나나 먹으면 똥이 이래요.


퓨레에서 죽-밥으로 이어지는 이유식기에 변비가 찾아왔다.

고형 음식을 받아들이는 위와 장의 적응기였던 듯하다. 먹기는 하나 배출이 안 되어 배가 딱딱하고 빵빵해진 아이는 울고 또 울었다. 먹는 양도 줄었다. 이유식에 찐 고구마도 갈아 넣고 잘 익은 바나나를 매일 주고 이때부터 사과도 매일매일 먹였다. 심한 날은 푸룬을 갈아 넣기도 했다.


변비에 대한 부모의 공포도 본격 시작되었다.

뻥튀기류의 과자를 주기도 조심스럽고, 안 먹겠다는 아이에게 수시로 물을 먹이려 안간힘도 쓴다. 아이가 아프면 안쓰럽다가도 화가 나기도 짜증이 나기도 한다. 엄마는 육체 노동자이자 더한 감정 노동자인데, 주는 데로 잘 받아 먹으면 좋으련만, 이 쪼그만 것이 뭐가 벌써 자아가 있다고 싫고 좋고를 표하나, 내 말 안 들으니 계속 아프니까 너도 괴롭고 나도 괴롭고, 등등의 복합 이모션이 엄마의 멘탈을 휘젓는다. 육아의 위기는 비정형, 비정기적이고 노답의 연속이다.


'밥 먹기'에 적응이 되었다 싶고, 어른 음식과 아이 음식의 분리가 조금씩 사라질 무렵, 똥과 함께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 등장하는데 바로 배변 훈련이다.


"쉬아가 마려우면 쉬쉬- 해보자", "여기가 변기야, 변기랑 놀아볼까? 변기 안녕?"


아이는 두 돌이 되기 전에 쉬아를 한 후 축축해진 기저귀를 손으로 만져 비교적 수월히 소변과 대변의 신호를 스스로 알아차리고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후 지금까지 (반년 이상) 단 한 번도 생활의 반을 차지하는 어린이집에서 대변을 보지 않고 있다.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참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체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신기하고 기묘한 경험과 감정의 활동, 응가가 아직 아이에겐 낯설고 불편한 느낌인게다. 그리하여 최근 2-3주간 사나흘 변의를 참고 참는 2차 변비와의 전쟁을 아이와 함께 치르고 있다.


두돌 전후인 지난해 1년 동안 아이는 참 쉼 없이 아팠다. 감기와 같은 잔병(?)이 끊이지 않는 도중에 구내염 2번, 수족구 1번,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성 발진, 고열, 알레르기 등등. 동네 소아과 쿠폰 도장이 있다면 벌써 서비스 아메리카노 몇 잔을 받아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단골이 된 것은 당연하고 새벽 대형병원 응급실 행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이제 1회 밖에 안 남은 애정 드라마 <SKY 캐슬> 지난 화에 예서 엄마의 안타까운 대사가 마음을 치고 들어왔다. 내 딸 잘 먹고 잘 자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아이가 말도 하고 놀이도 다양해지고 또래와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누구보다 말이 빠르네, 누구는 어떤 놀이를 잘 하네, 어떤 체험을 해줬네... 듣는 말도, 드는 생각도 많아지기 시작하는데, 뭐라해도 내 자식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 보다 제일인 건 없다. 수 많은 크고 작은 육아의 난관 속에서도 아이가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주면, 일단 된 거다. 부디 올해 우리 아이에게 똥이 친근한 친구, 자연스러운 일상, 쾌변 후 쾌감으로 자리잡았으면. 며칠 전 새벽에 배 아프다 울고 불고해서 응급실서 관장은 했지만, 일주일 째 변비약 먹고 있지만, 여러분! 어제 우리 아이가 집에서 응가 엄청 했어요!




by inter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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