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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궁합 남편과 삽니다

사랑을 부르는 결혼생활 시크릿

by 스텔라윤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 회사 상사는 나를 데리러 온 남자친구(현 남편)를 보고 직언했다.

"서윤님이 너무 아깝다!"


나 홀로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들른 절에서 처음 만난 스님은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으며 얼굴 좀 보자고 했다. 사진을 보여줬더니 '끙'소리를 내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흠. 본인 인생이니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지요."


연애초반에 재미로 색깔사주를 보러 갔을 때도 남자친구가 옆에 떡하니 앉아있는데 대놓고 말했다.

"남자분에게는 이 여자분이 꼭 필요하죠. 그런데 여자분은 좀 더 자기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만나면 좋을 것 같아요."




결혼 초 남편의 사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다가 소개받은 점집에 혼자 찾아갔다. 도착하고 보니 신점을 보는 곳이었다. 그녀는 나와 남편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노트에 받아 적었고 내가 온 목적을 말하기도 전에 방울을 정신없이 흔들기 시작했다. 방울 소리가 멈춘 후, 아주 짧은 침묵이 있었고 단전부터 올라오는 깊은 한숨과 함께 그녀가 입을 뗐다.


"이 사람이 아니야."


남편은 내 운명의 짝이 아니라고 했다. 그녀는 묻지도 않은 궁합을 봐주며 자기가 결혼 전에 미리 알았으면 나를 데리고 해외로 도주를 해서라도 뜯어말렸을 것이라고 했다. 짤랑거리는 방울 소리에 영혼이 탈탈 털린 채로 신발을 구겨 신고 나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그녀는 '1년에 한 번씩은 꼭 오라.'는 말도 덧붙였다. 자기 여동생 같아서 하는 말이라면서. 물론 나는 두 번 다시 그녀를 찾지 않았다.




벌써 결혼 7년 차, 다행히 우리는 서로의 곁을 지키며 잘 살고 있다. <책과 삶에 관한 짧은 문답>에서 박웅현 님은 말한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배우자를 '기필코' 사랑하겠다는 다짐'이라고. 결혼 후 닥쳐온 온갖 역경 앞에서도 나는 남편을 기필코 사랑하는 쪽을 선택했다. 물론 남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편이 무릎 꿇고 사죄했던 날도 있고 전재산 포기 각서도 받아놨지만, 그럼에도 함께 있을 때면 여전히 배꼽 잡고 웃는 날이 많다. 뭐가 그리 웃긴지 별거 아닌 일에도 우리는 숨 넘어갈 듯 웃곤 한다. 웃음 궁합은 웬만한 다른 궁합 요소는 이길 만큼 강력하다.




우리 결혼날짜를 택일해 주신 분은 '마음이 곧 최고의 궁합'이라고 했다.


“궁합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사주로 보는 궁합 분석도 필요는 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있으면 상대에게 자신의 기를 불어넣게 되는데, 이런 기를 받은 사람은 잘될 수밖에 없다. 다만 서로 호혜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 중용에 "땅의 도는 나무에 빠르게 나타난다"는 경구가 있는데 정말 맞는 말씀이다. 좋은 땅에 좋은 나무가 자란다.”
반가워


마음이 최고의 궁합이라면, 우리는 환상의 궁합을 가진 부부다.


우리 관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을 꼽자면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것이다. 남편은 모든 걸 제치고 늘 나를 우선순위로 생각한다. “여보 나 이것 좀 해줄 수 있어?” 내가 무언가를 부탁하면 남편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씁,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히 해줄 수 있지.”


나는 우리가 서로에게 비옥한 땅이 되어줄 수 있기를, 서로가 멋진 나무로 자라날 수 있기를 바란다. 혹은 내가 좋은 땅이 되어 남편이 튼튼한 나무로 뿌리내리며 사는 것도 근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멋진 나무로 인해 결국은 땅도 더욱 비옥해질 테니.


응원해


결혼하고 살아보니 내가 아깝다던 직장 상사의 말, 의미심장했던 스님의 표정, 색깔 사주 아저씨의 흔들리던 눈빛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도 있었다.


'결혼은 운명일까 선택일까? 이 사람과 결혼한 게 내 운명일까? 아니면 내가 운명을 거스른 결혼을 한 걸까? 결혼이 나의 선택이라면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한 걸까? 이번 생은 망한 걸까?' 불안에 떨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운명과 선택, 그 둘이 다른 것이 아니라는 걸. 남편과의 만남은 나의 운명이자 나의 선택이었다. 내 가슴이 이끄는 선택을 따라가는 것이 나의 운명이기에, 매 순간 내 안의 나를 믿고 좋은 선택을 하려고 집중한다. 나는 나의 운명을 믿고 사랑한다. 자기 운명을 사랑하면 타인을 탓할 이유가 없다.



서로를 향한 마음 외에는 여전히 성격, 성향, 취향 모든 게 다르다. 하지만 달라도 괜찮다. 다른 게 당연하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을 낸다는 것이 나를 버려야 함을 뜻하는 건 아니다. 자기 본성대로 살아가면서 상대 또한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아름답게 어우러질 수 있다. 요란하게 삐그덕거리며 합을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어느 순간 문득,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잘 조율된 우리를 바라볼 때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을 느낀다.


고마워



굉장히 노력형 사랑인 것 같지만, 사실은 꽤 자주 '우리 정말 천생연분인가?' 싶을 때도 있다.


남편에게 연락하려고 핸드폰을 집어 들면 어김없이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댔는데 통화 연결음도 없이 이미 전화가 연결되어 있었던 적도 있다.

"여보세요? 뭐야? 어떻게 바로 받아?"

"응? 내가 전화 걸었는데?"

"아닌데? 내가 전화했는데?"


'오늘 저녁에 떡볶이 먹자고 할까?' 생각하면 퇴근한 남편이 어김없이 나에게 말한다.

"오늘 저녁은 떡볶이?"


하루는 남편이 사진첩을 뒤적거리며 말한다.

“오늘 구름 진짜 예뻤어. 여보 보여주려고 찍어왔지.”

남편이 찍은 구름 사진


"어? 나도 아까 똑같은 구름 봤는데?"

내가 찍은 구름 사진


50km 떨어진 장소에서 불과 10분 차이로 둘 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양떼구름 사진을 찍었던 것이다.


"뭐야 뭐야. 우리 진짜 천생연분인가?"


우리는 이토록 사소한 일에 오두방정을 떨며 천생연분인 척 살고 있다.





[쿠키]

ENFP 남편과 INFJ 아내



ENFP와 INFJ는 MBTI 궁합표에서 '천생연분' 조합이다.


우리는 상대의 아주 미세한 감정변화까지도 예리하게 알아챈다. 그러니 상대가 내 감정을 몰라줘서 외로운 일은 잘 없다.


하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너무 달라서 서로를 보며 신기해하곤 한다.

ENFP가 INFJ를 바라볼 때
INFJ가 ENFP를 바라볼 때


나는 남편의 헐렁하고 즐거운 인생살이를 보면서 진지함보다는 가뿐함으로, 심각함보다는 즐거움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를 배운다. 남편은 깊이 생각하고 늘 배움을 추구하며 야무지게 살아가는 나를 보면서 조금 더 자기 인생에 책임감 있는 태도로 살고자 노력한다.


천생연분인 척 살다 보니 천생연분이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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