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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사라 Oct 17. 2024

디자인씽킹 스탠퍼드 D.school 방문 후기

극단적 협력에서 배운 것

스탠퍼드 D.school 이란


스탠퍼드 디스쿨의 탄생은 2005년,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 SAP의 공동 창업자인 하쏘 프래터너(Hasso Plattner)의 350만 달러 기부로 시작되었다. 그는 디자인 컨설팅 회사 아이데오(IDEO)의 디자인 씽킹에 깊이 감명을 받아 이 혁신적인 방법론을 널리 전파하고자 했다. 그의 디자인 철학 진정성이 담긴 거액의 기부금을 바탕으로 스탠퍼드에 아이데오 스타일의 디스쿨(D.school)이 설립되었다. D.school은 디자인스쿨(Design school)의 약자이지만, 일반적인 디자인을 가르치지 않는다. 전통적인 가구, 자동차, 의류 디자인 대신, '생각'을 디자인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곳이다.


디스쿨에서는 학위나 학점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는 학부나 학과가 아닌, 하나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스쿨의 수료자는 동문(alumni)이라는 지위를 얻을 뿐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은 학위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디스쿨은 MBA나 로스쿨처럼 지원해서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스탠퍼드의 대학원생이라면 누구나 디스쿨에 등록할 수 있다. 그렇게 화학과, 정치학과, 미디어학과, 의학과, 법학과, 엔지니어링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협력하게 된다. 이렇게 수많은 배경의 학생들이 모여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며, 디스쿨은 이를 '극단적 협력(Radical Collaboration)'이라고 부른다. 서로 다른 배경과 관점이 새로운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믿기 때문이다.



디자인씽킹의 힘


스탠퍼드 디스쿨의 모태가되는 IDEO의 CEO, 팀 브라운은 그의 저서 <디자인에 집중하라:Change by Design>에서 디자인 씽킹을 이렇게 정의했다.


디자인 싱킹은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과
실행 가능한 비즈니스 전략을
고객 가치와 시장의 기회로 바꾸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디자이너의 감수성과 방법을
사용하는 훈련법이다.



스탠퍼드 D.school의 디자인 씽킹 과정은 다섯 단계로 나뉜다. 공감하기(Empathize), 정의하기(Define), 해결방안 찾기(Ideate), 시제품 만들기(Prototype), 그리고 테스트(Test). 각 단계는 비선형적으로 진행되며, 앞뒤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유연성을 갖는다. 고객의 문제를 공감하고, 이를 구체화한 뒤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며, 최소한의 핵심 기능을 구현하고, 고객의 피드백을 반영해 반복적으로 개선하는 과정을 통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낸다. 이는 UX 디자인에서 널리 알려진 더블 다이아몬드 프로세스와도 연결된다. 모든 과정이 유기적이며 비선형적이라는 점이 키포인트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medium.com/swlh/how-to-use-design-thinking-in-the-ux-design-process-e33c4f11a6be


공감하기 (Empathize): 고객 관찰과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겪는 핵심 문제를 이해하고 공감한다. 고객의 말과 행동에 담긴 의도를 질문하며 파악한다.

정의하기 (Define): 공감 과정에서 발견한 고객의 문제를 바탕으로, 그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을 구체적으로 정의한다.

해결방안 도출 (Ideate): 정의된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제약을 두지 않고, ‘무엇이든 가능하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아이디어를 발전시킨다.

시제품 만들기 (Prototype): 최소한의 핵심 기능만을 빠르게 구현한다. 무엇이 핵심 기능인지 질문하며,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실현해본다.

피드백 및 개선 (Test): 만든 프로토타입을 고객에게 보여주고 그들의 반응을 살펴본다. 피드백을 반영해 개선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극단적 협력의 현장


스탠퍼드 디스쿨은 석박사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창의적인 공학 예술 융합 프로그램이다. 나는 그중 기계공학과를 대상으로 하는 ME310 교육실 내부를 살펴봤다. 재정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 Open형 위성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위성을 열린 형태로 설계하고 되돌아 올 수 있도록 하면서, 수리와 제작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는 가치를 창출했다. 이 외에도 화장 실패 없는 아이라이너 머신, 약자를 위한 신발, 와이너리 땅의 습도 측정기 같은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품을 소개해주시는 교수님조차 아이라이너 팀은 시간 낭비만 하고 있는거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한분기에 200달러 넘는 영업이익을 만들어 내더라. 


세상은 넓고,
우리는 모든 시장을 예상하지 못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스탠퍼드 디스쿨의 작품들을 보고 나니 하늘아래 쓸데없는 아이디어는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마음 깊이 울림이 있었다. 


디스쿨은 사람 중심 사고를 강조한다. 제품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창의적이고 실질적인 니즈에 부합한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디자인 철학이 제품에 담기니까, 세계적인 명성이 따라가게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위가 없고 동문만 있으므로, 동문 네트워크의 힘이 강해 보였다. 스탠퍼드 디스쿨 내부 벽에도 동문 구성도가 있었고, 홈페이지에도 동문을 모두 공개하고 있다. 이렇게 능력과 의지를 오픈하고 열린 자세로 협력하고 연결되는 것이 인상깊었다. 이러한 커넥션을 바탕으로 기업 스폰서, 정부, 다양한 대학들과 협업하는 개방적인 자세가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어내는 듯하다.



내가 만난 사람들


SAP 직원과 디스쿨 교수님의 인솔을 받아 견학하며 창업 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디자인씽킹 교육을 바탕으로 스탠퍼드 캠퍼스에서 실제 유저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인터뷰 대상자를 설정할 때는 회사 내 역할, 연락 목적, 접근 방법 등을 고려했으며, 이후에는 End User, Decision Maker, Payer, Influencer, Recommender, Saboteur와 같은 다양한 역할을 분석하는 방법을 추천받았다. 또한, Salary, Motivation, Behavior, Budget, Responsibility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가설을 세워야 했다.



 과정에서 컴퓨터사이언스를 전공하는 한 학부생을 만났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잔디에 앉아 맥북으로 과제를 하던 앳된 모습의 학생이었고, 1학년 프레시맨이었다. 대화를 나누며 라포를 쌓던 중, 그 당시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영화 기생충을 벌써 알고 있었다.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도 아니고, 아카데미 수상 이전의 타국 영화였는데도 말이다. 영화학과 학생이었다면 이만큼 놀라진 않았을 텐데, 컴퓨터공학과 1학년이 알고 있다는 점이 무척 신기했다. 물론 그 학생이 스탠퍼드 컴퓨터공학과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학생과의 대화 경험으로 다양성에 대한 열린 마인드를 엿볼 수 있었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나선, 대학원에 재학 중인 지인을 만났다. 랩실에서 나오는 일이 드물다며, 오랜만에 외부인인 나 덕분에 산책이라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신소재공학을 전공하면서도 인공지능 공부까지 하고 있었다. 새로움에 대한 도전과 학습 열정, 역시나 대학원생다운 열정이 느껴졌고 바쁜 와중에도 친구와 커피한잔 할 여유가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요약하자면, 스탠퍼드 D.school에서 배운 것들은 창의적인 문제 해결의 방법론에 대한 고찰이었고, 그 중심에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제품의 성공은 고객의 진정한 필요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디자인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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