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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미션 Aug 21. 2018

2. 냄새

엄마 23개월

기상관측 이래 111년만에 폭염이라는 올 여름,

아이들은 원래 땀이 많다고들 하지만, 유난히 땀이 더 많은 우리 아이는

굵은 반곱슬 머리카락 사이로 쉼 없이 땀을 흘리고 흘렸다. 잘 때도, 놀 때도, 먹을 때도.


그래서 어린이집 교실에서 반나절 뒹굴다 엄마를 보고 뛰어오는 아이를 안으면 제일 먼저 그의 시큼한 정수리 냄새에 놀란다.


    흡, 오늘 땀 많이 흘렸구나, 집에 가서 씻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요리저리 뛰어다니며 목욕을 거부하는 아이를 붙잡아 들처매고 머릴 감길 때도


    머릴 감아야 땀띠도 안 나고 좋은 냄새 나서 어린이집 선생님이 많이 안아주시지.


사람 마음이야 다 똑같지 않겠나 싶어서. 하하하.  


이리 열정적으로 놀아야 내 아들이지.



아이를 먼저 키워 본 부모 선배들이 갓난쟁이를 새삼스레 보게 될 때 제일 먼저 감격하는 것은 '젖냄새'인듯 했다.



신생아는 초반에 1시간에 한 번씩 젖을 먹는다. 그리 자주 먹는 건 위가 작기도 하고 급성장기이기도 해서일듯 한데, 15분 정도 젖을 먹이고 트림을 시켜 뉘이고 나도 허리 좀 펼까 하면 다시 1시간의 사이클이 도래해서 하루가 젖 먹이다 간다는 말을 실감했다. 15분도 젖을 잘 빠는 아이일때 이야기지, 입이 짧거나 젖이 아이 뱃고래만큼 많이 안 나오면 20분은 훌쩍이다. 그래서 갓 엄마가 된 다른 이들 중에는 "내가 젖소가 된 것 같다"고도 했는데, 그런 생각에까지 미치지 않았다 해도 더 젖이 잘 돌라며 가재수건으로 각각의 젖가슴을 감싸 두 손으로 마사지하는 스스로를 보면, 내 가슴의, 예상치 못했던 엄청난 쓰임에 대해 놀라 감탄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여하튼, 그리하여 아이 입과 주변에는 항시 젖이 마르지 않는다. 어른 손가락 한 마디 만한 아이 입이 커다란 젖을 가득 물고 쫙쫙 젖을 빨다 보면 젖이 입 밖으로 새기도 하고, 젖 나오는 속도와 양이 많을 때 아이가 제대로 삼기지 못해 켁켁거리며 젖을 쏟아낼 때도 있다(모유 사출). 젖을 다 먹인 후 트림시킬 때 목 뒤로 넘어갔던 젖이 다시 밖으로 나와 토하는 일도 다반사다. 젖냄새가 곧 아이의 냄새가 될 수밖에.



어느 정도 아이가 커서, 그래봤자 5, 6개월이지만 먹는 텀도 늘고 싸는 양도 늘어 기저귀를 하루에 열 장 넘게 쓰는 때가 오면 아이의 쉬아 냄새에 기민해진다. 요즘 기저귀는 쉬아하면 색이 변해 아이의 용변 여부를 겉에서도 쉽게 알 수 있는데, 아이 옆에 자주 누워 있고 안고 업고 하다 보면 뜨끈해지는 팔 다리 등짝의 감각 말고도 냄새로 아이의 쉬아 여부를 기가막히게 알아 맞췄다. 그런데, 이미 이 때는 아이의 무한 사랑 늪에 빠진 터라 그 냄새마저도 너무 좋아서, 버리려 둥글게 만 쉬아 기저귀를 코에 갖다 대곤 했다.



그러다 아이의 냄새에 진심으로 놀라게 되는 최초의 때가 오는데, 바로 이유식을 시작한 후의 응가 냄새다.



젖이나 분유가 아니라 곡식을 먹고 채소를 먹고 과일을 먹기 시작하는 이유식기의 응가는 예전의 묽은 물의 형태에서 점차 고형의 형태로 나아가는데, 냄새 또한 우리네 것과 비슷해져 마음 한 켠에는 아가를 향한 배신감이 들 정도였다. 아가인데, 응가에서 똥 냄새가 나다니!



기저귀를 모아 버리는 쓰레기 봉투에서는 그야말로 똥냄새가 진동하고, 육아 동지가 건내 준 파우더향 쓰레기봉투를 보았을 땐 '와, 이런 신박한 아이템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를 외치며 땅을 치기도 했다.



이제는 응가한 아가 엉덩이를 씻기며 만져지는 말캉한 응가 파편들에 덜 놀라게 되었고, 구스름하다가도 종종 날카롭게 파고드는 응가 냄새에도 놀라지 않는다. 냄새가 사랑스럽진 않지만 그져 막힘 없이, 고통 없이 숨풍-하고 응가를 배출해냈다는 사실에 기쁘다, 정말.(아가 변비의 무서움을 많은 부모들은 알고 있으리라.)



올 여름 시큼한 아이의 땀 냄새는, 아이가 이제 '아가'가 아니라 쉼 없이 뛰고 구르고 오르고 넘어지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건강한 사내 '아이'로 크고 있다는 증거일테다. 무엇 때문에 장난감을 저리 옮기고 이리 옮기며,  쇼파 위를 뛰고 거꾸로 내려오고 옷장 속을 다 뒤집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아이는 웃고 울고 땀 흘리며 오늘 하루도 열심히 크는 것이겠지. 요즘 종종 미리 머릿속으로 그려 보는 건 2, 3년 후 운동화를 벗을 때 마주할 아이의 발냄새와 10대 소년이 된 아이의 방 냄새다. 아. 그 냄새. 나도 아는 그 냄새. 어, 음.




by inter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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