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글샘 Oct 11. 2024

늘 궁금한 옆 반 이야기_5편

사진으로 함께 보는 초등학생들의 웃기고 귀여운 순간들



    사진첩을 정리하다 문득, 사진과 함께일 때 더 귀엽고 즐거운 일화 몇 가지를 낚았다. 초등학교이기에 가능한 귀엽고 웃긴 이야기를 한데 모아 풀어본다. 이름하여 정글샘 컬렉션이다.


#1. 관계는, 바로!


    요즘 학교에는 가정과 함께하는 학교 밖 체험학습을 출석으로 인정해 주는 '현장체험학습' 제도가 있다. 현장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싶다면 사전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허가 후 체험학습을 다녀와서 '보고서'를 제출하는 과정을 거치면 된다. 이제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아이들이 어릴수록 현장체험학습 신청은 활발하다.


    부끄럽지만 나는 정리정돈에는  흥미가 없고, 급하지 않은 일은 미룰 때가 있어달에도 장씩 모이는 체험학습 신청서와 보고서를 매달 말에 한데 모아 정리하곤 한다. 얼마 전, 9월의 체험학습 신청서와 보고서를 정리하다가 배를 잡고 웃었다.

우리 반 어린이가 작성한 체험학습 신청서 일부(ㅋㅋ)

    혹시 이유를 발견하셨는지?ㅎㅎ 체험학습 신청서는 사전에 제출만 하면 대부분 허가서를 내보내기에 의례적으로 서류를 대충 보고 허가를 했다가 자그맣게, 구석에 숨겨진 중요한 포인트를 놓친 것이다. (반성한다ㅋ)


    보호자와의 관계, 체험학습 인솔자와의 관계를 밝히는 칸에 해당 학생의 어머니께서 母자만 적고 다른 정보들은 학생에게 직접 기입하라고 했던 모양인데 이런 신청서가 완성됐다ㅋㅋㅋ 한자의 이름과 뜻을 적으란 의미가 아니었는, 삐뚤빼뚤  순수한  글자 '어미 모'의 존재감!ㅋㅋㅋㅋㅋ 덕분에 하기 싫은 서류 정리 작업을 웃으며 마쳤다.


#2. 엄마의 말을 쓰라고 했으니까~


    초등학교 3학년의 특징이 몇 가지 있다. 그중 교사나 아이들이나 너 나 할 것 없이 피부로 느끼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교과목의 변화가 아닐까? 1, 2학년에서 통합교과를 배우던 아이들은 3학년이 되며 본격적으로 정식 명칭(?)이 있는 교과목을 배운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꽤나 즐거워한다.


    그중 특히 덕후(?)가 많은 교과는 과학이다. 과학 시간에 기상천외한 질문들이 여기저기서 샘솟는 우리 반의 수업 상황을 공유해도 참 재미있을 건데,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한다. 3학년 1학기 과학 시간에는 '물질'과 '물체'의 개념을 배우고 나아가 각 물체를 쓰임새에 걸맞은 물질로 만들어야 하는 까닭을 배운다. 이러한 사실을 더욱 잘 가르치기 위해 '컵'이라는 물체는 종이, 나무, 플라스틱, 금속 등 여러 '물질'로 만들 수 있지만 쓰임새에 맞게 활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예시로 든다.


    해당 단원 수업을 마무리하고, 나는 어린이들이 물체의 쓰임새를 고려하여 물질을 선택해야 하는 까닭을 잘 이해하였는지를 평가했다. 교과서에서는 '컵'이었던 예시를 '모자'로 바꾸고, 어떤 상황을 제시한 후 해당 상황에 어울리는 모자를 고르는 문제를 출제했다. 그리고 채점을 하던 중, 역시 웃긴 상황을 마주하고 빈 교실에서 혼자 한참 웃었다. 까닭은 다음과 같다.


  (문항 일부)

  엄마: ㅇㅇ아~ 이따 수영장에 갈 때 잊지 말고 꼭 모자를 챙겨가렴

  ㅇㅇ: 네, 엄마. 그런데 어떤 모자를 써야 해요?로 이어지는 대화에 알맞은 답을 쓰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혹시 헷갈려서 엉뚱한 내용을 적는 아이들이 있을까, 답을 쓰는 칸 앞에 '엄마'라고 말하는 사람을 밝혔다.


    그리고 한 어린이의 답변: "고무 모자지, 아유 예('얘'의 틀린 표현)가 참"(ㅋㅋㅋㅋㅋㅋ) 엄마의 말투를 흉내 내며, 정답까지 맞힌 걸로 모자라 나에게 큰 웃음을 준 귀여운 어린이(ㅋㅋ). 나를 한참이나 웃게 했던 어린이의 시험지를 증거 사진으로 첨부한다.

이토록 귀엽고 웃긴 증거 사진(가린 부분은 내가 문제에 활용한 우리 반 다른 어린이의 실명이다.)


#3. 애벌레에게 하고 싶은 말


    역시 3학년 1학기 과학 수업과 관련 있는 사건이다. 그날은 교실에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알 상태로 맞이하게 되었다.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키우며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도 함께 길러주고 싶었기에, 나는 그날 알림장에 '우리 교실에 온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만 떠올려 적어보라 했다. 수업 내용과 연계하여 아이들이 '너의 생명도 소중히 여길게' 혹은 '다치지 않도록 눈으로만 볼게'와 같은 내용을 적기를 바랐고, 대부분 아이들은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내용을 적어왔다.


    그런데,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마음을 표현한 한 어린이 때문에 나는 이번에도 속수무책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가 적어온 약속은 다음과 같다.

아이들에게 상추나 케일을 사 오라고 한 적은 맹세코! 당연히! 없다.


    "내가 군마트(군인 마트. 가족 중 군인이 있었던 모양이다.)에서 상춘잎(상추잎) 많이 사 올게."


    이 순수하고도 애틋한 약속을 보고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어린이에게 나도 모르게 웃은 사실을 사과하고(저 나름대로 진지한 약속을 적은 것이었기 때문에 사과할 일이 맞다.) 상추잎을 사 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도 물론 짚어 주었다. 애벌레가 너무 많아 먹이가 부족해지면 선생님이 어떻게든 먹이를 구해올 테니, 애벌레가 굶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했더니 햇살처럼 밝아지는 어린이의 얼굴. 어린이가 그 순수한 마음을 잘 간직한 어른이 되길 바라며 틀린 맞춤법은 다음에 짚어주었다.(ㅎㅎ)


#4. 몽글몽글, 꽃 배달


    어린이들을 하교시킨 후의 학교도 꽤나 바쁘다. 특히 부장 보직을 맡은 교사는, 어린이들이 없는 오후에 여기저기 다니며 일을 하기도 하고 회의에 참석하기도 한다. 역시 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나도 교실을 비우는 상황이 잦다.


    어느 날엔가는 회의에 갔다가 돌아오니 거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지친 머리와 마음을 추스르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수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엉망진창 책상 위에 무언가가 보였다.

언제 두고 갔을까? 몽글몽글 작지만 소중한 꽃에 나는 하염없이 감동했다.


    초등학생만 할 수 있는 작지만 큰 선물. 내가 없는 교실에 대체 어떤 어린이가 이 꽃을 두고 간 건지, 나는 궁금하고 고마웠지만 결국 꽃 선물을 한 어린이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꽃을 선물한 어린이가 누군지 모르기에 우리 반 어린이 모두의 얼굴을 상상하며 오히려 기쁘기도 했다. 이런 순간들은 초등학교가 배경일 때 더 감동적이고 소중한 경험이 아닐까?




    가을이 깊어가는 중에, 어느덧 올해 만난 아이들과도 서서히 이별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왔다. 사진첩을 구경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훌쩍 커 버린 어린이들의 얼굴과 몸에서 이젠 꽤나 소년, 소녀의 태가 보인다. 매일 정신없고 바쁜 학교에서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기에 소중한 이 순간을 더욱 잘 붙잡아봐야겠다는 깨달음과 함께 주말을 맞이한다. 어쩌면 코 앞까지 다가온 주말이 내 마음을 더욱 너그럽게 만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늘 궁금한 옆 반 이야기_4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