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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턴작가 Jun 09. 2022

<나의 해방일지> 나는 구씨보다 창희였다.

<나의 해방일지 / My Liberation Notes>(2022) 리뷰

요즘 '구씨'가 대세다. '구찌보다 구씨'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인정한다. 구씨 멋있다. 인간에게 질릴 대로 질렸지만 투명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는 거친 들개 같은 남자. 

물론 이런 구씨도 매력적이고 좋지만, 왠지 나는 구씨보단 창희에게 더 마음이 갔다. 한없이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져서 일까. 나의 해방일지를 보며 울컥했던 순간들은 모두 창희가 말하고 있을 때였다. 

숨겨진 주인공 두 명

생각해보면 박해영 작가의 전작 '나의 아저씨' 때도 그랬던 것 같다. 동훈과 지안의 이야기도 감동이었지만, 끝에 가서 제일 마음이 쓰였던 건 셋째 기훈이었다. '나의 아저씨'에서 나를 울릴뻔한 건 동훈의 눈물도, 상훈의 눈물도 아닌, 마지막화에서의 기훈의 눈물이었다. 개인적으로 창희와 기훈이 각 작품에서 숨겨진 주인공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몇 화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창희가 '갈망'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잘생긴 우리 창희 형

 '너 부자들이 명품 갈망하는 거 봤어?


 그냥 사지!


 내가 뭔가 죽어라 갈망할 땐


 저 깊은 곳에서 이미 영혼이 알고 있는 거야. 


  내 것이 아니란 걸.


 갖고 싶은데 아닌 걸 아니까 미치는 거야!'




창희는 갈망했다. 서울의 삶을. 남들처럼 서울에서 출퇴근하고, 비싼 차 타고 다니고, 그 안에서 키스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토록 갈망하던 편의점도 얻었고, 대출도 다 갚았다. 하지만 그의 눈은 어딘가 멍해 보이고, 지쳐 보인다. 


애초에 창희는 품성 자체가 갈망, 욕망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창희는 서울로 올라왔지만 보통의 서울 사람과 달리 차를 갖고 다니지 않는다. 과거엔 차를 갖고 싶어 노래를 불렀지만 서울에 안착하고 난 후 오히려 그는 자전거로 산 주변 길을 누비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지난날들이 생각난 그는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울분과 후회를 토해내며 자신에 대해 새삼 깨닫는다. 그는 꼭대기로 올라가려 아등바등 살아가며 산을 이루는 1원짜리가 아니라, 그 1원짜리들을 모두 품을 수 있는, 산 그 자체였다. 


누나 기정에게 겉으로는 틱틱대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의 욕을 밥 먹듯이 하는 창희지만, 우리는 안다. 그가 누구보다 정 많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욕할 거 다 하면서도 누나의 부탁을 들어줬고, 밥 먹듯이 전화해서 한 시간 넘게 붙잡아 두는 편의점 점주의 하소연을 다 들어줬고, 버스가 곧 온다는 아저씨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줬다. 아마도 창희가 그들에게 느꼈을 감정은 '연민'이다. 연민이 창희의 품성이고, 추앙이었을 것이다. 추앙했기에, 창희는 병문안만 몇 번 갔을 뿐이던 현아의 전 남자 친구의 임종을 지켰고, 추앙하기 위해, 그 길로 장례지도사가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창희와 구씨가 재회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만나지 못했기에 창희가 홀로 사색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심보가 팔자다. 15화 마지막 부분을 보고 창희가 나의 아저씨 '겸덕'처럼 산으로 들어가 스님이 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자신의 품성을 팔자로 받아들이고 장례지도사가 되는 결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서 그들을 추앙하기 위한 창희의 선택은 그의 서사 속에서 그야말로 완벽하다. 장례지도사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에, 창희는 구씨와 만나 웃으며 회포를 풀지 않았을까?

네 명 모두 행복했으면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는 재미와 울림이 공존한다. 여기서 울림은, 극의 재미에서 오는 울림은 물론이거니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서 오는 울림도 포함된다. 개인적으로 후자의 울림 때문에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를 좋아한다. 이번 '나의 해방일지' 또한 내게 많은 울림을 남겼고, 많이 느끼고, 배웠다. 내게 감동과 가르침을 안겨준 이민기 배우, 박해영 작가를 비롯해 관련된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추앙합니다. 


-나의 아저씨에서 유라(권나라)가 이런 말을 한다. '싫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파. 그래서 생각을 해봤어. 내가 안 아플 때가 언제인지. 사랑할 때. 그래서 오늘부로 널! 사랑하기로 했다. 이 씨xx아.' 나의 아저씨를 볼 땐 그저 웃어넘겼던 이 대사가 지금은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추앙합시다 여러분. 추앙해요. 나를. 너를. 모두들 한 걸음, 한 걸음 해방되시기를.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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