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웠던 미들베리 통역대학원 동시통역사 시험
미들베리 통번역대학원에서 동시통역을 배우기 위해서는 1학년 말 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나 때는 10여 명의 학생 중에 단 1명만이 모든 시험을 통과했다. 불행히도 그 1인은 내가 아니었다. 영한 동시통역 (영어를 들으면서 동시에 한국어로 실시간 통역하는 것)과 한영 순차통역 (한국어를 일정 내용 들은 후, 시간 차를 두고 영어로 통역하는 것)이 내가 낙제한 과목이었다.
이렇게 시험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8월 말, 몬트레이 대학원에 2학년으로 편입해서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조금 더 난도가 높은 시험에 응시해서 통과하면 된다. 결론적으로, 1학년 졸업시험이나 혹은 편입시험에서조차 자신이 선택한 과목에서 낙제를 하게 되면, 2학년 때 원하는 전공을 배울 수 없다.
그 해 여름, 그래서 참 열심히 공부했다. 스터디 파트너와도 공부했지만, 일단 노트 테이킹 한 것을 가지고 무엇이 문제인가 혼자서 분석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같은 노트를 가지고 여러 번 반복해서 통역을 해보기도 하고, 노트 테이킹만 이런저런 방식으로 달리 해보기도 하면서 하나의 지문으로 무한 반복 스터디를 했다. 혼자 카페테리아에 앉아 얼굴을 찡그려가며 허공에 대고 수십 번 통역을 했다. 쟤는 혼자서 뭐하냐는 흘끔거리는 시선도 많이 받았다. 누가 봐도 시험에 낙제한 아이가 마지막 기회 앞에서 발악하는 게 티가 나서, 다음 해에 입학하려는 후배들에게 참 부끄러웠지만, 그런 체면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광년이처럼 공부했다.
시험 당일.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니 좀 떨렸다. 다행히 영한 동시는 여유가 있었다. 시험 대비를 할 때 일반 말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파일로 혹은 오디오 파일을 1.2~1.5배로 빨리 감은 상태로 동시 연습을 한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시험시간에 들려주는 영어 오디오가 제법 느리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기되고 긴장되는 마음은 숨겨지지 않았다. 거친 숨소리가 녹음기에 담겼다.
한영순차는 더 애매했다. 아무래도 마지막에 괜히 다시 고쳐 말한 게 후회됐다.
마침내, 결과 통보를 받는 운명의 날.
이 날이 오기까지, 단 하나의 길만 바라보며 기도를 열심히 했다. 이모양 저모양으로 선고를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그러나 아무리 준비해도 이 길 말고 딴 길을 생각해보지 않은 내 마음은 불안했고, 자꾸 악몽을 꿨다.
약속 시간이 되어 내 악몽의 주인공으로 자주 출연해주신 교수님 사무실로 갔다. 문을 열 자신이 없었다. 동시통역을 못하게 된다는 것은 인생에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좋지 않은 결과일 경우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각이 나오질 않았다. 시간을 지체했다간 지각했다 혼날 판이라 마지못해 힘없이 노크를 했다. 문을 빼꼼히 열었다. 차마 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문에 붙어 있었다. 왜 몸만 꼬고 있냐면서 교수님이 웃으셨다. 일단 들어오라고.
선고를 기다리는 내게 교수님이 "결과가 어떨 거 같아요?" 하고 물어보셨던 것 같다.
"떨어졌죠?"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파들거리는 목소리로 반문하는데, 교수님이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만 하면 돼요. 방학 동안 열심히 했던 것처럼"
눈물이 왁 터졌다.
그런 내게 교수님이 말했다. 너는 다 준비되어 있다고. 통역사가 필요한 순발력, 이해력, 분석력, 한글의 유연함 등과 같은 소질을 이미 갖고 있다고. 그런데, 단 하나 영어만 부족하니 그냥 너는 영어공부만 하면 된다고.
너무도 과분한 칭찬이자 놀라운 통찰력이었으며 동시에 매우 충격적인 조언이었다.
사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좋아해서 자연스레 외고에 진학했고, 영어 만점으로 인 서울 대학 특차 합격을 했던 터라, 내 별명이 영어만 잘하는 정백희였다. -이것은 물론 나의 수많은 예명중 하나-. 고등학생 시절 취미가 영어 문제집 풀면서 틀린 것 분석하기, 영어 교과서를 몇 시간이고 소리 내서 읽기일 정도로 영어를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이후, 영국 유학생활을 할 때도 비록 학교에 한인들이 많았지만, 나는 언어를 배우러 왔다며 독야청청 영어로만 얘기했고,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의 공식을 그대로 체득하여 영어책이나 스크립트를 무한반복으로 소리 내어 읽는 등, 자연스러운 영어 습득의 정도를 걸어왔다. 어딜 가도 영어 하나로 먹고살았고, 당시 남자 친구도 대학교 영어 수업을 같이 듣다가 팔팔 나는 나를 보고 반했다고 했다.
한동안 영어 강사로 일했을 때도 자칭 신들린듯한 강의에 많은 학생들이 나를 따랐으며, 미국 테솔대학원에 진학했을 때에도 원어민을 제치고 통사론 과목 등에서 1등을 하는 등. 내 인생의 주된 테마는 단연코 영어였다.
그런 내게 가장 부족한 것이 영어실력이라니.
영어를 듣거나 읽고 이해 분석하는 능력은 뛰어난 편이라고 칭찬을 받았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한국어를 영어로 표현할 때 어휘력이 문제라는 의중이셨던 것 같다.
사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토익 만점을 받았어도, 내 어휘 수준은 토익 700점대라면 알아야 할 단어도 다 알지 못하는 정도였다. 뒤집어 말하면 아주 적은 어휘를 가지고도 추론 능력으로 문장 독해와 이해를 잘하는 매우 효율적인 공부법을 습득했다.
그러나, 한 언어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통번역의 길에서, 이 정도 갖곤 택도 없는 것이다.
원어민에 가까운 영어와 원어민의 영어는 어쩔 수 없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전자에 겨우 해당하는 나는 그저 어휘를 더 많이 알아가고, 각 용례를 더 많이 배우고 외우며 나아가야 한다.
통역사 9년 차인 오늘도 내 영어 표현력은 부족하다. 영어에서 한국어로 하는 번역보다 한국어에서 영어로 하는 번역이 자가 검증하느라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증거다.
그때 그 교수님의 말씀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다시 채찍질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