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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턴작가 Jun 13. 2022

<브로커> 피는 정말 물보다 진할까

<브로커 / Broker> (2022) 리뷰

※영화 '브로커'의 내용을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피는 정말 물보다 진할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피를 나눈 가족, 즉 혈육과의 관계는 피가 섞이지 않은 비혈육들과의 관계보다 소중하다는 뜻의 격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의 신작 '브로커'를 통해 이에 의문점을 제기한다. 피는 정말 물보다 진할까.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보다 더 가족 같아 보이는데 그냥 가족 합시다!

브로커는 소영이 베이비박스 앞에 우성을 버리러 가는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친자식을 버리러 가는 엄마의 마음을 하늘도 알듯 소영의 위로 비가 마구 쏟아진다. 나는 '브로커'를 제외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단 한 편도 보지 못했지만, 그가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활용하여 관객에게 위로와 감동을 던져주는 특기가 있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이러한 그의 특성을 고려해본다면, 브로커는 밝은 하늘이나 햇살을 비추며 끝날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첫 시퀀스를 보자마자 소영을 비롯한 브로커의 다른 등장인물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빗 속을 뚫고 맑은 하늘로 나아가는지에 대한 과정에 집중하기로 했다.


비, 비눗물, 피, 세탁, 우산

첫 시퀀스가 '비'로 시작하는 만큼, 브로커에서 액체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극 중 소영이 말한다. 내리는 비를 맞으면 몸에서 더러운 게 씻겨져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것 같지만, 막상 비가 그치고 나면 그대로라고. 소영은 이 쏟아지는 비 속에서 우성을 버렸다. 아무리 원치 않았던 생명이라 해도, 친자식을 버린다는 행위의 무게는 굉장히 무겁다. 소영이 말한 더러움이란 자신을 힘들게 했던 본인 인생의 장애물이자, 죄책감일 것이다.

황금종려상이요? <어느 가족>도 조만간 볼게요 감독님

이후 등장하는 캐릭터 '해진'은 특유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이 무게를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 시작은 세차장에서 해진이 창문을 내릴 때부터일 것이다. 창문이 내려가 벌어진 틈 사이로 비눗물이 마구 들어오게 되고, 상현, 동수, 소영, 해진은 비눗물을 뒤집어쓴다. 짜증을 내는 것도 잠시, 상현 일행은 상황을 즐기게 되고, 단순히 우성을 팔아넘기려는 목적으로 결성된 구성체일뿐이었던 이들이 서로를 향해 웃기 시작한다. 가족을 갖고 싶어 차에 올라탔던 해진이 의도치 않게 일종의 '아이스브레이킹'을 시도했고, 그것이 성공한 셈이다. 이는 상현 일행이 해진에 의해 비눗물로 씻겨지고, 서로에게 새로운 가족이 되어주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동수와 상현은 비로부터 소영을 막아주는 우산이 된다. 월미도로 마지막 추억을 쌓으러 간 상현 일행은 대관람차를 탄다. 이때 소영은 동수에게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며 눈물을 흘리고, 동수는 눈물을 흘리는 소영의 눈을 우산을 씌우듯 손으로 가려주며 말한다. '우리가 너의 우산이 되어줄게.'.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동수가 우성을 버린 소영을 용서하는 장면은 참 묘하다. 숙소에 돌아온 이들은 우성을 필두로 서로에게 작별인사를 건넨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옷에 묻은 얼룩도 지워지고, 얼룩 안 묻게 사람도 지켜주고..여기 맛집이네!

"너는 애가 없어서 저 마음 몰라. 소영인 우성이를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할 애야."

상현은 소영이 우성이를 지키기 위해 자수를 할 거라고 짐작했다. 친가족에게 버림받은 상현은 딸보다 더 딸 같은 소영의 우산이 되어주기로 결심한다. 상현은 우성을 지키기 위해, 또 소영을 지키기 위해 조직 폭력배 태호를 살해한다. 피보다 더 가족 같은 물을 위해 자기 손에 스스로 피를 묻힌 것이다. 이 대목은 상현의 직업이 남의 옷에 묻은 얼룩을 깨끗하게 지워주는 세탁소 사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 와닿는다. 이후 해진은 보육원으로 돌아가고, 동수와 소영은 죗값을 치른다. 상현의 모습은 비춰지지 않지만 소영을 따라가는 그의 봉고차 백미러에 걸려있는 상현, 동수, 소영, 해진, 우성의 사진에 햇살이 밝게 비칠 뿐이다. 상현은 그렇게 법을 피해 소영이 비를 맞지 않게, 얼룩이 묻지 않게 지켜주는 우산이 되었을 것이다. 비가 지나가고 오는 것은 결국 따스한 햇살이다.

항상 멋진 배두나 배우

이렇게 상현 일행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었고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위로를 받은 건 비단 상현 일행뿐만이 아니다. 형사 '수진' 또한 상현 일행을 도청하며 그들의 진심을 알게 되고,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새삼 깨닫는다. 영화는 수진과 남편의 관계가 어떠한 계기로 인해 다소 소원해졌음을 암시하는데, 수진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후 남편과 전화하며 우는 장면 역시 비가 내린다. "애를 제일 팔고 싶었던 사람은 나였나 봐." 도청 장치에서 흘러나오는 상현 일행의 목소리 뒤로 그녀가 뱉은 이 대사가 참 기억에 남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소소하지만 따스한 위로

브로커는 세상의 모든 '지켜진 아이들'에게 선사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소소한 위로다. 일종의 로드무비 형식으로, '낳고 나서 버리는 것보다 낳기 전에 죽이는 게 죄가 더 가벼운가'와 같이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볼 만한 주제들이 주로 담겨있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도 안되고, 그 어느 누구도 쉽게 그러지 못 할 것이다. 그는 관객들이 그저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에 눈 맞춰 흘러가는 대로 따라 흘러가 주길 원했던 것 같다. 그래서 흘러가줬더니, 지루하지 않았고 영화가 끝났을 땐 가슴 한켠이 조금이지만 따뜻했다.


예전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 영화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각오로 만들어야 한다고. 설령 세상을 바꾸지 못할지라도, 각오만큼은 그래야 한다고. '브로커'로 세상이 바뀔 것 같진 않다.  그러나 조금은 따뜻해지길 바란다.  모두들 가족과, 가족과 같은 이들에게 조금 더 따뜻해져보시길.


★:3.5/5

Copyright 2022. 인턴작가 All rights reserved.

P.S-대사가 안 들려도 너무 안 들린다.. 이건 돌비관에서 상영했어야 한다.

     '굳이 배경이 한국이었어야 했나'라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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