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8할은 이미지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은 아마도 수학능력시험일 것이다.
수능일에는 비행기가 멈추고 회사 출근 시간이 늦춰지는 등 사회 전체가 야단법석이다.
우리 사회에서 수험생들이나 학부모들뿐 아니라 수능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많지 않을 듯하다.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시대와 산업, 기술 문명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인간의 생존 체계나 사고방식도 이에 맞추어 바뀌어야 할 때다.”라고 많은 학자들이 주장해도 수능 앞에서는 작은 메아리에 불과하다.
“교육은 어떤 영역보다 혁신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비스마르크 시대의 교육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변화는 선택의 문제가 당위의 문제다.”라는 교육 전문가들의 조언도 수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대학 진학이나 진로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다. 학벌이나 학위를 따지는 시대도 지난 지 오래다.”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면서도 역시 수능이 최우선이다.
수능일. 참 다양한 그룹들이 시험장으로 향한다.
일반고나 예체능 전공 학생들, 재수생과 N수생들뿐 아니라 학교를 중퇴했거나 유학을 준비했던 학생들은 물론 제도권 교육에서 탈출했던 대안학교 학생들도 예외 없이 수능을 보기 위해 모여든다.
현재까지 수능의 위력을 대체할 그 무엇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많은 학생들이 수능이라는 신에게 경배하기 위해 오늘도 학교와 학원, 독서실에서 수행 중이다.
눈앞의 현실, 당분간 수능이 절대갑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대한민국을 떠날 것이 아닌 이상 앞으로 할 일이 분명해졌다.
수능이라는 거대한 산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에 대해 초점을 맞춰 해결책을 찾는 일이 우선인 것 같다.
차라리 해결책을 빨리 찾아내 보란 듯이 승리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수능이란 어떤 시험인가? 수능의 특성이 무엇인가? 에 대해 아는 것부터 첫 순서다. 다음으로 수능을 준비하는 나는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인가? 를 파악해야 한다.
수능의 특성에 대해서는 여러 번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나의 특성부터 알아보자.
고대 그리스의 델포이 신전에는 ‘너 자신을 알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나 자신을 아는 것의 의미는 나의 무지를 안다는 것, 즉 나의 능력과 한계를 안다는 뜻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명히 알 때, 우리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 능력을 갖출 수 있다.
동양에도 비슷한 경구가 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자신과 상대방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다는 의미다.
그러면 과연 ‘나’라는 사람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시인 서정주는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나를 키운 건 팔할은 바람이다’라고 했다. 이 시구를 변주해 보자.
‘나를 키운 8할은 이미지다’라는 표현이 요즘 세대의 특성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세대들은 어릴 때부터 수많은 미디어에 노출되었고 끊임없이 이미지 세례를 받으며 자랐다.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언제인가부터 우리는 ‘책을 읽는다’라고 하지 않고 ‘책을 본다’라는 말에 익숙하다.
이 사소한 차이가 수능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변수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뇌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요즘,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보는 사람의 뇌를 스캔해 보면 뇌의 활성화 영역이나 정도가 다를 것이다. 독해지능의 차이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물이다.
그러면 이미지에 익숙한 뇌, 즉 텍스트를 ‘보는 뇌’에서 텍스트를 ‘읽는 뇌’로 뇌의 회로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뇌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그렇다면 이미지 세대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어떨까? 여기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