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비키 결혼생활
남편은 중간이 없다. 엄마와 아내 사이에서 그는 극단적으로 아내 편을 든다. 세 살짜리 아들이 자기 엄마 편을 들듯, 남편은 양팔을 벌리고 나를 시어머니로부터 보호하겠다며(?) 나선다. 어머님은 얼마나 꼴 보기 싫고 배신감이 드실까. 인내심 많은 어머님은 불혹의 아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아유 싱거 빠진 자식아." 하고 마신다.
남편의 철없는 불효자 노릇으로 인해 오히려 나는 늘 시부모님께 더 잘해드리지 못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어쩌면 남편이 굉장히 똑똑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종종 생각한다.
사실 남편은 어머님과 나란히 걸어갈 때 어깨동무를 하는 다정한 아들이다.
연애하던 시절 어머님과 스스럼없이 어깨동무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꽤 놀랐다. 무뚝뚝한 우리 집 아들들에게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기에. 어쩌면 보기보다 다정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결혼해 보니 그는 생각보다 더 다정한 사람이었다.
나는 결혼하며 딱 한 가지를 다짐했다. 시부모님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친정 부모님한테 하는 만큼만 하자고. 우리 부모님께도 효녀 노릇을 못하는데 시부모님께 좋은 며느리 노릇을 하려고 애쓰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시댁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아침, 부지런한 어머님은 새벽 5~6시 무렵부터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식사 준비를 하셨다. 잠귀가 밝은 나는 당연히 잠에서 깼지만 그냥 눈을 꼭 감고 다시 잠을 청했다. 집에서 하던 대로 하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고뇌로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애써 잠재우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오늘 새벽 6시에 일어나면 앞으로도 계속 시댁에 올 때마다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준비를 해야 해. 너 할 수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이불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결국 나는 8시가 넘어서야 눈 비비며 일어났다. 어머님 아버님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버님은 이미 출근하신 후였다. 나를 바라보는 어머님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분명히 보았지만, 그저 머리를 긁적이며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결혼 7년 차인 지금 나는 게으른 며느리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어머님 아버님은 새벽에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시고 나와 남편은 실컷 자고 느지막이 일어난다.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결혼생활 7년 동안 나도 대한민국의 평범한 며느리들처럼 시댁에서의 일로 눈물짓기도 하고 결혼제도 자체에 분개하며 울화 터뜨리는 날도 많았다. 남편도 결혼초반에는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문화에 본인 스스로 회의감을 느끼고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 가정에 충실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힌 듯했다. 남편이 불효자를 자처한 후로는 시댁에서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이 줄었다. 모든 문화를 바꿀 수 없기에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부분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남편이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어머님은 말로는 "요즘은 남자들이 설거지도 다 한다. 너도 서윤이 시키지 말고 집에서도 네가 해라."라고 하시지만, 내심 애지중지 키운 아들 손에 물 묻는 걸 좋아하진 않으신다.
시댁에 가면 청소 설거지 모두 남편이 하는데 마음 불편한 나는 괜히 남편 옆에서 알짱거린다.
"여보 내가 할게~"
남편은 한술 더 뜨며 말한다.
"까불지 말고 가만있어. 어디 남자가 하는 일에 여자가 끼어들어!"
민망한 나는 옆에 계신 어머니께 쓸데없는 말을 하고 만다.
"하긴 설거지는 오빠가 저보다 더 잘해요~"
.
.
.
"너는 왜 남의 집 귀한 아들 집에서 설거지 시키노!"
꼬깃꼬깃 숨겨둔 진심이 어머니 입에서 튀어나오는 데까지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물론 어머님도 결혼 초반에는 어설픈 며느리가 걱정되니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셨지만, 7년 동안 지켜보며 내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하셨는지 이제는 나를 그냥 내버려 두신다. "며느리가 다 알아서 하겠지. 우리 며느리가 얼마나 야무진데."
아버님도 미흡한 며느리를 어여삐 여기신다. 생신이나 되어야 울며 겨자 먹기로 전화를 드리는데도 늘 신나는 목소리로 "으이~ 며느리이~"하며 반갑게 받아주신다. 남편은 아버님이 그렇게 방긋방긋 웃으시는 건 나를 만나고 처음 본다고 했다.
마음 깊은 시부모님과 불효자를 자처한 남편 덕분에 나는 '제사 지내는 경상도 집의 장손의 장남'과 살면서도 몸도 마음도 편하게 지낸다.
무엇보다 시부모님께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 주신다. 조금 무뚝뚝하고 살갑진 않지만 야무진 며느리. 애교는 없지만 속 깊은 며느리.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해 주고 아들의 부족한 모습도 감싸주는 며느리. 나를 믿고 뒤에서 지켜봐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나도 시부모님께 든든한 며느리가 되어드리고 싶다. 나는 친정 부모님께도 든든한 딸이니까. 나는 원래 좋은 사람이니까. 내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남편은 결혼하고 몇 년 동안 신경치료와 임플란트를 하느라 치과를 수시로 들락거렸다.
"어머님 결혼하고 오빠 임플란트 몇 개째 인지 몰라요. 장가 오기 전에 이런 거 다 치료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머님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반품은 안된다."
"그럼 A/S는 가능할까요?"
"A/S는 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