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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콕 중 통역사 Oct 05. 2021

내가 원했던 밀크티

기대가 가져오는 실망감


Sometimes we create our own heartbreaks through expectation.
-Unknown


"때로 우린 기대로 인해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살다 보면 기대가 가져오는 실망감으로 인해 얼마나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지 깨닫는다. 

그래서 좀 나이를 먹었다(?) 싶은 사람들 중 많은 이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마음 한구석에서 자꾸 피어나는 기대감을 애써 외면하고 모르는 체하며 마음을 졸인다. 


그러고 보면 기대감은 마치 민들레 같다. 

방심하면 생겨나는 흔한 감정이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꽃 같지 않은가.

외면하고 모르는 체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생명력이 질긴 민들레 같지 않은가.   

  





나도 기대감을 마음껏 만끽하기보다는 1+1처럼 따라와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실망감 때문에 마음을 졸이는 편이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닌 소소한 기대감은 피어나기도 전에 묻어버리는 쪽을 택한다. 


기대감도 소소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뉘지 않는가. 

어릴 적 '엄마가 저 장난감을 사줬으면'하는 기대감은 나중에 되돌아보면 소소한 것이었고, 

'저 회사에 꼭 들어가고 싶다' 등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에 대한 기대감은 결코 소소한 것으로 치부될 수 없다.  


                                                            


그랬던 내가 작년 여름, 방콕의 한 카페에서 다른 것도 아닌 이 소소한 기대감으로 휘청한 경험을 했다. 

 

그날은 코로나로 인한 자가격리 및 태국 락다운으로 세 달 넘게 칩거만 하다 밖으로 나온, 방콕에서의 첫나들이였다. 타들어가는 무더위를 견디다 못해 도망쳐 들어간 카페의 메뉴판에 <밀크티>가 보였다. 


"나 커피 말고 밀크티 마실 거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 지를 뻔한 걸 난 겨우 억누르며 말했다.


사실 난 커피에 한해서는(?) 좀 촌스러운 타입인데,

달달한 간식 없이는 아메리카노를 마실 줄 몰라 카페라테만 고수하는 편이다.  


그 카페라테조차도 홀짝거리다 보면

부드러운 우유 거품 사이로 남아있는 쓴 맛이 목구멍으로 들어와 

몇 년 전 직장인 시절, 퇴근 무렵이면 아직 다 마시지 못하고 남아있는 커피를 버리는 것이 마지막 일과였다. 


그래서 가족들이 각자 입맛에 맞는 커피 종류를 시킬 때,

난 혼자 달달한 밀크티에 쫀득쫀득한 타피오카 펄을 추가하며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 

'정말 완벽한 첫나들이야'라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몇 분 뒤, 행복한 내 손에 쥐어진 건 난생처음 보는 오렌지 색의 밀크티였다. 

영롱한 오렌지 색의 '타이' 밀크티

응? 잠깐... 오렌지 색?


내가 받은 이 음료가 내가 주문한 "밀크티"가 맞는지 확인 과정을 거친 후

나는 한동안 놀람, 좌절, 슬픔, 짜증, 어이없음 등의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 가족들이 각자 시킨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는 동안 나의 오렌지 색 밀크티는 나에게 버려진 첫 밀크티가 되었다.


그날로부터 꽤 시간이 지나서야,

난 내가 시킨 것이 일반 밀크티가 아닌 오렌지 색의 "타이" 밀크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타이 밀크티에는 밝은 오렌지 색의 식용색소가 들어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용기를 내어 주문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받은 오렌지 색의 타이 밀크티는

놀랍게도 내가 좋아하던 일반 밀크티보다 훨씬 달달 구리였다.


밀크티에 대한 기대감이 산산조각되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있던 그날, 내가 살짝 맛본 타이 밀크티는

분명 오렌지 색만큼이나 실망스러웠던 맛이었는데 말이다.






안다는 것은, 

그래서 내가 아는 만큼 기대했다는 것은,

조금은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 더 어리석은 것은,

기대가 가져온 실망감에 눈이 가려져 눈앞에 놓인 것을 정확히 보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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