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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미션 Aug 18. 2018

1. 손톱

엄마 23개월

아이가 쉼 없이 뛰기 시작하면서 발톱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거칠게 오가는 탓도 있고, 발가락을 안으로 접어 서는 희한한 까치발로 걸어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종종 엄지발톱 한 쪽이 세로로 갈라져 발가락 옆 살을 찌른다.



가만 있어봐, 여기 아야아야하지? 엄마가 안 아프게 톡 잘라줄게.



제법 말을 알아듣는 아이도 발을 내어 놓고 골똘히 쳐다본다. 손으로 그러쥔 아이 엄지 발가락에 두 눈을 붙이고 손톱깎이로 살짝. 똑- 소리가나며 발톱 조각이 튕겨져 나온다. 아, 이제 아이 발톱도 ‘똑’ 소리를 내며 잘라지는 구나.


아이를 낳고 자주 되뇌이는 말. '우리 서로 제 몫을 잘 해 보자.'


세상에 나오자마자 내 손가락을 꼭 잡는 아이의 작은 손가락 끝에 길고 투명한 우유빛 손톱을 봤을 때 뱃속의 세계가 더욱 궁금하고 신기해졌다. 어찌 저런 딱딱하고 작은 것까지 만들어지고 자라고 있었을까. 그런 세계가 내 안에 있었다니.



헌데 아이의 손톱은 딱딱하지 않다. 얇고, 그래서 잘 휘어지고 날카롭다. 종이에 손을 베는 것처럼 자신의 손과 발을 아직 인지하지 못하는 신생아들은 존재가 낯선(?) 두 팔과 다리를 버둥거리다 기름종이 같이 얇은 제 손톱에 얼굴을 자주 긁힌다. 항시 주먹을 꽉 쥐고 있는 탓에 손톱에 손바닥 살이 패이기도 한다. 손과 발에 작은 싸개를 씌어주는 이유다.



그래서 젖을 먹일 때나 누워있는 아이와 눈을 맞추고 놀고 또 아이가 잘 때에도 자주 아이의 손가락을 하나씩 펴서 시원한 입김을 불어 통풍도 되게 하고 자주 손톱도 잘라 주었다. 자라기는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작고 은밀하게 한 호흡에 하나씩. 유아용 가위 끝에 아기 반달처럼 작게 오려나오는 손톱들도 그리 예쁠 수가 없었다.



육아의 상당 영역에서 발굴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남편도 아직 한 번도 시도하지 않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 아이의 손발톱 깎기다. 몸조리 차 친정에 있을 때 육아 베테랑 엄마도 눈이 어릿해지고 손도 둔해졌다며 내게 미루던 것이다. 직장 복귀 후 잠시 아이를 맡겼던 시댁에서 엄마의 부재가 가장 드러났던 것 역신 긴 손발톱이었다. 주말마다 아이를 보러 가서 자는 아이 옆에 핸드폰 플래쉬를 비춰가며 은밀히 진행했던, 엄마만이 해 줄 수 있는 일. 한 주간의 그리움과 미안함을 나 혼자 풀어내던 일.



이젠 아이가 자라는 걸 단단해진 손발톱을 보면서도 깨닫는다. 돌이 지나 걷기가 능숙해지고 뛰어다니는 게 신나지게 되고부터 엄지 손톱, 엄지 발톱을 자를 때 유아용 작은 가위를 쥔 내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두 돌이 얼마 남지 않은 지난 주, 어린이집 방학에 맞춰 일주일간 친정에 아이와 머물며 미쳐 챙기지 못한 유아 가위 대신 어른용 손톱깎이를 썼을 때 똑, 똑 소리를 내며 야무지게 바닥에 떨어지던 아이의 손발톱 조각에 다시 한번 감회가 새로워졌다. 아, 우리 아이 많이 컸구나.



by inter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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