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 / HUNT> (2022) 리뷰
※영화 <헌트>의 내용을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헌트>의 포스터를 보면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HUNT'의 N이 위아래가 거꾸로 뒤집혀 있다는 점이다. 많은 분들이 느끼시겠지만 이는 당연히 의도한 것이고, 이정재 감독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N에서 양 옆의 선이 각각 영화 속 두 주인공을 의미한다. 그리고 영화가 상승하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N의 대각선이 좌에서 우로 상승선을 그리도록 설정했다."
이정재 감독의 말처럼, <헌트>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워싱턴에서의 대통령 암살 시도 사건 이후, 안기부 해외팀 차장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차장 김정도(정우성)는 조직 내부에 숨어든 첩자 '동림'을 색출해내기 위해 서로를 의심한다. 위에서도 동림을 찾아내기 위해 그들 모르게 그들을 부추기고, 은밀한 경쟁 구도를 구축한다.
여기서 알파벳 N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해보자면, N과 N을 거꾸로 뒤집은 글자를 겹치게 대 보았을 때 두 대각선이 만나는 교차점이 중간에 하나 생긴다. 이 두 개의 N이 중간에 하나의 교차점을 만들듯이, <헌트>에서도 동림의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 평호와 정도는 둘만의 교차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서로를 사냥하기 바빴던 둘은 교차점에 도달하고 나서야 사실 각자의 사냥 타겟이 같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의 제목이 '헌트'인 이유도 이와 같다. 사실 헌트가 의미하는 '사냥'의 본질은 동림 사냥이 아니라, 베드로 사냥이었던 것이다.
<헌트>에서 베드로 사냥 작전은 총 두 번 나온다. 하지만 이는 역사로도 알 수 있듯이 실패에 그친다. 이 두 번의 실패가 우리에게 남긴 것과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우선 위선적인 독재자의 썩어빠진 권력 놀음으로 희생된 개인들의 상처가 남았다. 실제로 과거가 그랬던 것처럼, <헌트>에서도 정말 많은 이들이 권력에 희생됐다. 한 때 어쩔 수 없이 권력에 충성했던 정도는 비뚤어진 권력을 바로잡고자 했지만 실패했고, 그의 아내와 아들은 그의 군번줄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부짖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상처만이 남은 것은 아니다. 우린 상처와 함께 '가능성'을 얻었다. 불가항력의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 조금이라도 변화한 세상 속을 살아갈 수 있을 가능성. 유정(고윤정)이 바로 <헌트>에서 이 가능성을 대표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현재 우리가 과거보다 더 나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것은 과거 많은 개인들의 희생으로 가능성을 얻었고, 그 가능성을 어느 정도 실현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실패로 얻은 성공인 셈이다. 이에 우리는 타성에 젖지 않고, 후대에게 똑같이 가능성을 열어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 과거의 그들에게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솔직히 이정재 감독이 <헌트>의 감독을 맡고, 주연 배우로 출연까지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도 됐지만, 걱정도 됐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배우로서는 훌륭한 내공을 갖고 있는 배우지만, 연출가로서는 검증된 바가 일절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트>는 그러한 나의 걱정을 깔끔하게 날려주는 작품이었다. 초반부터 긴장감 넘치는 액션으로 후반부까지 텐션을 끌고 가는 데 성공한다. 마치 이정재 감독이 설명한 N의 대각선처럼 시작부터 끝을 향해 멈추지 않고 질주하는 느낌이다. 액션에 상당히 공을 들인 티가 난다. 본인은 한국 영화의 총기 액션 장면들은 사운드가 약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헌트>의 총기 액션 사운드는 필자의 고막을 빵빵하게 채워줘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 외에도 뻔하지 않은 스토리와 <올드보이>, <아가씨> 등으로 유명한 조영욱 음악 감독의 긴장감 넘치는 ost는 어쩌면 진부할 수도 있는 소재인 첩보 스릴러 장르에 한 줄기 빛을 더한다. 여기에 카메오로 출연한 수많은 유명 배우들의 얼굴을 찾아보는 재미는 덤이다. <헌트>는 신인 감독치고 잘 만든 작품이 아니라, 원래 연출에 몸담고 있던 베테랑이었던 것처럼 잘 만든 수작이다. 이정재 감독은 과연 한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될 수 있을지 벌써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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