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rden Sep 23. 2024

대치동블루스 2

흔들림없이 나아가는 법. 그것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 대치동 학원가의 생리가 마음에 안들면 안보내면 그만이다. 그들이 내 아이를 책임져주는 것이 아니니 나만 주관이 뚜렷하면 내 소신껏 해도 된다. 그러나 나에게는 대치동을 그만큼 대차게 외면할 줏대가 없다. 학업에 대한 실험을 한 번도 거쳐보지 않은 아이에 대한 확신 또한 없다. 내가 경험해본 한 대학, 그것은 긴 인생에서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나의 가장 큰 콤플렉스는 그렇지만 그 경험이 무색하게도 대학 간판이다. 인생을 다시 돌릴 수 있다면 다른 때도 아니고 고3으로 돌아가서 죽어라 공부해보고 싶다고 습관처럼 후회하고 아쉬워한 건 남편이 아니라 나였다. 아이에게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게 하고 싶지 않다. 아이는 실패와 좌절을 겪고 이겨내는 법을 몸소 터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편 실패와 좌절을 극복해내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다. 실패와 좌절에 빠졌을 때 양옆구리에 손을 넣어 번쩍 들어다 꽃길로 옮겨주고 싶다.


그리고 생각해보자. 전국 어디에 살든 간에,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대치동 학원가를 이용하고 싶다. 숨겨진 일타강사를 알고 싶다. 소수정예만 알고 있는 비법을 공유받고 싶다. 주말이면 아침부터 대치동에 진입하려는 차들로 평소 10분이면 오갈 거리도 1시간 이상도 걸린다는 게 그 방증이다. 방학이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아이들이 대치동 학사에 머물면서 한가해야 할 방학에도 그곳을 활기가 넘치는 곳으로 만든다. 어디서든 오고 싶어하는 학생들로 넘실대는 이 동네에 걸어서 다닐 수가 있는데 거길 ‘안’ 간다는 건, -사실은 ‘못’ 가고 있는 것이지만 - 떠먹여 줘도 못먹는 바보짓이 아닌가, 에 생각이 이르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까짓것 얇은 내 지갑을 끊임없이 열어서라도 그 학원에 들어가게 해줄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이 살며시 고개를 든다. 교육과정과 교육현장의 최전선에서 교습법의 유행을 선도하고, 수많은 정보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대치동이 결국에는 아이에게 원하는 미래와 진로를 알려줄 수 있는 곳인걸까, 하는 마음도 옆구리를 찌른다. "어머니, 00이는 이미 시작이 많이 늦기 때문에 지금은 한가하게 책이나 읽을 때가 아니에요" 라는 말에는 이내 세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책을 읽을 때가 아니다, 라는 말이 내 마음을 찌른다. 알고 있다. 기실 한국에서 아이에게 밥그릇이라도 찾아주려면 그 밥그릇이 간장종지만큼 작은 것이더라도 ‘나만의 속도’ 를 가진 아이로만 키워서는 안될 일이다. 하드웨어는 규격화, 표준화 되어있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는 우수해야 한다. 몇줄로 간단히 표현되는 일목요연한 스펙이 있어야 생존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게 하는 건, 시너지를 나게 하는 하나의 무기를 쥐어주는 것일 수 있지만, 수학과 영어를 재껴놓고 '책만' 읽게 하는 건, 한량이나 되어도 상관없다, 는 의미에 다름아니다. 책은 결코 목적이 될 순 없었다. 책을 많이 읽은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 생각이 깊다. 문해력도 좋다. 그래서 뭐?라고 물으면 결과적으로 나도 다량의 독서를 대입의 수단중에 하나로 사용하고 싶은 그저 대치동 학부모1 에 불과하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그런거라면 나도 차라리 불꽃튀는 치맛바람이라도 흩날리는 부모라도 되었어야 한다. 나는 어쩌면 위선의 가면을 쓰고 아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길 바라고 아이 뒤로 숨어버리는 부모일지도 몰랐다. 무책임한 방치와, 독립심을 키워주는 방임. 한끗차이인 그 둘 사이에서 나는 나를 후자라고 믿었지만 대치동에선 나를 전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이 틀렸다고 얘기할 수 있으려면 내가 내 아이를 믿고, 지지해줄 수 있어야하고 그러려면 나에 대한 믿음이 선행해야 한다. 교육에 관한 확고한 정의와 그에 걸맞은 확실한 신념. 그러나 너희가 틀렸다고 말할 신념과 교육에 대해 가진 나만의 정의가 내게는 없었다. 대치동의 세계에 적극적으로 편승하여 바다로 나아가듯 빠질 것이냐, 내 아이를 늦었다고 말하는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등을 진 채 마이웨이할 것이냐, 둘 사이에서 나는 양쪽에 발 한짝 씩을 걸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 내 안에 모순을 정리하지 않은 한, 자세를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육아, 육체가 힘든 고된 노역에서 놓여나니, 이제는 교육, 정신적으로 고달프고 힘들어지는 정신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이사를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어쩌면 모르는 게 더 나았을 그곳이 손짓하고 있다. 아이는 조금씩 내 품을 떠나 앞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다. 대치동이 말한다.이리로 오라고, 감당하기 벅찰 정도의 돈을 내놓으면 미래를 열어주겠다고, 미래로 가는 지름길을 알려주겠다고. 그곳에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공급과 대체재와 보완재가 빽빽하고 촘촘하게 마련되어 있다. 1을 향해가는 아이들을 위한 2가, 2가 되고싶은 아이들을 위한 3이, 2가 되기엔 3에 가까우나 3이라고 하기엔 좀 더 앞선 2.5를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지치지 않고 내달릴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아이와,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샘솟는 지갑을 가진 부모만 준비되었다면 말이다. 그 곳에서 아이와 나는 어떤 형태로 표류하고 있는가, 우리의 목적지는 어디로 정할 것인가, 어떻게 당도할 것인가, 모든 것은 숙제인 채로 풍랑앞에 지금 우리는 서있다. 흔들리지 않고 항해하기란 쉽지 않다.


대치동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부모란 어쩌면 내 기대대로 커주는 자식을 가진 부모밖에 밖에 없진 않을지. 그러나 하나의 답만을 정해놓고 대치동 학원가 앞을 서성이는 우리는 모두들 알고 있다. 그 곳에는 우리가 원하는 교육애 대한 모든 공급이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위를, 조금 더 앞을, 조금 더 깊은 곳을 자꾸만 쳐다보는 한 ‘그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다.‘ 라는 진리를.  옆과 아래와 뒤를 염두에 두지않는 이 곳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의 병원을 물려받아야 해서 의대를 가야하는 돈 많은 집 손자의 눈물겨운 노력을, 해외대학을 준비중인 국제학교학생들의 여유로운 생활을, 입시미술을 하는데도 보통 아이들보다 영어 수학을 더 잘하는 아이들의 다재다능함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더 조급해지고 더 불안해진다. 그래서 수많은 부모들은 오늘도 대치동 학원앞을 서성이고 자녀를 사랑하는 모든 마음을 담아 부담스러운 금액을 결제한다. 그리고 우리들 중 아무도 그 부모들을 손가락질할 수 없다.


그렇다면, 부모만 불안할 것인가, ‘그 자식만 내 자식이 아닐것‘ 인가. 아이들에게도 보는 눈은 있을 터였다. 이사를 오고 난 뒤 만난 이들과 그들의 가정을 보면 다양한 부모들의 모습만큼이나 아이들도 그랬다. 해외에서 대학을 나온 부모들은 대체로 한국 교육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 부모님들은 아이를 사교육 시장으로 내모는 대신, 해외대학 쪽으로 눈을 돌렸고, 그래서 국제학교를 선택한다고 했다. 같은 노력을 들이더라도 한국의 대학보다 서열이 높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게 가능했고, 취업시장에서도 유학파라는 절대적인 무기를 하나 쥐고 나올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부모로서도 없는 것이다. 그 아이들을 보면 생각이 유연해 보였고, 공부에 찌든 느낌보다는 자유롭고 주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의사라서 본인도 의사가 될거라는 아이에게는 의대에 합격해야 한다는 간절함보다, 가업을 이어가야 하는 자의 의연함이랄지, 공부에 쫓긴다기보다 당연해 해야할 일을 소화하고 있다는 담담한 같은 게 느껴졌다. 사업으로 성공하신 부모님들의 경우에는 대치동 학원가와 사교육으로부터 한 발 물러나 아이의 다양한 가능성과 도전을 지지해주는 방향으로 키우고 있었다. 공부와 대학에 기댈 필요가 없다는 확신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그러나 한결같이 ‘경제적 여유’를 가진 부모가 뒤에  있었다. 그리고 그 경제적 여유는 자식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는’ 인생과 ’가르쳐줄 것이 있는‘ 삶을 가진 부모들에게 자연스레 따라오는 보상 같은 거였다. 그래서 그런 부모에게는 자녀교육에 비교적 다양한 선택권이 주어지는 거였다. 남편에게 “여보, 아이들을 행복하게 키우려면 우리가 성공해야 겠다.” 내가 말했다.


오래도록 살던 익숙한 동네를 떠나 새로운 동네인 여기에서 만난 사람들은 새로웠고, 내가 보지 못한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런 부모의 삶과 모습들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전해질 것이고, 그게 바로 교육이 될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한창 유행하던 자식들의 외침, “내 꿈은 재벌 2세야. 그러니까 재벌은 엄마랑 아빠가 되어야지.“ 라는 말이 떠오른다. 맞다. 내가 무능력해서 불안한 걸, 아이는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아이에게 투영하고 내 무능력이나 실패를 아이를 통해 보상받으려하는 교육이 가능할 것인가를 아이 입장에서도 봐야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우리집 첫째도 함께 가족모임을 가지거나 학교생활을 하면서, 또 학원에서도 어린이의 눈으로 봐도 재능이 있거나 재력을 가진 친구들을 보면서 어느정도 본인의 위치와 서열을 본능적으로 체득할 것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진학하면 그 차이는 더 선명히 드러날 것이다. 부모가 불안만으로 아이를 학원에 욱여넣을 때, 아무런 주관과 목적없이 그저 사교육의 전쟁터로 내몰 때, 아이가 나와 남편에게 ‘너는 왜 그들과 같은 재력있는 부모가 아닌가’ 라고 물을 수도 있는 거였고, 그게 잘못도 아닐 것이다. 고민과 죄책감없이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속에서 자식을 판단하고 학원가를 서성이는 건 다른 이가 아니라 부모였을테니 말이다.


그런 질문을 아이가 던질 때, 답이 준비되어 있는 부모가 되어야 했다. 내가 가르치려는 자식을 납득시킬 수 있는 부모여야 할 것이었다. 모든 부모가 학창시절 1등이었을 수 없고, 마찬가지로 모든 부모가 대기업에 다닐 순 없으며, 돈을 잘 벌순 없다. 그래서, 일상에서 보여주는 모습만으로 자식을 교육할 수 있고, 설득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했다. 똑똑하고 잘난 부모, 돈을 잘 벌고 재력있는 부모가 넘쳐나는 이 곳에서 남편과 나에게는 그럴 필요가 있었다. 자칫 그런 길에 들어서려는 부모가 되려는 나에게, 이동네의 많은 부모들은 부모로서의 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한다.그래야 우리는 흔들림없이 항해를 할 수 있을 거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