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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미션 Sep 10. 2018

3. 친구

엄마 24개월

뭘 모르면 다 할 수 있다. 두려움도, 걱정도 없다. 모든 우려들에 "왜?"라고 되묻게 된다. 내가 그랬다.


결혼 전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했다고 하니 여자들에게 퇴짜를 많이 맞았다."는 예비 남편의 말에 "왜지?" 그랬고, 아이가 생기기 전 무조건 많이 여행다니라는, 출산 후 조리원에 있을 때 모유수유 한다 밤 새지 말고 밤엔 자고 마사지도 받으라며 그곳이 생애 '마지막 천국'임을 강조하던 지인들의 말에 "왜?"라고 정말 궁금해서 되물었다.


어찌 보면 경험도 들은 풍월도 없어 무지했던 것이기도 한데, 연고지를 벗어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삶을 나누었던 사람과 터전에서 멀어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여튼 똑똑했던 서울 미스들이 뻥뻥 차 준 덕에 남편을 만날 기회가 나에게까지 왔다. 나의 어리바리함을 간파했는지, 날 사로잡기 위한 남편의 다양한 감언이설 중 하나는 "조용한 지방에 와서 차 마시며 글을 쓰라"는 것이었는데 지금에 와 생각해보니 정말 감언이설이었네. 나 원 참.


그렇게 세상 물정은 몰랐지만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신념 하나는 분명했기에, 일말의 번민 없이 나고 자란 서울 37년 라이프를 접고 남편의 근무지인 지방으로 향했다. 이사하던 날은 아이를 낳던 그 날이었는데, 전날 자정부터 진통이 시작해 속골반이 작아 세상에 나오기 힘들어하던 아이를 위해 밤새 내 다리를 무지막지하게 찢고 누르던 남편은 아침에 탯줄을 자르고 서울과 경상도를 오가며 혼자 이사를 지휘했다.


이후로 내 삶은 아주 간결해졌다.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는 것.

울고, 눈을 꿈뻑이고, 싸고, 먹고, 자는 아이와 함께하는 것이 내 삶의 100%였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복잡해졌다.

그전에는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못한,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24시간이 자유시간이지만 자유를 누릴 시간은 1시간도 없는 물리적인 상황에 더욱 빈곤해지는 마음부터 시작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꿈이 있던 한 사람으로서 나의 미래 등.


외롭다, 우울하다, 너무 힘들다, 속으로만 되뇌이다 퇴근 후 내 속마음을 '절로' 알아주지 못한 남편의 말 한마디가 가슴에 콕 박힐 때면 아이를 들어 안고 돌아서 창 밖 먼 곳을 보며 소리 없이 울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불현듯 깨달았다.

꾹꾹 참고 우는 내 심장을 가만히 안고 있는

콩닥콩닥 뛰고 있는 작은 심장을 느꼈을 때.


내가 왜 외롭다 했을까.

내가 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친구도 없다 했을까.


내가 방귀를 뀌어도, 세수를 안 해 몰골이 부스스해도, 그리고 야박한 남편이 이렇게 '남의 편'일 때도 언제나 나를 바라봐주는, 함께 웃고 자고 먹고 날 안아주는 친구가 여기 이렇게 있는데.


우리는 혼자가 아니야. (돌 무렵)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그 무엇보다 사랑하고 있지만, 문득 문득 아이를 '날 힘들게 하는 존재'로 치부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며 새로움과 기쁨, 걱정과 인내를 주고 받는 아이의 성장은 시간이 지나며 절로 되는 것이라, 나의 삶과 별개의 것이라고 은연 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의 성장과 어미의 노화는 정확한 반비례라며 자조 섞인 한탄으로 쉽게 이야기했던 날들이 참으로 어리석다 싶다.


딸과 엄마가 평생 친구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젠 내 아들과 나도 평생 친구다.


만화 영화에 빠지면, 게임에 빠지면, 친구들과 축구에 빠지면, 여자친구에 빠지면, 사춘기에 빠지면 혼도 내고, 아이템도 사주고, 간식도 챙겨주고, 좀 더 과묵하게 있어주기도 하는 친구가 되어야겠지만, 그 전이나 그 때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아이를 어떤 방법으로든 좀 더 배려해줄 수 있는 친구로 옆에 있고 싶다. '너는 너의 자리에서 나는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출산 후 다짐에 또 하나의 다짐을 덧붙인다.


일단 한창 말이 늘어가고 있는 지금은 하루에도 수 십 번 반복되는 "까까 가게 문 닫았어? 문 열었어?"에 대한 물음과 답을 매번 새롭게 주고 받을 수 있는 친구가 되는 걸로.

“햇님 나오면 까까 가게 문 열고,

 달님 나오면 까까 가게 문 닫아.”





by inter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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