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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Sep 28. 2024

대치동 블루스 3

들려줄 이야기가 있는 삶, 해줄 말이 있는 인생

우리가 부모로서 해야할 일은 특정 종류의 아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많은 종류의 아이가 번성할 수 있도록 사랑과 안전, 안정성의 보장과 함께 보호받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앨리슨 고프닉 <정원사 부모와 목수 부모>


가정과 부모는, 좋은 아이를 길러낼 능력이 없다. 부모는 아이가 나쁜 버릇이나 습관이 있다면 바로 잡아주고, 가정은 모자라고 부족한 곳을 채워 나쁜 길로 가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자 최후의 보루다. 가정에서 천재였던 아이를 바보로 만들 순 있지만 결코 바보를 천재로 길러낼 수는 없다. 재능을 발견하지 못해 키워주지 못할 순 있지만 없는 재능을 끌어낼 재주가 가정에는 없다. 가정에서 하는 교육이란 그런 것이다. 씨앗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토양을 만들어 줄 뿐이다. 거기서 뿌리내린 아이가 결과적으로 좋은 아이로 길러지는가, 성공한 아이로 자라나는가, 는 전적으로 아이의 몫이다 최악이 아니라고 해서 최선이 아니듯, 가정교육이 잘 되었다고 해서 또 성공한 아이는 아닐 것이다. 반대로 성공한 아이라고 해서 가정교육이 잘 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저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든든하게 버텨주면서도 그 울타리가 너무 커서 아이를 압도해서는 안된다, 는게 나의 생각이다.


그러려면 자식에게 올인하고 집착하고, 자식이 내 모든 것이 되는 부모를 가장 경계해야 할 터였다. 포기하는 것이 생기면 반드시 보상을 원하는 게 사람의 심리다. 충족되지 않는 보상의 크기가 커질수록 집착을 하게 된다. 그게 자식인 삶이 가장 불행할 것이라고 남편에게 늘 이야기해왔다. 우리는 자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했다. 그게 결과적으로 아이들의 교육과 정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동기부여가 되는 모습일 순 있어도 자식만을 위해 열심히 사는 순간, 내가 사라지고, 포기하는 삶은 거기부터 시작이다. 순서가 뒤바뀐 삶을 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아이에게 귀감이 되는 삶, 이야기해줄 것이 있는 인생, 가르쳐줄 것이 있는 분야를 가진 부모가 되려면 아이가 아닌 나를 위해 살아야 하고, 그런 모습이 되레 아이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은, 크고 싶은대로 크는게 아닐까"

이 동네로 이사를 오고 아이가 커가면서, 또 대치동 학원가를 얼씬대면서 가정교육과 부모의 역할, 교육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다.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루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교육받고 자란만큼, 우리 부부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넓고 깊은 강이 있다. 그는 무관심을 경계하고 나는 참견을 지양한다. 그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제까지 살던 일상을 뛰어넘어 좋은 부모가 되기위해 갓생을 사는 것도 버거운 일이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어른이자, 보호자, 그리고 선험자이지만 엄마로는 모든 처음 있었고, 몸이 힘들던 시기를 거쳐 사춘기를 맞은 자녀의 엄마는 또 처음이다. 숱한 처음을 겪고도  강남부모로서 다처음이라 나는 여전히 표류하고 방황한다. 아이의 삶을  보면서 나도 배우고, 내가 더 자란다. 대치동 앞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넉넉한 울타리를 만들어 줄 것인지, 어떤 보루를 세워 넘어지지 않을 성벽이 되어줄 것인지 고민한다.


결국 첫째는 대치동의 꽤 규모가 있는 수학학원엘 다니게 되었다. 레벨테스트를 봐야하는 곳은 아니고, 마이웨이로 다닐 수 있는 작은 교습소도 아닌 그 중간형태랄까. 할 놈은 하고 될 놈은 된다고 믿는 나와 많은 서포트를 받았다면 더 잘 되었을 거라 믿는 남편의 중간지대, 자신이 커온 방향과 반대되는 교육관에서 한발씩 양보한 절충안이다. 엉거주춤한 내 자세만큼이나 어중간한 포지션의 그 학원에 우리 아이 뿐 아니라 매일이 수많은 아이들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낼 때부터 그러했듯 지금도 그 학원에 앉은 90% 이상의 아이들은 학원의 전기세를 내러, 그저 사교육 시장의 한 축을 떠받치러 다니는 아이들일 것이고 물론 그 아이중에 내 아이가 포함될 수도 있다. 소수만이 학원엘 다니며 달성해야 하는 소기의 목적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소수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탓하지는 않으려 한다. 우리 부부가 어떠한 교육관을 가지고 아이를 다루어도 아이는 아마 이미 본인의 그릇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 그릇의 크기나 깊이를 저조차도 판단할 수 없어 재고 따지고 겪어볼 숱한 기회를 거쳐야할 것이다. 그러면서 치이고 밀리며 부침을 겪을 것이다. 그러다가 비로소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거기에 내가 한 짐을 더하지는 않으련다. 그리고, 내가 가르치지도 시키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독서하는 나의 천둥벌거숭이 일곱 살 둘째. 언니와는 다르게 그녀는 그녀대로 독서의 힘으로 길을 찾아가길, 넓고 깊은 세계를 유영할 수 있길 기대한다. 직장 어린이집엘 2년이나 데리고 다니다가 휴직하게 되었을 때 남편은 영어유치원에 보내자고 했었고, 거기에 따르지 않은 걸 잠시잠깐 후회지만 이제 그런 후회에서도 벗어나려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드넓은 바다의 끝에서 그녀가 길을 잘못 찾았을 때, 다시 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막아주는 것 뿐, 직접 길을 인도하고 안내하지는 않으려한다. 그럴 수 없단 걸 안다. 엄마가 해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하나. 복직을 하기 전까지 나에게 주어진 선물같은 유한한 시간에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운동도 하느라 내 하루 바쁘다. 아마 복직을 하면 더 바빠지겠지. 들려줄 것이 있고 가르쳐줄 수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 내 삶을 사는 것만으로도 버겁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애써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사는 부모가 되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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