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 Elvis> (2022) 리뷰
※영화 <엘비스>의 내용을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점심으로 내가 참 좋아하는 자장면을 먹었기에 영화가 재밌어야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니 영화도 재밌어야 한다기보다, 졸지 않기 위해서 재밌어야 했다. 중국요리 특성상 간이 세서 그런지 나는 신기하게도 중식만 먹으면 식곤증이 미친 듯이 몰려온다. 러닝타임 또한 거의 3시간으로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점심 식사 직후 영화를 보는 것이 많이 걱정이었지만 엘비스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군인은 여러모로 참 슬프다.
2시간 50분 동안 하품 한 번 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이 막 샘솟아 춤을 추고 싶었다. 엘비스처럼 위글위글 몸 털기 춤을 추면서 관람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팔짱 끼고 관람하시던 옆자리 아주머니가 엘보우로 내 정강이를 가격할 것 같았기에 꾹 참았다. 도곡 롯데시네마 5관에 사람이 많아 참 아쉬웠다.
영화를 보며 바즈 루어만 감독의 전작 '위대한 개츠비' 생각이 많이 났다. 위대한 개츠비의 화려한 영상미가 참 마음에 들었었는데, 엘비스는 거기에 신나는 로큰롤 음악까지 더해져 화려함의 끝을 달린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엘비스라는 인물에 대해 과거 로큰롤의 황제였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자세히는 몰랐다. 영화를 보고 나니, 로큰롤의 황제라는 타이틀 뒤에 숨겨진 그의 기구한 인생사가 가슴 한 켠을 씁쓸하게 만든다.
어린 시절 엘비스의 가정 형편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의 아버지가 범죄까지 저질렀으니 말이다. 프레슬리 가족이 가진 거라곤 엘비스의 목소리와 노래, 그리고 신이 내린 춤 실력뿐이었다. 자신을 믿고 따라오면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주겠다는 톰 파커 대령을 만난 엘비스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절대 변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가족을 위해 더 큰 무대로 나아간다. 그는 '백인의 춤이 어쩜 저리 상스럽나'와 같은 소리까지 듣지만 그의 재능을 끝까지 밀고 나갔고, 과열된 인기와 사기꾼 매니저 톰 파커로 인해 변하지 않겠다던 그의 약속은 조금씩 깨졌으며, 그는 서서히 망가져 갔다. 갑자기 배우가 되어 되지도 않는 연기를 한다던가, 엘비스는 본인의 스타일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그런 그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연기를 하는 것도,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는 것도 아닌 자신만의 춤을 추며 노래는 하는 것이었다. 그는 본인의 스타일을 되찾으며 어느 정도 재기하는 데 성공했지만,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톰 파커에게 발목이 잡혀 있었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빨간 구두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빨간 구두를 신고 멈추지 않는 춤을 추게 되자 자신의 발목을 잘라버림으로써 춤을 멈추게 된 소녀에 대한 이야기인데, 엘비스가 빨간 구두의 주인공과 꽤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뱀 같은 톰 파커를 증오하면서도 결코 멀어질 수 없었고, 팬들의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했기에 노래를 멈출 수 없었고, 공허함이 계속됐기에 마약을 멈출 수 없었다. 겉보기에 무척이나 화려해 보이던 인터내셔널 호텔은 그에게 마치 감옥과도 같았다. 영화 종반부에서 엘비스가 노래하며 흘린 땀이 마치 그의 눈물처럼 느껴졌다. 결국 그가 죽고 나서야 이 모든 것이 끝이 났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하던 한 마리의 발 없는 새는 짧고 화려했던 비행을 마치고 땅에 추락했다.
영화 자체가 엘비스의 생애 같다. 초반부엔 화려한 스타의 탄생을 알리며 아드레날린이 폭발하고, 중반부는 다소 느린 호흡으로 엘비스의 침체기를 표현한다. 종반부는 스타가 복귀하여 여전한 멋을 풍기지만, 과거만큼의 아드레날린은 없다. 마지막에 엘비스가 부르는 '언체인드 멜로디'의 가사는 팬들에 대한 그의 사랑과, 외로움, 애처로움을 동시에 잘 드러낸다. 엘비스는 과연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영원의 바위에 도달했을까?
비록 사기꾼 톰 파커의 금단의 열매와 같은 감언이설에 휘둘렸지만, 노래와 춤에 대한 엘비스의 재능과 열정은 '진짜'였다. 그리고 죽음도 그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참으로 짧고 화려하게 살다 가셨다. 그 시대의 영웅이여, 아마 도착했을 영원의 바위에서는 주변 신경 쓰지말고 힘껏 부르고, 마음껏 추시길.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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