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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보뽈로니오 Mar 04. 2019

성추행이 별건가요

열다섯 번째 이야기. 코치(Kochi, India) 

성추행이 뭐 별거라고. 지금도 가끔 여행에서 있었던 일들을 친구들에게 말할 때 여행 각지에서 성추행을 당한 얘기를 할 때가 있다. 대부분은 어떻게 그런 일을 당할 수가 있냐며 안타까워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반응이다. 이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내 대답. 성추행이 뭐 별거라고.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 별 일이 아니게 된 거다. 당한 순간과 그 뒤로 지속되는 얼마간의 시간 동안 분노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피곤하니까. 이 일을 계속 마음에 담고 있으면 그저 내 손해가 되는 거니까 접는 것이다. 이 피로는 아무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인도에 도착한 지 일주일 정도 흘러 12월 31일이 되었다. 용우의 몸은 나보다 먼저 인도에 반응해 배탈에 열이 나기 시작했고, 그 사이 우린 인도 남부 케랄라주의 도시 코치에 와있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새해를 어떻게 맞이할지 궁금했다. 인도에 와서 통 적응을 못하고 있던 우리도 한 해의 마지막 날 만큼은 밖에 나가서 분위기를 즐기고 다시 한번 인도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올리고 싶었다. 


슬렁슬렁 밤거리로 나와 크고 소리가 요란해 보이는 술집에 들어갔다. 세상에나, 얼핏 보아도 100명은 되어 보이는 남자들이 있었고 놀랍게도 여자는 한 명도 없었다. 단 한 명도. 우리가 들어서는 순간 일제히 시선 집중. 내가 정말로 이 술집에 발을 들인 첫 여성인 건가. 남자들은 신기해하면서도 당연하다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렇지, 우리나라 여자는 아니고 외국인이니까 왔지’, ‘근데 서양인이 아니고 아시아인이네, 더 의외인데’ 등등 술집 안에 있는 남자들은 분명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싶어 했다.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핸드폰을 들이댔다. 새해가 되기까진 한 시간도 남지 않았고 모두가 고조된 상황에서 이게 뭐 대수라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음으로 우린 사진을 다 찍어주었다. 구경거리가 된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병을 들고 바 안에서 술을 마시며 분위기를 최대한 즐겨보려고 애썼다. 그때까지는 어느 정도 신났던 것이 맞을지도.  

이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해맑게 사진을 찍어준 내가 바보 같다. 옆에 있는 용우도 밉다.

그렇게 분위기에 취하다 나와보니 자정이 10분쯤 남았고 우리는 새해 기념으로 거대한 인형을 불에 태우는 의식이 벌어진다는 바닷가로 향했다. 어마어마한 인파가 있었고 그 이후의 일들은... 적어도 다섯 명은 넘는 사람들이 내 몸의 온갖 구석구석을 대놓고 만지고 지나갔다. 너무도 뻔뻔해서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는 것.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는 것… 이 사람들에게 내 몸을 만져 달라고 일부러 여기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정신을 놓고 있다 보니 그새 해가 바뀌어 있었고 내 입에선 온갖 욕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예상된 일이었다. 인도에 가기 전 용우는 인도에 관한 미국 코미디 ‘아웃소스드’를 정주행하고 있었지만 나는 각종 성추행과 성폭행에 대한 기사를 검색하고 ‘여자 인도 여행’이라는 검색어를 검색창에 반복해서 쳤다. 얼마나 각오를 하고 가야 할지, 당하더라도 어떻게 덜 당할지 감을 잡아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사들에 달린 쓸모없는 2차 가해성 댓글들 덕분에 더 단단히 마음먹고 여행을 올 수 있었다. “이렇게 기사가 나고 하면 여자들은 인도에 왜 가는 거야. 당해도 싸지.” 인터넷에 이런 댓글이나 다는 것들은 무시하면 됐다. 그런데 정말로 당해버린 것이다.


아까 술집에선 뭐가 좋다고 실실이처럼 사진을 찍어준 것인지. 나를 만지고 간 사람들에 대한 분노는 어느새 나 자신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된 용우에게, 나만큼 화가 나지는 않은 용우에게, 이 상황에서 겨우 맛있는 거 먹으러 가서 기분전환 하자는 말 밖에 하지 못하는 이놈의 용우에게 전가되고 있었다. 내 욕은 점점 수위가 심해졌고 걷잡을 수 없어졌다. 듣다 보니 본인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남자들을 싸잡아서 욕하기까지 하니 용우도 불편해하다 결국 한마디 했다. “그만해.” 


나도 용우에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당한 순간엔, 내 분노를 자제할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문제는 이미 성추행범 들은 사라졌는데, 애꿎은 용우가 그자들을 대신해 욕을 먹고 있었다는 것. 혼자 있을 때 성추행을 당하면(이전 남미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혼자 넘기고 말았는데, 분풀이할 상대가 옆에 있으니 성별도 같다 싶어 순간 내 마음이 삐딱해졌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인도에서 내 몸은 편히 있지 못했다. 기분이야 머릿속에서 나 자신과 타협해 조종하면 됐지만, 몸은 본능적으로 안다. 하나도 괜찮지 않다는 것을. 용우와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먹고 같은 기차 칸에 타고 같은 길을 걷고 있었지만 나는 늘 용우보다 긴장하고 여유가 없어졌다. 주변에 남자가 있는 대부분의 상황에서(인도에서는 기차나 거리에 대부분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많다) 나는 늘 가시를 세우고 뻣뻣하게 있었다. 양손은 언제나 재빨리 가슴과 허리 아랫부분을 막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눈은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친절한 눈빛은 남자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으니 금물이었다. 따로 커튼 같은 건 없는 야간 기차에서도 늘 긴장상태.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도 내 두 손은 재빠르게 허리 아래로 향했다. 

인도 기차 안. 지나다니며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남자들을 두고 편히 잘 수가 없었다. 


용우에게는 이런 변화를 굳이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적대적이 된 나의 행동을 100% 공감하도록 강요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용우가 대신 지켜줄 수 없는 일이었다. 내 몸을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지켜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불친절하고 신경질적인 외국인 여행객이 되어 있었다.


다 꼴 보기가 싫어졌다. 우리 둘에게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콜카타에서 첸나이, 코치까지 인도의 좋은 모습을 찾고 싶어 계속 희망을 가지고 이동해왔는데 아직은 이 여행에 답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 한 달 하고 3주나 남았는데, 나 어떡하지. 점점 이 나라를 좋아할 자신이 없었다. 용우와 같이 있는 것도 이 문제에서 만큼은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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