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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혜 Starlet Jul 09. 2021

통역사의 영어 인생기1(스탠퍼드대학병원)

가장 가슴 아팠던, 스탠퍼드 대학병원에서의 통역 에피소드

미국 스탠퍼드 대학병원에서 인턴 통역사로 일하던 매일은 생명력 있고 가슴 뛰는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예를 들어. 아시아나 항공기 착륙사고 당시, 당황하고 놀란 한국 환자분들 옆을 잠깐이지만 지켰던 순간


그리고, 할머니 환자분과 간호사 사이의 말다툼을 통역하던 날, 신경질적이던 젊은 간호사분이 따로 나를 불러 전해준, 우리의 오해를 풀어줘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그 말 등등.


나를 가르쳐주시던 기존의 통역사 선생님께서는 타지로 잠깐 떠나신 상태라 혼자서 스탠퍼드 대학병원 전 병동에 대한 한국인 의료 통역을 커버하는 상황에서, 정말이지 큰 보람을 느꼈다.


물론, 오래 서있고, 많이 걸어 다니느라 금세 넘어질 것처럼 허리가 아팠고 식은땀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의료통역을 하며 얻게 되는 기쁨을 지울 만큼은 아니었다.


이제 인턴으로써 마지막 통역을 수행할 차례였다. 원래라면 며칠 더 근무를 해야 하지만, 다음 직장에서 급하게 와달라고 요청을 한 통에 조금 더 빨리 인턴십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매일매일 희열을 느끼는 그런 나날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부끄럽지만, 의료진들과 같은 흰가운을 입고, 옷을 날리며 다급히 뛰어다니는 것도 왠지 멋있었다. 마지막 통역 건이라 의미가 있을 법한데도, 하도 여러 군데 뛰어다닌 통에 심장이었는지, 위였는지, 간이었는지, 어느 병동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영국 신사의 자태를 온몸으로 뿜어대는 젊은 의사 선생님의 "Sorry for monopolizing you"라는 말은 기억이 난다. 원래라면, 마지막 날이니 만큼 타 언어 통역사들에게 가서 인사할 시간을 주어야 하는데, 퇴근시간이 훨씬 넘도록 나를 잡아둔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한 것이다. 'Monopolize ( 독점하다)'라는 말을 이렇게도 쓰는 구나라고 놀랬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사람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따님이 부모님과 함께 왔던 것 같다. 아버지가 암 완치를 받은 적이 있는데, 또 이상이 있는 것 같아 조직검사를 한 뒤 의사와 상담을 하는 상황이었다. 단란한 가정 같았다. 손을 꼭 맞잡고 있었고,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은 길었고 차분했고, 따뜻했다. 별거 아니라는 톤, 사무적인 톤을 유지함으로써 환자가 절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듯했다. 나는 진심을 다해 통역했다.


'암이 재발했습니다.' 이런 수준의 선고가 아니었다. 차트의 여러 가지 기록들을 객관적으로 읽고 설명해주며, 환자가 대응할 수 있는 여러 옵션에 대해 열린 방법을 제시하는 내용이었다. 쉽게 요약하자면, 자연요법 및 민간요법을 찾아서 받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임상실험에 참여할 자격이 되고, 해당 임상실험을 참여할 시의 부작용은 이러이러하다는 것.


임상실험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는 것은, 결국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통역을 했고, 차분하고, 따뜻하고, 길게 통역하러 애썼다. 그 순간에는 사실,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통역이 나왔다.


그분들은 말을 금세 이해했고, 웃음을 띄던 낯빛이 흙빛이 되었다. 의사는 그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러 자리를 나갔다.


의료인이 아닌 통역사가 의료인 없이 환자와 오래 있는 것은 권장되지 않으므로, 나 또한 조심스레 밖으로 나와 문 옆에서 대기했다.


환자 앞에서 놀라거나, 울거나, 슬픈 빛을 보이는 등의 행동은 의료 통역을 할 때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통역사는 그곳에 통역을 위해 있는 것이지 위로를 하러 가는 것이 아니고 의료인이 아니다. 의사와 환자의 말이 제대로 잘 전달되도록 있는 그대로 통역을 해야 하며, 환자와 나를 동일시해서는 안되고, 객체로써만 그를 보며 오직 통역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상담실 내에서의 나는 그랬던 것 같은데, 밖에 나와서 기다리는 동안에는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을 자꾸 다스리며, 조용히 기도했다.


문이 열리고, 환자분이 나왔다. 화장실을 가시는 모양이었는데, 나에게 말을 건다.

한 두 마디 하다가 얘기한다. '교회 다니세요? 예수님을 믿으면 좋아요.' 이런 취지의 말이었다.

그 말이 나는 그렇게 기뻤다.  인생의 진리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황 속에서도 타인의 내세에 대해서 마음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 좋았다.


절망할 법한 상황 속에서도 타인에게 전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아이러니 하지만 강한 생명력을 느꼈다. 그는 방금 전 선고받은 죽음 앞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고, 그에 부합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분이 임상실험에 참여를 하셨는지, 기적적으로 회복하셨는지 알 수는 없다. 살아계신다면, 여전히 생명력 있게 이 땅의 삶을 살고 계실 것이다. 혹시 그렇지 않다면, 소망하던 내세의 삶을 향유하고 계실 것이다.


강요하거나, 다짜고짜 하는 전도가 먹히지 않는 현시대에서 그분의 행동은 시대착오적 일지 모르지만, 그분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죽음 앞에서 보인 삶의 태도는 경이로웠고, 존경받을만했다.


무신론자인 나의 소중한 친구 하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전율이 느껴진다며 눈물을 흘렸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그분은 많은 이에게 울림을 줄만한 순간을 남기셨다. 어디에 계시든 그분의 삶을 통해, 그리고 죽음을 대면하는 모습을 통해,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사람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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