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꿈 속으로 이끌리다

내러티매진 Narratimagine-사도들의 길, 우리의 걸음

by 푸른킴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1:15-26)


밤은 늦어가고, 긴장이 풀린 탓일까. 편지를 앞에 두고 데오빌로는 연신 하품했습니다. 잠을 이겨야 하는 이유는 없었지만, 잠에 굴복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자기 생각과 결단에 흠집이 나는 것은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편지로 다시 눈을 돌렸습니다. 몇 글자 더 읽어 내려갔습니다. 천천히 읽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한 글자가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 경계가 있다가 사라지고, 사라지다 아예 없어졌습니다. 몸이 파드득, 놀라 움찔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눈을 비비고 다시 편지를 들여다보기를 얼마나 그랬는지 모릅니다. 밤이 깊어가고, 데오빌로도 어둠 속, 어떤 웅덩이에 첨벙 빠졌습니다. 꿈이었습니다.


#그 시각, 다락방 문 앞이 어수선하다. 저녁부터 사람들이 밀려드는 모습을 창밖으로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이 풍경은 평소와 달랐다. ‘여기 2층 다락방이라 해봐야 겨우 수십 명정도 들어오면 꽉 들어차 불편했는데, 도대체 오늘은 무슨 일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쉴 틈 없이 몰려드는지 모르겠다.’ 궁금했다. 이 안에서 오늘 밤 무슨 일이 있을지 말이다. 베드로는 말이 없었다. 다른 제자들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음식도 미리 챙겨두고(사람마다 들고 오니 엄청 많았다), 공간을 채우던 가구들도 아예 1층으로 내려놓는 중이다. 제법 넓은 공간이 생겼다. 사람들은 차곡차곡 쌓이듯 밀려들었고 어느새 ‘더는 못 들어옵니다.’라는 소리가 입구에서 들렸다. 들어가고 싶다는 사람, 밀지 말라는 사람, 다시 나가고 싶다는 사람이 뒤엉켰다. 여기가 어딘지 나는 누구인지? 혼돈의 공간이었다.


그 와중에 빵을 나누고, 포도주로 목을 축이는 사람도 있었다. 모임의 성격상 밥은 늘 먼저였다. 그건 선생에게서 배운 것이고, 그가 떠난 뒤, 우리 슬픔을 어루만져줄 그의 유산 같은 시간이었다. 그때는 빵이 줄지 않고 남았는데, 오늘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의 몫을 챙겨두지 않았다면 굶어야 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서로 나눈다고 하지만, 허기진 배를 이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누군가 가볍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소음 속의 노래는 자주 소음을 강화하여 심기를 건드릴 수 있지만, 여기서 노래는 그런 불편한 소리가 아니다. 고요하고 평온했다. 출애굽 당시 미리암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강을 건넌 후 이집트 군사가 홍해에 빠지는 것을 보고 불렀다는 노래다.


“여호와께 노래하세요.

여호와께서는 높고도 높으신 분.

사람이 탄 채로 말을 바다에 던져 버리셨어요.”(출 15:21)


이 짧은 승전가 앞에는 긴 노래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노래를 가장 오래된 민요로 이해한다. 곡조는 단아하면서도 웅장했습니다. 부를수록 평화가 눈에 보이도록 임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에게 노래는, 평소에도 불안한 현실을 이겨나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식민지의 사회와 국가 정체성의 불안정한 위상, 신분 변화의 불가능, 아니 전통의 고집스러운 준수, 남자와 여자 사이에 ‘숫자’만으로도 견고한 장벽을 세워둔 가정, 안식일이라는 생활의 굴레, 시종이라는 직업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사회체제, 어떤 것 하나 자유로울 수 없는 삶의 자리다.


하지만, 이 공간에 흐르는 노래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구원한다. 끌려가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저 유명한 ‘나누기’ 송을 들으면 그 마음은 더욱 장대해진다.


“이 떡을 나눔은 우리의 사랑을 나눔이니…”


분명 다정하고 부드러운 멜로디지만 용사의 전진 같은 사기가 느껴진다. 출정가라 해도 손색없다. 이 노래와 함께 떡과 포도주가 들려지면, 사람들은 얼마 전 그 다락방의 전설을 추억하며, 울컥하는 마음을 가눌 수 없어 슬퍼한다. 여기가 바로 그런 해체의 공간이다. 단지 감정의 해소가 아니라 여기 오기 전에 자신을 묶어 두었던 모든 굴레가 해체되는 시공간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냥 시공간이 아니었다. ‘헤테로토포스’였다. 이곳은 과거를 이어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현재의 다른 일상 공간 말이다. 집을 나와 여기로 오는 것은 그런 새로운 세계, 새 하늘과 새 땅에 미리 들어가는 의미가 있다. 피난처이자, 보호소이다. 이 공간에서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다. 그것은 법이 아니라 우리 몸에 밴 선생의 삶의 방식이었다. 어느새 사람들이 다 들어왔나보다 문을 막 닫으려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 누군가 다급하게 노크했다. 문지기는 의아해서 문을 천천히 열었다. 옷은 물론이고 용모가 깨끗한 한 어른이 가벼운 눈웃음(‘미안하다’라는 뜻을 저렇게 하다니)과 함께 들어선다. 나중에 누가 말하길, 그날 그 자리에 모인 사람이 120명이라 했다. 숫자를 센 사람이 없을 텐데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지극히 상징적인 수이다. 우리는 12명의 10배의 사람이다. 히브리인들에게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한 ‘게마트리아’(수의 의미로 주석하는 중세 히브리 학자들의 방법)가 있다. 12와 10은 완전하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말놀이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하 ‘12지파, 아니 열두 제자에서 10명씩이네…’라고 단정할 것이다. 입증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지만,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다락방에 모인 사람은 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이었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이 저 베드로의 고민이었다.


순간, 깜짝 놀랐다. 이 120명 중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누가 오더라도 상관없지만, 있을 수 없는 사람이 여기 있었다. 바늘을 빠져나가는 낙타의 몸보다도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주인 ‘데오빌로’였다. 이 순간 데오빌로도 놀라 숨이 막혀버렸다. 알고는 있었지만, 로데가 여기에서 봉사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저 가볍게 오가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런 조용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에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면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 틈에 자리하고 있었다.


궁금해서 돌아보니, 이스라엘 출신들만은 아닌 듯 다양한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자주 찾아오는 듯 모든 행동이 익숙해 보였다. 온종일 일한 사람들치고는 얼굴이 밝았다. 몸도 가벼워 보였다. 마음의 표현이 말이라면 그들의 마음은 따듯한 것이 분명하다. 말에 모가 없고, 껍데기만 돌아다니지 않는다. 모든 말이 속이 꽉 찼다. 떡과 포도주는 부족한 것 같았는데, 서로 나눠 먹는 방식으로 배고픈 사람이 없게 했다. 혹시 선생 L도 여기 있을까 싶어 고개를 들다가 로데와 눈을 마주칠 뻔했다. 디스마스도 있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다음 상황을 궁금해하며 몸을 사리고 있었다.


“자 이제 제가 여러분에게 의견을 들을 말을 하나 해야겠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그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제가 말하기 전에, 오늘 처음이신 것 같은 분이 계시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고개를 숙였다. 너무 급하게 숙이는 바람에 오른쪽 무릎에 고개가 부딪혔다.


##꿈이었습니다. 밤은 어느새 한밤중을 넘어 새벽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목이 말랐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어제 갖다 둔 물을 벌컥 들이마셨습니다. 바람이 창에 부딪는 소리가 다락방에서 들었던 바람 소리와 흡사 같았습니다.


지난 새벽 아마도 빗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서였을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버린 게 분명합니다. 깨어보니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그저 그의 의식이 낯선 공간으로 이끌렸고, 그곳에서 낯익은 웅성거림과 낮은 울음소리가 가득한 다락방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자리를 잡고 두리번거리는 자기 모습, 한 사람이 눈으로 나를 지목하며 말을 붙였던 소리가 웅웅거릴 뿐입니다. 놀라서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그의 말을 들었던 창피한 모습, 그가 자신을 환영한다는 투로 말한 것 같은 느낌, 앞으로도 자주 보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던 것만큼은 분명히 기억납니다. 사람들은 웃으며 환영했고, 그 틈에 로데와 디스마스인 듯한 인물들도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그들이 분명 나를 봤다면…괜히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어쩐지 자신이 그들을 섬기는 사람같이 느껴져서 더 그랬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문득 일어선 사람은 누굴까? 그가 한 말이 생생한 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 공간의 분위기도 몽롱한 데다 단어는 아예 생각나질 않습니다. 답답했습니다. 꿈에서도 긴장한 탓인지 몸이 아예 널브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모양입니다. 우선 잠부터 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데오빌로는 편지를 그대로 둔 채 나가려다 다시 돌아와 그 옆에다 ‘다락방 사건’이라고 크게 적어두었습니다. 서재를 나갔습니다. 데오빌로가 나간 자리가 비었습니다. 그 빈 자리, 불이 꺼진 그 어둠의 방이 아름답다고 누군가 생각했습니다. 데오빌로는 구석에 남겨진 불 하나를 보지 못했습니다. 데오빌로는 더 깊은 잠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내 꿈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꿈에서 꿈으로 이어지는 밤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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