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사람들 두번째]
[인도 사람들 두번째] Geetesh Sharma(85, Journalist, Activist, Author)
새벽 콜카타 공항에 가득 찬 스모그는 인도가 만만치 않은 여행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소총을 메고 있는 경찰은 주변 모든 상황을 의심스럽게 여기는 듯했고, 도착을 기다리는 가족들조차 공항에 들어오지 못한 채 반드시 밖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불안감을 억누른 채 공항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고 일어나 선불 택시를 결제하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우리에게 택시를 셰어하자고 먼저 제안한 현지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우샤 굽타’. 배낭여행객들에게 현지인의 과한 친절은 경계대상 1호이기에, 그녀의 시크하고 차가워 보이는 첫인상이 오히려 묘한 신뢰감을 불러일으켰다. 서더스트리트 행 택시에서 짧은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서로 경계를 풀 수 있었다. 우샤는 콜카타 출신으로, 현재 뭄바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커리어 우먼이다. 연말을 맞아 삼촌네 집이 있는 콜카타에 잠시 쉬러 왔다는 그녀는 강단 있는 표정과 몸동작으로 자신의 직업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우샤도 멀리서 콜카타를 찾아온 우리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던지 여러 가지 질문을 하기도 하고 수시로 웃어 보이며 적극적으로 대화를 풀어나갔다. 택시에서 내리기 직전, 우샤는 우리의 숙소와 그녀의 집이 멀지 않은 거리에 있으니 시간이 나면 집으로와 티타임을 갖자고 제안을 했다. 배낭여행객이라면 여행 중에 만나는 길동무에게 수많은 초대 제안을 심심치 않게 받는데, 우리는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남미 같은 험지에도 쉽게 적응했다며 자만했던 탓일까.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자동차의 경적소리와 매연으로 꽉 찬 뿌연 하늘은 여행 시작 2,3일 만에 도무지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콜카타에서 무엇을 얻어갈지 막막해진 우리가 떠올린 것은 쿨하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우샤 굽타. 우샤는 삼촌댁이 위치한 거리 이름과 번지수, 그리고 삼촌 이름을 가르쳐주며 혹시 찾기 어렵다면 거리에서 삼촌의 이름을 대라고 했다. 호스텔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그 거리로 직행한 우리는 노점상으로 북적대는 거리에서 갈피를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그런 우리를 발견한 노점상인 여러 명이 무엇을 찾고 있냐고 물어오자 우리는 그녀의 삼촌 이름을 댔다. 그러자 그들은 마치 이 동네 주민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듯, 매우 유명한 사람이라는 말을 연발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이 동네 마당발인가? 아니면 악명 높은 장사꾼? 불안한 마음에 휩싸인 채 그들 중 한 명을 따라 인가가 밀집한 미로 같은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이건 일종의 여행자 대상 사기라는 확신이 들 무렵에 어느 집 대문을 나서 외출 채비를 하는 우샤를 발견, 너털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이름을 반갑게 불렀다. 연말 모임을 위해 외출을 나서던 중이었다는 우샤는 약속에는 천천히 나가도 좋으니 삼촌과 함께 차를 한잔 하고 가라며 얼굴 한가득 미소 지은 채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렇게 집 대문을 들어서니 유난히 길게 펼쳐진 복도를 따라 인도 고대 건축물 사진이 장식되어있었고, 복도 끝은 이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응접실 겸 거실과 연결되어있었다. 응접실에는 우샤의 삼촌으로 보이는 분이 인도 초대 수상 네루, 베트남 총리 등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놓여있었다. 범상치 않음을 알아챈 우리가 서로의 표정을 확인하며 놀라고 있을 때쯤, 인기척이 들리자 응접실 구석으로 나있는 문에서 사진 속 그분이 나오셨다. 그의 이름은 Geetesh Sharma.
그는 따뜻한 표정으로 우릴 향해 다가와 먼저 악수를 건네며 자신의 서재로 우리를 안내했다. 지테쉬 할아버지의 안내를 따라 들어선 서재는 작고 소박한 책상과 빽빽이 꽂혀있는 책들,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 몇 장, 훈장 내지 서훈으로 보이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뒤섞여 놓여있었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놀란 우리에게 자신을 작가이자 활동가로 소개한 그와 함께 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샤 : 나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는데, 지테쉬는 우리 아버지의 친한 친구셨어. 혈연이 없는 나에게 대부 역할을 해주시고 계신 셈이지.
G : 듣자 하니 너희 한국에서 왔다고 하던데, 나는 남한은 가보지 못했지만 북한을 가본 적은 있지.
해인, 용우 : 북한을요??? 어떤 일로 북한을 가시게 되셨어요?
G : 예전에 김일성의 초대를 받아 북한에 다녀온 적이 있지. 모든 게 다 통제되어있어서 다니는데 굉장히 불편하더구나.
해인, 용우 : 어떤 일로 초대를 받으셨어요?
G : 북한에서 전 세계 사회주의자들을 다 초대해 벌이는 행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인도에서는 내가 가게 됐었어. 김일성이랑 만나 악수도 했었지.
해인, 용우 : 그럼 할아버지는 사회주의자이신 거예요?
G : 응 나는 사회주의자야, 근데 마오와 김일성의 방식은 실패했다고 생각해. 그들은 따뜻한 마음이 없고 잔혹하기만 하지. 그들의 방식은 인도에 절대 적용될 수 없어. 나는 베트남의 호찌민의 방식이 옳았다고 봐. 너희는 베트남에 가본적 있니?
해인, 용우 : 아니오. 저희는 가본 적이 없어요.
G : 베트남에 가보길 추천해, 나는 수십 번도 더 갔었어. 베트남은 꽤나 진보적인 사회를 가진 나라야. 호찌민은 사회주의를 베트남의 상황에 맞게 적용시키려 했을 뿐 마오의 방식도, 레닌의 방식도 따르려고 하지 않았지. 호찌민은 이론가가 아닌 행동주의자였고, 폭력주의자가 아닌 평화주의자였어.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였음에도 언제나 그는 평화적인 해결방법을 찾아 사람들을 이끌었어. 그의 소박한 삶은 나와 같은 서뱅골 지방의 활동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어.
해인, 용우 : 그럼 할아버지는 인도 내의 사회주의 정당 중에 어떤 정당을 지지하시나요?
G : 나는 인도 내 어떤 사회주의 정당도 지지하지 않아. 인도에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과거에 다양하게 분화되어있었어. 인도 공산당, 인도 마오 공산당, 인도 레닌 공산당, 인도 마오 레닌 공산당... 하지만 그들 모두는 사회주의 정당이 아니었어. 근데 하나만 물어보자. 왜 그렇게 베트남 아가씨들이 한국으로 국제결혼을 많이 가는 거니?
해인, 용우 : 음.. 보통 그런 경우에는 한국의 농촌으로 결혼이주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한국의 농촌에는 결혼 적령기의 남성 수가 여성의 수보다 훨씬 많아요. 산업이 고도화되고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까 생긴 현상이에요.. 그들이 결혼을 위해 다른 나라의 여성들을 원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국제 중매결혼이 활성화되었고 그중에서도 베트남의 여성들이 선호되는 것 같아요.
G : 그렇구나.. 내 주변 친구들 중에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은데 굉장히 로맨틱하고 달콤하게 느껴진다고 하더라고. 그런 지점들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판타지를 보게 하는 것 같네. 베트남 여성들이 보통 결혼 관계에서 남편에게 순종적인 경우가 많아서 선호되는 것 같기도 하고.
해인, 용우 : 결혼이주여성의 사회적인 처우나 가정폭력 등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해요. 그럼 어려운 이야기가 나온 김에 몇 가지 더 질문을 해봐도 될까요? 저희는 인도 사회에서 종교가 가진 의미가 궁금해서요. 할아버지는 어떤 종교를 갖고 계신가요?
G : 나는 종교가 없어. 나는 원래 콜카타가 아닌 인도 동북부의 디하르 지방 출신이야. 엄격한 힌두교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나 힌두교 성직자가 될 운명을 안고 평생을 살아갔어야 했지. (성직자 집안은 카스트제도의 최상위층인 브라만에 속한다) 성직자 학교를 다니며 성직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 종교와 가족, 신 모두에게 저항하기 위해 16살에 디하르를 떠나 연고도 없는 콜카타로 왔지. 그리고선 20살 때부터 한 일간지에서 저널리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었어. 세계 모든 나라에서 종교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기능을 도맡아왔었어. 그러나 이제는 아니야. 내 생각에 종교는 인류에게 제 기능을 마치고 수명을 다한 것 같아. 이제 종교는 인류를 연결시켜주는 게 아니라 인류에게 분열만을 낳고 있어. 하나의 종교에서 얼마나 많은 분파들이 나뉘어 싸우고 있니. 나는 종교인이 아닌 휴머니스트야. 사람의 힘을 믿어. 너희는 종교가 있니?
해인, 용우 : 저희는 둘 다 종교가 없어요. 저희는 속사정을 모르니까, 일반적으로는 인도인의 삶 자체에 종교가 긴밀히 연결되어있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종교가 어떤 분열을 낳았다는 말씀이시죠?
G : 인도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교와 소수종교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이슬람은 역사적으로 서로를 많이 죽여 왔어. 서로를 향한 적대감은 아직도 여전하지. 이슬람만 놓고 봐도 문제점들은 발견돼. 인도의 이슬람 신자들은 인도인으로서 이슬람을 나중에 수용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이슬람의 교리와 모순되는 지점들이 발생시켜. 그들은 인도인으로서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지만 이슬람은 그 모든 것들을 터부시 해. 그러나 인도의 이슬람은 그들의 모순점들을 비판당하거나 코란에 대해 비판한다면 굉장히 폭력적으로 돌변해. 심지어는 죽이기도 하고. 힌두교는 또 어떻고. 현재 인도 정부를 구성하는 집권당은 굉장히 급진적인 성향을 띠고 있어. 그들은 힌두교와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모든 것들을 싫어해. 이슬람도, 기독교도, 모두. 힌두교 내부의 카스트제도는 어떻고. 얼마나 분열적이니.
지금껏 우리에겐 넓은 국토와 많은 인구가 가진 성장 잠재력 정도가 인도 사회하면 떠오를 수 있는 생각의 전부였다. 알 길이 없던 인도의 속사정을 인도 지식인의 시선을 빌려 바라보니 당면한 우리의 이야기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G : 나는 중국이 요즘 보이는 모습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아.
우리 : 어떤 면에서요?
G : 알다시피 중국은 여러 국가들과 영토분쟁을 겪고 있지. 인도도 예외는 아니야. 인도와 중국은 몇몇 지역에서 영토분쟁을 겪고 있어. 여기서 중요한 건 중국이 인도가 겪고 있는 또 하나의 영토분쟁인 파키스탄과의 갈등관계를 활용해 인도를 압박하려 한다는 사실이야. 중국은 계속해서 파키스탄에 경제적 지원을 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어. 이처럼 중국이 우월한 경제력을 활용해 패권국가의 지위를 차지하려 하는 모습은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 위협요소가 되고 있어. 경제적 식민지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지. 중국이 아프리카에 끼치려고 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들어봤니? 아프리카의 몇몇 나라는 심지어 자국 시장에서 자국 통화보다 중국의 위안화가 더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고 하니 걱정이야.
우리 : 그렇다면 이런 지점에서 어떤 식으로 접근하면 좋을까요?
G : 중국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조금씩 힘을 합쳐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면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요즘 필리핀 알잖니... 필리핀은 미쳐가고 있어. 트럼프보다 더 심한 사람이 마약의 이름으로 살인을 자행하고 있고 그 와중에 친중노선을 견지하고 있어서 걱정이야.
우리 : 인도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떤 점이 개선되어야 될까요?
G : 가장 중요한 것은 부패의 개선이야. 인도는 부패 문제가 너무 심해. 내가 바라보는 부패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가 있어. 첫 번째는 사회복지 시스템의 부재야.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 없으니 부모는 자식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가 돈을 벌어서 저축해야 해. 나 같은 경우에도 내가 아파지면 내가 최소한의 치료비를 도움받지 못하고 내가 모든 부담을 다 짊어져야 할 거야. 그렇다면 어떻게 되겠어. 돈을 벌 수 있을 때 어떤 방법으로든 최대한 돈을 벌어놓고 저축을 해야 하는 거야.
우리 : 그렇다면 사회 복지 시스템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는 없나요?
G : 전혀. 왜냐면 인도 사람들은 모든 일을 신이 다 순리대로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해. 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수많은 범죄에 노출되어있고, 소수가 절대다수를 지배하지만 절대 혁명을 일으키지 않을 거야. 왜냐면 사람의 힘으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고, 신만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우리 : 그렇다면 낙살바리 운동(주: 1960년대 인도 서뱅골 지역에서 일어난 무장농민봉기운동. 당시 구성된 농민위원회는 지주의 토지를 몰수해 땅 없는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나, 그들은 마오쩌둥식의 폭력혁명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은요? 낙살바리는 일종의 성공을 거두지 않았나요?
G : 그건 굉장히 소수에 해당하는 이야기야. 그들도 결국에는 폭력적이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자신이 스스로 그 돈을 취하기도 했었어, 결국 부패의 악순환으로 들어가게 되었었지. 본론으로 돌아가서 인도의 부패가 끊이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탐욕이야. 인도인들은 요즘 너무 심한 탐욕을 부리고 있어. 일반 서민부터 사업가나 거물 정치가까지 돈을 벌기 위해서 라면 부도덕적인 행동을 마다하지 않아. 사람의 목숨보다 돈이 더 중요해지는 세상이 된 것만 같아. 요즘 너희 나라도 대통령과 관련된 문제가 있지 않니? 대통령이 자신의 친구와 연관된 큰 부패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고 있어. 부패한 권력이 가진 탐욕의 문제는 세계 어느 나라에든지 해당돼. 이 두 가지가 해결되어야만 인도 국내 문제의 핵심인 부패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아.
긴 이야기를 끝으로 지테쉬 선생님은 작년에 나온 자신의 책을 선물해주시겠다며 일어섰다. 우리에게 두 권의 책을 선물해주셨는데 하나는 호찌민의 생애와 사상을 인도에 소개하는 전기였고, 나머지 하나는 종교에 대한 집착적 숭배를 거부하는 사회철학(Secularism)을 소개하는 책이었다. 책을 비롯해 몇 가지 선물을 챙겨주시며 우샤 굽타와 선생님은 우리의 가는 길을 끝까지 따뜻하게 배웅해주셨다.
이야기를 나누며 가장 크게 가슴에 남은 것은 선생님의 열린 태도였다. 사회 전체를 통찰하는 시각을 가졌음에도, 흔히 빠지기 쉬운 냉소나 엘리트주의와는 거리가 먼 태도를 유지했다. 우연히 만난 철없고 젊은 여행자들의 부족한 의견에도 일일이 귀 기울여 대답해주고, 따뜻한 차와 비스켓으로 환대해주는 그는 사람을 믿는 진정한 휴머니스트임을 몸소 증명했다. 지테쉬 샤르마는 단지 사회의 원로가 아닌 현재에도 저술활동에 여념 없는 백발의 현역 활동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